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령(Yoonyoung Lee) 작가
그날 비가 왔었는지, 그친 시간은 몇 시인지는 아련하다. 하지만 그날 본 건 분명 검은 꽃 작약이었다. 당시 그 모습이 얼마나 충격이었던지, 유월 중 그날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아침부터 마음이 심란하다. 가슴에 핀 꽃인 줄 모를 리 없기에 뭐라도 해야 했다. 무슨 일이 좋을까. 흰색 교복 상의를 입은 아이들 한 무더기 무더기가 백작약 꽃잎 같아 ‘그래, 작약 꽃 그림을 보고 오자' 마음먹고, 서둘러 몸가짐을 달리했다.
함박 핀 붉은 작약 꽃 앞에 한 소녀가 걸음을 멈췄다. 흘기듯이 바라보다 이내 한없이 꽃을 바라보는 뒷모습이 그 사람을 닮아 흠칫, '이 그림을 직접 봐야겠다'하곤 나서는 길이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다. 그 따듯함은 손에서 손으로 이어가고 꽃잎은 꽃잎대로 기도가 되고 기원이 된다. 그 마음을 이윤령 작가는 꽃과 나무에 담는다고 했다. 이 작품 ‘Peonies · 작약’을 내게 소개하며 일러주신 이 선생님 말이다.
선생께서 마음으로 다듬고 가꾼 작약 꽃은 보는 내내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림 속 소녀 뒤태는 내게 그리운 모습이다.
그 그리움이 아늑한 곳에 햇볕이 잘게 잘게 부서지고 있다. 엄마를 보내던 그 날 그 사람은 눈물을 궁굴리고 있었다. 하지만 흘려보내지는 않았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면 그 날부터 그리움에 빠져 돌아서지 못할 것 같았다고 했다. 그 뒷모습이 작품 속 뒤태와 닮아 그림 앞에서 내가 돌아서지 못하고 있다. 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