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의 화려한 피날레를 수놓을 음식으로 치킨만 한 것이 있으랴. 내 앞에 놓인 치킨 한 마리. 고소한 냄새가 집 안에 퍼진다. 갓 튀겨낸 닭다리를 집어 들고 한 입 가득 베어 문다. 바삭! 바사삭! 나는 튀김에서 나는 이 소리에서 어떤 기쁨이나 충만함마저 느낀다. 바삭하는 소리는 튀김이 잘 튀겨졌다는 증명서와 같다. 튀김은 그 맛 자체도 중요하지만 식감과 소리도 중요한 포인트이다.
튀김의 재료는 ‘존재하는 거의 모든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돼지, 소, 닭과 같은 육류부터 오징어, 새우와 같은 해산물까지. 채소나 과일 역시 튀김의 재료이며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감자튀김이 있다. 이렇게 주재료는 달라지지만 대부분의 튀김요리에는 밀가루가 사용된다. 얇은 밀가루 옷으로 재료 본연의 맛을 섬세하게 살리는 것이 핵심이기에 튀김에서 밀가루의 중요성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기름이다. 기름이 튀김의 맛을 좌우한다. 구이나 볶음은 기름을 조금씩 사용하지만 튀김은 온몸 전체가 오롯이 기름에 담겨야 한다는 점에서 기름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남다르다. 여러 번 무엇인가를 튀겨낸 탁하고 짙은 기름보다는 깨끗하고 투명한 기름을 사용해야 함은 당연하다.
재료와 밀가루, 기름이 갖춰졌다면 이제 그냥 튀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튀김 접시를 받아 드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맛있는 튀김의 3요소는 기름 퀄리티, 튀김옷 두께, 타이밍이다. 이를 모두 갖추기 위해서는 상당한 숙련미가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밀가루 옷을 입혀 기름에 넣고 적당한 때 꺼내어 탕탕 치며 기름을 제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맛있는 튀김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밀가루 반죽 단계부터 다소 긴장한다. 그러다 기름에 넣고 꺼내는 타이밍을 놓쳐 허둥댄다. 그 결과 기름에 쩐 두툼한 밀가루 외투를 걸친 튀김이 탄생한다. 이런 탓에 튀김에 대한 열렬한 선호와는 달리 나는 튀김을 거의 만들어 먹지 않는다. 남이 해준 튀김이 가장 맛있다는 진리를 떠올리며 배달 앱을 열 뿐이다.
이런 튀김 조리의 호락호락하지 않음 때문에 튀김의 명인을 만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가 다니던 학교 근처 시장 포장마차에 정통 튀김을 파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그곳의 튀김이 맛있다는 소문을 들은 바로 그날 저녁, 나는 포장마차로 달려갔다. 사람들이 북적였고 새우, 오징어, 김말이, 고구마 등 다양한 튀김들의 향연이 펼쳐져 있었다. 입맛을 다시며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새우, 오징어, 김말이, 고추튀김 하나씩 덥혀 주세요!” “학생, 난 다시 튀기는 그런 거 안 해.”
아주머니는 내게 새초롬한 눈길을 주며 단호하게 말했다. 기존 포장마차에서는 으레 한 번에 튀겨낸 튀김들을 산더미같이 쌓아 올려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튀김을 다시 튀겨 주곤 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이런 관습을 거부하고 먹을 만큼만 그때그때 튀겨내고 있었다. 겸연쩍어진 나는 “녜에…” 하곤 묵묵히 집게로 오징어 튀김 하나를 집어 베어 물었다. 그 순간 지금까지 먹은 포장마차 튀김을 튀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행복감이 속에서 물밀 듯 차올랐다. 얇은 튀김옷, 깨끗한 기름, 갓 튀겨낸 튀김의 절묘한 타이밍. 인생 튀김을 만났다. 이제야 아주머니의 명징한 말들이 이해가 갔다. 그녀가 갖춘, 프라이드(fried)에 대한 프라이드(pride)라고나 할까.
다만 튀김이 지나치게 고칼로리 음식이라는 지적은 끊이지 않아 왔다. 그렇다면 튀김을 채소와 곁들여 먹는 것은 어떨까? 물론 건강을 지키는 훌륭한 방법이지만 튀김 고유의 맛이 희석된다는 점에서 차라리 채소를 튀겨 먹으라고 권하고 싶다. 인간의 튀김 사랑은 끝도 없어서 건강한 튀김을 위한 에어 프라이어라는 신문물이 개발되기도 했다. 에어 프라이어에 별점을 매긴다면? 편리함 부문에서는 ★★★★★(별 다섯개), 맛 부문에서는 ★★☆☆☆(별 두개)정도가 아닐까. 기름 맛이 사라진 튀김은 덜 해로운 튀김이 된 대신 덜 맛있는 튀김이 되었다.
치킨이나 탕수육처럼 그 자체로도 완전한 튀김이 있는 반면 무엇인가와 곁들여 먹는 ‘사이드 메뉴'로 여겨지는 튀김도 있다. 스테이크를 시키면 감자튀김이 곁들여 나오고 떡볶이를 주문할 때 각종 튀김들을 토핑 할 수 있는 것을 보라. 튀김은 어디에 붙여놔도 편안하게 잘 어울린다. 존재감을 드러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잘 구별하는 튀김의 자기 인식. 나는 자신을 소소하게 만들어 메인 요리를 빛내주는 이러한 튀김의 겸손함이 좋다.
마음대로 되는 일 하나 없는 것처럼 느껴져 어깨가 축 처진 오늘. 이런 저녁에는 갓 튀겨낸 튀김에 생맥주를 곁들여 보는 것은 어떨까. 쫀득한 거품이 가득 올려진 차가운 맥주만큼 바삭한 튀김과 잘 어울리는 것도 없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천상의 식탁이다. 인생의 무거움과 튀김의 가벼움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그 경계선 위에서 나는 행복함을 만끽한다. 하루치의 튀김이 주는 찰나의 위로이다. 튀김을 먹는 순간만큼은 내 삶이 참으로 고소하여라. 오늘도 내일도, 아무튼 튀김은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