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워서갈비 Aug 03. 2021

고양이 집사는 퇴사도 못 해요

오줌 테러에 대처하는 법


(* 경고 : 본 글에는 오줌이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많이 나오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폭염이 계속되는 여름날이었다. 집안으로 도망치듯 들어와 에어컨을 켜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살았다.' 그때 보란 듯이, 아니 맡으란 듯이 내 코를 찌르는 냄새. 정체불명의, 아니 정체가 명확한 이 냄새. 다시 한숨이 나왔다. 이번엔 안도의 한숨이 아닌 폐포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절망의 한숨이었다. 오줌이었다. 고양이의 오줌 냄새였다. 정확히는 둘째 고양이, '꾹이'의 오줌이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포효했다.


"야, 이, 꾹이 땡땡땡아!!!!!"



꾹이에게는 버릇이 있었다. 일명 '오줌 테러'라고 불리는, 오줌을 아무 데나 싸는 버릇이었다. 꾹이는 집 안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오줌을 쌌다. 가장 선호하는 곳은 발수건이었다. 그 외에도 푹신한 곳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이불, 침대 매트리스, 옷, 모자, 러그, 가방 등이 오줌 테러를 당했고 그중 '복구불가능' 판정을 받은 것들은 장렬히 폐기되었다.



고양이는 스스로 배변을 가리는 습성이 있다.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모래를 찾아 배변을 한다. 그리고 냄새가 남지 않도록 모래로 잘 덮어두기까지 한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냄새조차 싫어해 폭풍 같은 속도로 뛰어다니며 (일명 '우다다') 냄새를 없애려는 노력까지 한다. 꾹이도 평소에는 자신의 화장실로 들어가 모래 위에 얌전히 볼일을 보고 덮어두는 매너 있는 고양이이다. 그런 꾹이의 오줌 테러에는 사연이 있다.



나한테 사연이 있다구.



오줌 테러를 하는 이유


어릴 때부터 몸집과 목소리가 크고 행동이 과격했던 아기 고양이 꾹이는 여러 번 파양을 당했다. 주인이 자주 바뀌었다. 내가 여섯 번째 주인이었는데, 우리 집에 왔을 때부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새벽 내내 벽을 긁고 이물질을 주워 먹었다. 나중에 그것이 잦은 파양에서 온 트라우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충분한 사랑을 받고 안정된 이후 그런 행동은 많이 없어졌지만, 오줌 테러만은 남았다. 자신의 불만을 오줌 테러로 표현하는 고양이가 된 것이다. 


하지만 꾹이가 정신 나간 고양이처럼 시도 때도 없이 오줌 테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 한다. 꾹이의 불만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더러움'이다. 꾹이는 더러운 것을 참지 못한다. 꾹이가 오줌 테러를 했을 때 화장실을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더러웠다. 나라도 저런 화장실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러면 슬그머니 미안해지며, '아니 그럼 말로 하지... 아, 너 고양이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화장실만 더럽다고 무조건 오줌 테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집 안 바닥에 굴러다니는 물건들이 없으면 꾹이는 오줌을 싸지 않는다. 그러나 화장실도 더럽고 집 안도 정리정돈이 되어 있지 않다면? No mercy. 무조건이다. 화장실 더러움 + 집 안 더러움 + 오줌 마려움이 오줌 테러의 3요소라도 되는 것 같다. 어쨌든 집 안 더러움만 해결해도 오줌 테러가 줄어드니, 정리를 잘 하자는 결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집사. 정리 좀 잘 하란 말이야.



오줌 테러에 대처하는 법


고양이의 오줌 테러는 모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강렬함을 내뿜는다. 그래서 어딘가에 했다는 것은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나 도대체 어디에 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강렬한 존재감 때문에 어쩐지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블랙 라이트'를 이용해보자. 불을 끄고 라이트를 비추면 고양이 오줌이 형광색으로 보인다.


현장을 찾았다면 흔적이 남지 않도록 지워야 한다. 일단 오줌 세례를 받은 물건들은 버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닦으면 안 되냐고?.. 정신건강을 위해 사용하지 않길 권한다. 다행히 세척이나 세탁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향이 강한 세제로 해결할 수 있다. 그 외의 물건들은 고양이 오줌용 탈취제를 이용하길 추천한다. 냄새가 남아 있으면 같은 곳에 또 오줌 테러를 당할 수 있으니 최대한 냄새를 없애는 것이 좋다.


아니 잠깐. 근데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고? 나도 안다. 내가 뭐 하고 있나 싶은 그 마음을. 그러나 어쩌겠는가. 고양이 집사라는 이 직업에서는 퇴사도 못하는 것을. 오줌 테러하는 고양이라도 그저 끌어안고 갈 수밖에 없다. 



이뻐서 참는다.


고양이들마다 오줌 테러의 원인이 다르다. 대체로 화장실 문제(더러움, 크기 작음, 개수 적음, 모래 불호)나 사료 문제(맛없음)로 좁혀지기는 한다. 그러나 어떤 것이 뾰족한 원인인지는 하나하나 소거해가며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집사들이 지치게 되고, 나 역시 그랬다. 그래도 오줌 테러의 원인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해결이 어렵다. '우리 집 고양이가 왜 그럴까?' 고양이의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집사는 퇴사도 못하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배달 중독자의 고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