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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워서갈비 Jun 11. 2021

얀센 잔여백신 맞은 썰

자유는 마시썽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글을 쓰고 있었다. 엄지, 엄지. 톡톡톡. 실컷 몰입해서 쓰고 있는데 팝업창이 하나 떴다. 카카오톡 지갑에서 보낸 메시지였다. 광고 메시지 수신인 줄 알고 끄려는데 '잔여 백신'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왔다.


"오옷!"


대학생 시절 수강신청하던 때, 명절에 열차 예매하던 때, 코로나 초기 마스크 대전에서 쿠팡 마스크 딜을 구매하던 때의 '광클'을 떠올리며 빠르게 눌렀다. 하지만 이미 '마감'이었다. 방금 떴던 백신은 '얀센 백신.' 오늘부터 접종을 시작했다던데, 노쇼가 발생한 모양이었다.


"에잇..."


아쉬움의 한탄 속에서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젠장 얀센 잔여백신 놓쳤다"

"ㅋㅋㅋㅋ 아쉽다. 오 지금 또뜨는데?"


남편의 답장과 동시에 아까와 같은 팝업창이 카카오톡 지갑으로부터 전송되었다. 이번엔 다른 병원이었다. 좀 전의 실패를 딛고 '클릭', '클릭.' 두 번의 클릭질 끝에 이런 메시지를 받아 들 수 있었다. '잔여백신 당일 예약이 완료되었습니다." 남편에게 아래와 같이 장엄한 메시지를 남기고 나갈 준비를 했다.


"했다. 대박. 지금 간다."






병원은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발랄했다. 열 체크와 손 소독, 방명록을 쓰고 간호사 선생님께 "얀센 백신 맞으러 왔습니다." 하니 차트를 이것저것 들춰보셨다. 한참을 찾으시길래 혹시 힌트가 될까 해서 "저... 방금 전에 예약했습니다." 말씀드리니 그제야 "아아! 그렇구나!" 하신다. 아직 차트도 준비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입생이었다. 백신을 맞으려면 예진을 해야 했기에 진료실에 들어갔다. 평소에도 종종 왔던 병원이 의사 선생님과 구면이었다. 날 보더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예상치 못한 한마디였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오늘 마침 잔여백신이 4개가 떴고, 시스템에 올렸더니 정확히 27초 만에 마감이 되었다고 다. 행운을 거머쥔 네 명의 사람들은 각각 24초, 25초, 26초, 27초에 클릭을 완료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27초의 주인공이시네요."


내가 문 닫고 합격한 행운의 주인공이라니. 1등도 아니고 4등이면 제일 이득 아닌가. 마치 시험에라도 합격한 듯 간호사 선생님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연신 감사 인사를 드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어떻게 성공하신 거예요?"

"아... 핸드폰을 마침 보고 있었는데 뭐가 뜨길래 광클 했습니다(평소에 폰중독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이야...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의료진과 이렇게 길게 이야기 나누어 본 것은 처음이지 싶었다. 이어지는 축하 세례에 의기양양해진 나는 진료실을 나와 백신 접종 대기실로 이동했다. 한 손에는 문진표를 들고 있었다. 그곳에는 30-40대로 보이는 남성분들 몇 명이 문진표를 작성하거나 백신 맞을 차례를 기다리고 계셨다. 내가 대기실로 들어가자 순간적으로 '니가 여기 왜...?' 라는 표정을 짓다가 사회인답게 1초 만에 표정 관리에 들어가는 것까지 나는 보았다. 얀센이 전역한 '군 자원들'에게만 풀렸던 백신이라 30대 여성인 나의 등장이 조금은 의아한 모양이었다.


한 명, 두 명, 세 명... 내 앞에 대기하던 분들이 백신 접종을 마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고 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백신 접종을 마친 후에는 15-30분 정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부작용을 체크해야 한단다. 잠시 후 간호사 선생님의 청명한 목소리가 들다.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냉큼 접종실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니, 내가 정말 백신을 맞다니... 코로나 19와의 지겨운 싸움에서 승전보를 울린 것처럼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간호사 선생님이 동그랗고 작은 유리병에 든 내 몫의 백신을 주사기에 넣었다. 이윽고 주사 바늘을 반짝이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다. 그 찰나 코로나 19 이후 겪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코로나 19 극초기에는 아이가 어려 집에 갇혀 있었다. 집 앞에도 나가지 못했고 해외에서 온 택배 상자를 뜯어도 될지 고민했다. 마트에 갈 수 없어 모든 것을 배달 음식이나 식재료 온라인 주문으로 해결했고 지출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남편이 출근해야 하는데 마스크를 구할 수 없어 매일 새벽까지 눈이 빨개진 채 온라인 마켓을 들락거렸다. 공적 마스크가 풀렸을 때에는 마스크가 매진되지 않기를 빌면서 동네 약국으로 내달렸다. 지역 이동 자제로 멀리 계시는 부모님을 자주 뵙지도 못했고 명절, 생신 모두 스킵되었다. 가족도 못 만나는 형편에 친구와 지인만나기는 더욱 어려웠다. 가까운 곳에 코로나 19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긴급문자가 오면 며칠 동안 우울했다. 논문을 집에서 쓸 수 없어 카페에 갔지만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 30분도 채 안되어 나왔다. 사람들이 무서웠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내 모든 행동을 지배했다. 세상 모든 것이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둘러싸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지금 이 백신을 맞기만 한다면...!


"조금 따끔해요."


'조금 아니고 무지막지 따끔해도 괜찮아요.' 생각하는 순간, 드디어 백신을 맞았다. 평소에 둔감한 편이라 주사액이 몸에 퍼지는 걸 느꼈을 리가 만무하지만, 무언가가 온몸에 짜르르 퍼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도 '자유.' 나는 자유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코로나 19한테 속절없이 당하기만 했던 울분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고마워요, 얀센.




얀센 백신을 포함한 코로나 19 백신이 발생시킬 수 있는 부작용들도 물론 있다. 나 역시 그런 우려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얀센 백신 예약을 성공했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이 기회를 잡지 않으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몰라.' 선택은 언제나 본인의 몫이지만, 온 세계가 코로나 19 백신 접종을 하는 흐름 속에서 그 대세의 물결을 저버리는 것도 마냥 적절한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백신 접종에 동참하여 집단 면역을 형성하는 것. 그것이 백신 접종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어린이, 임산부, 수유부 등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얀센 접종 후 대기했던 베드


나는 병원에 마련된 입원실에서 30분 동안 휴식을 취하다가 일단은 아무런 부작용도 없어 귀가했다. 얀센 백신은 1차 접종으로 코로나 19 백신 접종이 완료된다. 두 번 맞을 필요도 없다. 물론 완전히 항체가 형성되려면 14일 동안 조심해야 한다. 야호! 병원을 나오면서 내 발걸음이 아까보다 한층 더 발랄해진 것을 느꼈다. 전 인류가 자유롭고 발랄한 걸음걸이로 이곳저곳을 누비며 서로 거리낌 없이 만날 수 있는 시대가 곧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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