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
남편은 요즘 여름 감기로 고생 중이다. 한두 번이 아니라 벌써 세 번째다. 감기 증세가 나타날 때마다 코로나19에 걸린 것은 아닐지 걱정하게 된다. 하지만 이내 아닌 것을 알고 안심(?)하곤 한다. 어쨌든 여름 감기가 계속되다니. 올여름 무더위에 남편의 체력이 많이 약해진 모양이다.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병원에 다녀오고 나서도 으슬한 기분이 들 때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바로 '능이 닭백숙'이다. 어릴 때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같은 책 제목을 들어서일까? 몸이 아프면 영혼도 아픈 것만 같고, 그럴 때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은 닭이 들어간 진한 국물뿐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평소 능이 닭백숙은 우리 집에서 인기 메뉴가 아니다. 기왕 닭을 먹을 거라면 빠글빠글 튀겨 먹자는 튀김지상주의 때문이다. 국물에 빠진 닭은 상상만 해도 너무 건강해지지 않는가? 능이 닭백숙은 기름기가 쪽 빠진 단백질 덩어리 웰빙 음식이라, 무엇보다도 혀가 선뜻 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탓에 집 안에 누군가 아픈 경우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것도 능이 닭백숙이다. 이럴 땐 기름기가 쪽 빠진 단백질 덩어리 웰빙 음식을 뜨끈하게 먹고 자는 것이 최고니까. 능이 닭백숙을 떠올리면 이런 것들이 생각난다. 숲 속의 작은 집. 장작으로 불을 땐 아궁이 위에서 부글부글 끓는 커다란 가마솥. 능이 닭백숙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현실에서는 당연히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려 끓여내는 것이겠지만...
일반적인 닭백숙도 좋지만 굳이 '능이'가 들어가길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닭백숙을 먹을 때 느껴지는 건강한(싫은) 맛을 능이버섯은 고소한 맛으로 승화시킨다. 능이버섯은 '건강 생각해서 억지로 먹는 음식'을 '자주 맛보지 못하는 풍미 깊은 요리'로 탈바꿈시킨다. 나는 처음 능이 닭백숙을 먹어보고 "이건 기존에 먹던 닭백숙과는 달라. 다른 결의 음식이야...!"라고 생각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이 능이 닭백숙이 저녁 식탁에 올랐다. 능이버섯이 우러난 짙은 국물은 색깔마저 보약처럼 좋아 보인다. 남편은 감기에 눈이 부은 채, 살려고 한 술 뜬다. 몸에 대한 최대한의 헌사다. 나에게 최고로 좋은 것을 먹이는 마음이랄까. 늘 이렇게 잘 챙겨 먹어야 여름 감기 같은 고초를 겪지 않을 텐데.
건강한 것들은 왜 하필 맛이 없는 존재들인 것일까? 미각의 저항에도 의연하게 건강한 음식을 삼시세끼 챙겨 먹는 사람들은 얼마나 대단한지. (어쩐지 이 글에서 닭백숙이 맛없는 음식의 대명사가 된 것 같아 미안해진다. 실컷 열심히 고아져 나왔을 뿐인데.)
남편은 국물을 들이켜곤 몸에 열이 나는 것 같단다. 땀을 뻘뻘 흘려 한결 가뿐해져 보이기도 하다. 능이 닭백숙의 효험을 경험한 뒤 서로를 칭찬한다. 오늘은 역시 치킨을 버리고 능이 닭백숙을 택하길 잘했어. 아무리 튀김을 좋아한다고 해도 늘 튀김만 먹을 수는 없다. 우리에겐 이런저런 서로 다른 날들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