호텔, 현지 문화와 일상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진화하다.
최근 호텔은 여행지를 깊이 있게 경험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투숙객들은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로컬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맛보고, 섬주민들과 함께 가까운 해변에서 전통 낚시를 즐길 수 있다. 호텔의 내부 직원은 지역명소를 안내하는 가이드를 자처한다. 호텔 로비는 더 이상 투숙객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저녁이면 지역 예술가, 뮤지션들과 함께하는 이벤트가 열린다.
로컬경험(Local Experience)이라 들었을 때 각자가 떠올리는 생각은 다르지만, 필자는 '여행에서 현지 문화와 일상을 즐기는 경험'이라 정의하겠다. 앞선 사례를 두고 뉴욕타임즈는 이렇게 설명했다.
호텔산업에서 '관광객'은 낡은 단어로 전락했다. 새롭게 주목할 단어는 '로컬'이다.
미주와 유럽의 호텔에서는 지역 커뮤니티와의 연결로 로컬경험을 풀어내기도 한다. 캐나다의 Fogo Island Inn은 계절마다 색다른 로컬경험을 제공한다. 여름에는 전통 낚시를 배우고 야생 고래를 관찰하고, 가을에는 블루베리를 채집하고, 지역주민의 음악축제에 참여해볼 수 있다. 영국의 Starford Hotel의 컨시어지 담당자는 직접 워킹투어를 안내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모자가게, 다이애나 공주의 일가 등 호텔 인근의 이색적인 명소를 찾아 나선다.
프라이버시와 최고급을 상징하는 호텔, 왜 로컬경험에 주목하는 것일까?
약간의 검색 노하우만 있다면 실시간으로 원하는 여행정보를 찾을 수 있는 시대이다. 지구 반대편의 여행지라도 숨은 맛집과 명소를 찾기가 수월해졌다. 지역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수 있는 기반이 갖추어지자 에어비앤비(airbnb)가 본격적인 로컬여행의 서막을 열었다. 이젠 전 세계 191개국의 현지 숙소를 만날 수 있게 되었고, 트립스(Trips)란 메뉴에서 현지인 호스트가 진행하는 투어를 예약할 수 있다. 로컬경험이란 추상적인 개념을 상품화하고 그 수요를 늘려가고 있는 것이다.
소수의 개별여행자에서 시작된 로컬경험은 이제 가족여행, 비즈니스 출장과 같은 주류시장으로 뻗어가고 있다. 이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호텔에서도 주목해야 할 키워드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과거 기업의 사회공헌은 이윤추구에 대한 책임 성격이 강했다. 본래 사업과는 별개로 간주되었고, 그 효과도 지속적이지 못했다. 오늘날 사회공헌은 기업의 선택이 아닌 필수조건이다. 소비의 폭발적인 증가로 인한 자원량 고갈, 사회문제 야기, 자연훼손 심화는 기업과 기업이 속한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막고 있다. 때문에 코카콜라, 유니레버, 네슬레 등의 글로벌 기업은 사회공헌 가치를 담은 경영전략을 실천하고 있다.
소비자도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선호한다. 2015년, 전 세계 3만 명의 소비자 대상으로 조사한 닐슨의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제품과 서비스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라는 문항에 66%의 응답자가 '긍정'으로 답했다. 2년 전 50% 보다 16%가 높은 수치로, 더 많은 사람이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소비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업, 빈부격차로 사회범죄가 넘치는 도시, 쓰레기 더미에 뒤덮인 휴양지를 원하는 여행객은 없을 것이다. 외부인이 직접 지역에 방문하고 소비하는 관광산업에서 기업과 지역 커뮤니티와의 상생은 더욱 중요해진다. 지역에 대한 고민과 이해를 담는다면, 호텔은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와 지역성을 반영한 독특한 어메니티를 조성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호텔이 위치한 지역을 매력적인 여행지로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
호텔이 로컬경험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로컬여행이란 새로운 흐름에서 우위를 점하고, 지역 커뮤니티와의 상생으로 새로운 브랜드 가치를 형성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로컬경험을 도입한 사례를 보며, 어떠한 시도들이 가능할지 살펴보자.
투숙객에게 지역을 다양하고 깊이 있게 경험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다.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여행으로 진정성 있는 로컬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Fogo Island Inn은 전통 낚시, 야생 돌고래 관찰, 공방체험 등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계절별로 제공한다. 이탈리아의 Hotel Bellamonte는 지역 농민들과 함께 벌꿀을 채집하거나, 주인장과 함께 300년이 넘은 공방을 둘러볼 수 있다.
체인호텔은 자사의 멤버십 고객을 락인(Lock-in, 새로운 제품이 나와도 소비자가 기존 제품의 고객으로 남음)하는 요소로 로컬경험을 제공한다. Marriott Hotel은 전 세계 지점에서 즐길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을 멤버십 고객에게 제공한다. 자신이 머물 호텔에서 즐길만한 프로그램을 미리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Marriott London에 투숙 예정인 회원은 영국 드라마 '다운튼 애비(Downton Abbey)'의 촬영명소를 방문하는 로컬투어를 멤버십 포인트로 예약할 수 있다.
호텔이 직접 인근 명소, 맛집, 지역축제 정보와 같은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배포할 수 있다. 수십 페이지가 넘는 검색 결과에서 정작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기는 어렵다. 호텔은 자신의 지역에 특화되고 신뢰할만한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써 온라인 검색, 소셜미디어 경쟁에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미국 워싱턴의 Embassy Row Hotel에서 진행한 인스타그램 이벤트를 살펴보자. 로컬 포토그래퍼들이 워싱턴에서 가장 좋아하는 명소를 촬영하도록 하고, 호텔 인스타그램 계정에 촬영한 사진을 포스팅한다. 이후 인기가 높은 사진과 장소 정보를 담은 웰컴 카드를 제작하여 투숙객에게 제공한다. 부띠끄 호텔 Indigo는 See, Hear, Taste라는 카테고리로 각 지점만의 지역정보 콘텐츠를 웹사이트에 제공한다.
호텔 식음료 파트는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 발전할 수 있다. 호텔 레스토랑의 식사는 더 이상 여행객들이 선망하는 경험이 되질 못한다. 어느 호텔이든 비슷한 공간, 서비스, 음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대치 못한 가치를 로컬경험으로 풀어내는 건 어떨까?
스페인의 Hacienda Zorita는 내부의 유기농 농장에서 직접 수확한 치즈, 올리브, 돼지고기로 지역의 전통요리를 제공한다. Embassy Row Hotel은 지역에서 활동 중인 로컬푸드 스타트업의 제품을 라운지, 카페 등에 전시하여 판매한다.
지역 인적자원과의 협업으로 호텔을 로컬명소로 만들 수 있다. 미국의 체인호텔 Red Lion은 지역 작가, 예술가, 뮤지션들과 함께 호텔 라운지에서 Living Stage라는 공연을 제공한다. 유럽의 호스텔 브랜드 Generator Hostel은 라이브 뮤직 공연, DJ 파티로 축제 분위기를 느끼는 공간으로 구현했다.
지역 이벤트는 투숙객뿐만 아니라 주민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요소다. 현지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호텔을 찾아오고 싶은 지역명소로 만들 수 있다.
좋아. 흥미로운 시도네.
그래서 우리 호텔은 어째야 하는 거지?
호텔 현업자라면 이쯤에서 고민이 생긴다. 한국 여행에서 우리 호텔이 선사할 수 있는 경험은 무엇일까? 그 경험을 어떻게 제공해야 할까? 즐길만한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한국 관광시장에서 가능한 시도인 걸까? 최근 긍정적인 신호들이 포착된다. 점차 자신만의 특색과 스토리로 로컬투어를 만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필자는 이런 분들의 프로그램을 한 땀 한 땀 모아서 작게나마 로컬여행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로컬경험을 통한 호텔의 리브랜딩 전략? 맥이 빠질 수 있지만 정답은 없다. 정확히 표현하면 각자의 정답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각 호텔만의 어메니티와 내부 자원, 인근의 지역 커뮤니티와 관광자원, 주요 고객의 국적과 유형(가족여행, 비즈니스 출장, 컨퍼런스 참석 목적 등)에 따라 새로운 로컬경험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다음 글에는 앞서 언급한 사례 또는 로컬경험을 흥미롭게 접근한 사례를 다뤄볼까 한다. (언제가 될까?) 이 글을 쓰기 전에 소중한 의견을 주신 호텔 컨시어지, 마케팅 담당자분들께 감사하다. 비슷한 고민을 겪는 현업자 그리고 로컬여행에 관심을 가진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