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He(1957 ~ , China)
배부르게 밥을 먹은 후 망설임 없이 스레빠를 신는다. 스레빠 끄는 소리를 내며 이십여 분 걸으면 동네 한 바퀴다.
얕은 언덕배기 중간쯤엔 오래전 이곳을 떠난 사람 살림살이가 흩어져 있는 집이 있다. 이 산책길 가장 을씨년스럽고 누군가 뒷덜미를 잡아끌 것 같은 어설픈 공포가 있는 곳이다. 노래를 한 곡 뽑아 부르는 걸로 이 집을 지나면, 그 위쪽으로 방금 이발을 마친 듯 비탈을 각지게 다듬은 집을 만날 수 있다. 장미꽃을 대신해서 칠해진 저 빨간색 대문이 낯설지 않아 환영 인사를 보낸다. 물론 마음 깊이 말이다.
이 언덕배기 위쪽으로는 더는 오를 수 없다. 고속도로가 산 중턱을 끊어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깊은 골이던 이곳은 깊었던 골이 될 판이였지만, 잊지 않고 산 정상에서 시원하고 깔끔한 산 물이 고속도로 감시를 피해 이곳까지 내려와 깊은 골 소식을 전한다. 골짜기는 여전히 깊어서 바람도 쉬어 가고, 불청객은 오르다 돌아가고, 산새는 알을 낳고 고라니는 새로 태어났단다. 산 물을 모아논 바가지에서 손을 빼니 산 물이 인사하고 아래로 흘러간다.
발걸음은 이제 언덕 아래로 향한다. 한 발 껑충 뛰면 들여다 보일 단층 집 앞에 BMW 3대가 나란히 주차 중이다. 잔치를 벌이는지 웃음소리가 이곳을 모두 은하수로 만들 양이다. '그리 즐거울까?' 가까이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발견한 주인어른이 "뭘 그리 서성이 누 일루 들어와 한자리 차지함세" 할 것 같아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라고 마음 깊이 답례를 했다.
동남향으로 자리를 잡은 집은 안도 다다오를 존경했는지 시멘트로 외벽을 마무리했다. 그 집 앞에는 상추 밭·고추 밭이 텃 밭으로 있고, 그 위로 밤은 잔잔하게 별은 애잔하게 깊은 골 또 다른 정취를 만든다.
그 집을 끼고 골목으로 들어서면 집집마다 외등을 켜둔다. 약주 한 잔 걸치고 휘적휘적 걸어 들어올 우리 집 양반, 옆집 양반 넘어져서 코 깨지지 말라고 알 전구는 눈을 부라리고 있다. 속살을 훤히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은 듯 총총히 빛을 내고 있다. '깊은 골'을 알리는 간판 불이 꺼지면 제법 소화도 다 되어 잠은 깊고 달다. 이제 은하수를 건너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