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에집중하라] 아무 사람이나 돼

by 한봉규 PHILIP
일탐.효리탐.jpg 조미진 작가. 2019.



'한 끼 줍쇼'라는 TV프로그램에 가수 이효리 씨가 출현했을 때 일이다. 집 방문하러 가는 길에 초등학생 여자아이를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강호동 씨가 '어떤 사람이 될 거예요? 어른이 되면?'이라고 물었다. 옆에서 그 질문을 들은 이경규 씨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한다. 또 그 말을 들은 이효리 씨가 '뭘 훌륭한 사람이 돼? 하고 싶은 대로 그냥 아무나 돼'라고 말했다. '센 언니의 쿨한 조언'이라는 자막이 떴고, 아이는 예쁜 미소를 지었다.


이 상황을 캡처해서 누군가가 인터넷 게시판에 게재했다. 게시글 말미에는 '우리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 건데요!!!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지 마세요!!!! 자신들도 못한 거 우리한테 떠넘기지 말라고!!!!'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마지막 문장을 몇 번이고 읽었다. 이경규 씨 말은 '으른 아재들'로, 반면에 이효리 씨 말은 '조언'으로 인식하는 것이 이채로웠다. 특히 게시자가 쓴 세 번째 말 '자신들도 못한 거 우리한테 떠넘기지 말라고'라는 문장은 단호했고, 결기에 차 있어 보였다. 요컨대 '훌륭한 사람'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인 반면 '하고 싶은 대로'라는 말 뜻은 '내 삶 내가 제대로 꾸려 보겠다'라는 의지를 드러낸 듯싶었다. 또한 이 말은 앞 세대에게는 칭찬과 격려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는지 몰라도 지금 내겐 '지나친 간섭'이고, 내 삶을 이래라저래라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경고 의미도 있음이다.


영화 82년 생 김지영에서 주인공 지영이 카페에서 커피를 쏟고는 수습을 하고 있는 데, 한 남자가 '맘 충'이라고 동료와 수군대는 장면. 영화 초반부 공원에서는 자리를 떴던 지영이 이를 악물고 돌아서 그 사람 앞에 서서는 '당신이 나하고 1시간 이상 얘길 해 본적 있느냐. 나를 얼마나 안다고 맘 충이라고 하느냐'라고 따져 물었다. 그다음 장면에서 정신과 의사는 기분이 어땠느냐고 물었고, 지영은 '시원하다'라고 답했다.


앞서 '센 언니의 쿨한 조언' 자막을 읽고 떠 오른 이 장면은 묘하게도 통하는 점이 있어 보였다. 이를테면 '자기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점'이다.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취미가 있는지 알지 못하면서 대뜸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말은 어른으로서 무책임한 행동이고,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강제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또한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떤 슬픔과 고민이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를 벌레로 빗대는 말은 지나친 간섭이고 덜떨어진 자가 부리는 자격지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누구도 타인에게 그렇게 해도 된다는 권리를 부여받은 이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을 자각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동안 내가 알고 행한 리더십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었다. 그 '선함'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해 숱한 날 지식을 쌓는 일에 공을 들였고, '영향력을 끼치기' 위한 훈련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미련 없이 버려야 할 때이다. 리더십은 '끼치는 것' 즉, 팀장과 팀원 간 관계를 위아래로 더는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리더십은 '함께 일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수평관계를 부단히 쌓아야 한다.간혹 '수평 관계'를 두고 '맞먹으려는 것이냐'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 데 그렇지 않다. 수평 관계는 '함께 일하는 방식'을 구현하는 경영 활동이고, 사고 체계다.


이 사고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리더십을 새로 쓰는 첫걸음이다. 그 간 해 온 말 모두가 '으른 아재 형'인 점을 항변하지 않았으면 싶다. 과감히 작별을 고하고 '쿨한 조언'으로 만드는 애를 써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자신들도 못한 거 우리한테 떠넘기지 말라고!!!!'라는 말의 결기를 마음으로 들어야 리더십이 작동한다. '아무나 돼!!!!'라는 말이 '쿨한 조언'으로 받아들이는 사정을 통찰했을 때 리더십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1422.


작가의 이전글[해결에집중하라] 새로 쓰는 리더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