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SUNY] 인연을 탐하다④

김수연(Sooyeon Kim) 작가

by 한봉규 PHILIP
image source: 작가의 페이스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문을 열고 빗물을 한 움큼 훔쳤다. 그러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몸을 바스락거리는 일이 조심스럽다. 그럴 수밖에, 내 모든 평화를 깨려는 지령을 받은 듯한 비였기 때문이다. 내가 풀어야 할 일이 있는 것일까. ‘그 사람 일일까?’는 내 혼잣말이었는데 비는 이때다 하고 불도저 이빨 같은 빗줄기로 내 가슴에 웅덩이를 팠다. 빗물은 차올랐고, 소용돌이가 일었다. 그 모양이 마치 물레가 실을 감는 듯했다. 돌돌돌 소리가 날 때마다 빗방울이 실처럼 감긴다. 실타래에선 빛이 났다.


김수연 작가 작품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그 사람이 있는 자리를 고정시킨 못 몸뚱이를 감고 돌아와서는 다시 예서 제까지 감아 돌기를 수차례 반복하는 층을 쌓고 잇는 일. 작가가 이은 인연은 용감한 색을 냈다. 물감이 내는 색과는 달랐고 고유한 질감은 색으로 황홀하게 바들거렸다.


내가 쥐고 있는 인연 실타래 하나를 저리 풀고 싶다. 실마리 한끝을 잡고 길을 내면 실은 색을 입히고, 실이 길을 내면 나는 색을 내고 싶었다. 허탕 치는 날이 수두룩해도 인연 짓는 일이기에 망설이고 싶지 않다.


실이 끊어진 날은 통곡을 논다는 작가 심경은 더는 실을 잇지 못한 내 마음 같아 눈물이 떨어진 곳엔 푸른 멍이 들었다. 내 인연이 늘 그런 양 아렸다. 그런 날은 여지없이 비가 내린다. 그런 날은 창문을 열고 손을 모아 기도를 한다. 그렇게 비를 누에라 치고 작가 손끝을 빌려서라도 실을 뽑아 감고 잇고 짓는 일을 나는 무아지경 하고 싶다.


성가신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일은 인연을 짓는 일. 빙글빙글 차오르는 빗물을 얼굴에서 퍼내는 일이고, 마음을 치고 때리는 고통을 들여다봐 주는 일이다. 허투루 빛나는 색은 없듯이 실을 잇고 감는 인연은 신명이 절로 나는 일이다. 숨차지 않다. 한동안은 작가가 쓸 실 인양 나를 그냥 둬야겠다. 비 오는 날은 인연을 짓는 날이거니 하고 시간은 인연을 푸르게 감아내겠구나 하며 나를 둬야겠다. 그제야 비가 멈췄다. 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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