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은하수510

[은하수510] '세계'와 '세상'

글 고치는 얘기

by 한봉규 PHILIP

2016년 12월 24일 '컨템포러리 아티스트'로부터 선물 하나가 도착했다. 그 때 그 감흥을 글로 남겼다. 초고를 쓰고 교정교열을 보는 과정에서 글을 마무리 짓는 문단에서 '세계'와 '세상' 두 단어 중 어느 말이 더 내 생각을 잘 표현한 말일까를 고민했다. 사연은 이렇다.


Zbigniew_Kopania2.jpg Zbigniew Kopania


초안

우편함에서 손글씨로 쓴 내 이름이 적힌 봉투를 꺼내는 시간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문 앞에 서 있는 것이다.


1차 교정

내 이름을 손글씨로 쓴 봉투를 우편함에서 꺼낸다. 화가의 세상과 내 세상이 만나는 시간, 봉투를 열자 대자연의 크리스마스 빛이 쏟아진다.


2차 교정

우편함에서 봉투를 꺼낸다. 내 이름이 손글씨로 써 있다.


이 문장 초안을 쓸 때, 3가지를 염두에 뒀다. 첫째, 우편함에 꽂혀 있는 봉투 꺼내는 순간을 '묘사 할 것인가 설명할 것인가', 둘째 봉투 꺼낸 후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였다. 마지막으로 '시간'이란 단어를 쓰고 싶었다. 조이스 히플러(Joyce Hippler) 어록 중 '가장 소중한 선물은 우리의 시간, 친절은 때때로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설명할것인가묘사할것인가

초안은 지루했다. 긴 설명 탓이다. 1차 교정 안 어감은 거북했다. 기교를 너무 부린 탓이다. 2차 교정 문구는 있는 그대로 사실을 단문 묘사한 것이다. 마음에 들었다. 묘사는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는 말을 실감했다. 다음 내용을 궁금하게 만든다는 '묘사의 힘'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봉투 꺼낸 후 느낌

우편함에서 봉투를 꺼내 손에 든 느낌을 특별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선물 보낸 이와 내가 만나는 순간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세계'라는 표현은 느낌은 좋지만 흥은 없었다. '세계'라는 낱말이 그 다음 문장에서 쓴 '문'과 잘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세계(世界) [세:계/세:게]
① 지구 위의 모든 나라 ② 사물이나 현상의 일정한 범위나 분야 ③ 사상이나 심리적 생활 현상의 한정된 어떤 영역

세계적·제삼세계·세계대전·세계시장·세계지도·세계경제·정신세계·내면세계·서방세계·세계정세·세계기록·지옥세계 등으로 사용한다.


'세계'라는 낱말은 내 입장만을 부각하는 듯 싶었다. 선물 받는 이 마음을 고스란히 내 놓는다면 '세계'라는 말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나와 선물 보낸 화가와 마주 보는 느낌은 '세상'이란 말이 더 생생하다. 조이스 히플러가 쓴 문장 의미도 살리는 것 같았고, 다음 문장 속 '문'이라는 말과도 어울렸다. 이렇게 교열하니 마음이 편안했다.


세상(世上 [세:-]
① 생명체가 살고 있는 지구 ②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사회 ③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곳

바깥세상
①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이 아닌 밖의 세상 ② 자기 나라 밖의 세상
③ 일정한 분야나 직업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일반 사람들이 활동하는 사회를 이르는 말


완성 문장


우편함에서 봉투를 꺼낸다. 내 이름이 손글씨로 써 있다. 화가의 세상과 내 세상이 만나는 시간, 봉투를 열자 대자연의 크리스마스 빛이 쏟아진다. 내 세상을 밝혀주는 화가의 그림, 마음의 위안이다. 마지막 레몬 허니 사탕 두 알의 친절함까지 소중하다. 세상과의 교류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선물하는 방법을 터득하면 크리스마스 기적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컨템포러리 아티스트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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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보면 물건을 보내는 일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마음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게 선물이다. 가나모리 우라코 여사의 명언이다.


멀리서 선물이 하나 도착했다. 컨템포러리 아티스트(Contemporary Artist) 고진이 화가가 보낸 마음이다. 우연히 페친이 되었고, 화가의 그림을 보며 탄복했다. 고진이 화가가 쏟아내는 색채에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있어 보였다. 점점이 빛이 사라질 때, 짙은 안개 틈을 헤집고 쫓아오는 빛, 테라스 안쪽으로 쏟아지는 빛은 명언 구 같았다.


'우연은 신이 주는 선물'이란 명언의 주인공이 '나'라는 믿음은 없었다. 하지만 고진이 화가의 노력이 나를 명언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줬다.


우편함에서 봉투를 꺼낸다. 내 이름이 손글씨로 써 있다. 화가의 세상과 내 세상이 만나는 시간, 봉투를 열자 대자연의 크리스마스 빛이 쏟아진다. 내 세상을 밝혀주는 화가의 그림, 마음의 위안이다. 마지막 레몬 허니 사탕 두 알의 친절함까지 소중하다. 세상과의 교류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선물하는 방법을 터득하면 크리스마스 기적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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