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담양
대나무와 메타세쿼이아 나무.. 수많은 초록 나무를 만나 걸었던 여행
우리 집은 국내로 가족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이었다. 그때마다 항상 가족 네 명이서 차를 타고 함께 움직였다. 그러니 처음으로 엄마와 단 둘이서 국내여행을 떠나는 건 꽤나 특별한 경험이었다. 작년 겨울에 둘이서 대만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으니 둘만의 여행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국내로만 보면 최초 여행이라 할 수 있었다. 7월에 광주에 간 건 세계수영 선수권대회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수영을 좋아하는 나는 광주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대회를 직접 보고 싶어 했는데, 엄마가 동행하겠다고 하여 같이 1박 2일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엄마가 가고 싶어 했던 담양까지 여행지에 포함시켰다. 내일로 여행 이후로 나도 8년 만에 다시 찾는 담양이었다.
여행 떠나는 날 하루 전에 태풍이 지나갔다. 다행히 '오고 있는'게 아니라 '지나간' 후라 여행을 추진할 수 있었는데, 아직 태풍의 꽁무니가 남아 있었던지 버스 안에선 내리는 비를 봤다. 지리산 중턱 휴게소에 들렀을 땐 갑자기 무척 세차게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비가 그쳤다. 엄마랑 나는 광주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담양 가는 311번 버스를 타러 갔다. 터미널에서 산 도넛을 한입에 쏙 넣으며 허기를 달랬다. 버스 안에서 죽순 모형을 봤을 때 우리가 갈 곳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겼다.
죽녹원에 들어갔다. 비를 가득 머금은 대나무 숲은 참 습했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는 게 어디냐면서 씩씩하게 걸어 다녔는데, 자연을 좋아하는 엄마가 대나무 숲을 신기해하고 좋아해서 옆에서 참 즐거웠다. 대나무는 하늘로 쭉쭉 뻗어 있었다. 너무 뻗어서 윗부분은 휘어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째선가 8년 전보다 대나무가 많이 자란 것 같다. 그런 말을 하니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이야기가 있어. 옛날에 나그네가 잠시 쉬면서 모자를 작은 대나무에 걸어두고 낮잠을 잤대. 그런데 깨고 나서 그 모자를 다시 찾을 수 없었지 뭐야. 그 사이에 대나무가 훌쩍 자라서. 그만큼 대나무는 빠르게 자라."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쭉쭉 뻗은 대나무 숲을 아쉽지 않게 전부 걸어보았다.
이 공간 안에는 전부 대나무를 활용한 무언가가 있었다. 대나무를 소재로 그린 LED미술을 보았고, 대나무를 활용하여 물건을 수공업으로 만드는 무형문화재의 공간도 구경해보았다. 그리고 엄마는 선물가게에서 대나무로 만든 김밥 말이를 샀다. 이후로 엄마의 김밥은 전부 이 말이를 거쳐 나온다.
죽녹원을 나와서 가까운 식당에 죽통밥을 먹으러 갔다. 대나무 기둥을 톡 잘라 만든 그릇에 밥이 담겨 나왔다. 죽순 요리가 있었고, 그 외 반찬과 돼지고기로 만든 떡갈비를 함께 먹었다. 배가 고파 맛있게 먹었다. 식당에서 밥 먹는 동안 소나기가 내렸다. 다 먹고 나오니 그친 비, 촉촉해진 땅을 밝으며 우리는 걸어서 메타세쿼이아 길로 향했다. 관방제림 아랫 길을 따라 걸어갔다. 중간쯤 왔을 때 아차 싶었는데 이미 반을 온 뒤였다. 우리밖에 없어서 당황하며 걸어갔는데 맞은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아저씨가 보여서 물어보니 '이 길 맞다'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8년이 지나고 나니 유료로 전환되어있었다. 입장료는 길을 보전하는데 쓴다고 한다. 입장을 해서 멋진 길을 따라 걸었다. 메타세쿼이아 길의 시원시원함은 참 그대로였다. 이 길을 걸은 후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가 메타세쿼이아가 되었는데.. 이 길은 알까. 비가 완전히 그쳤는지 해가 나무 사이로 조금씩 비쳤다. 예전엔 길밖에 없었는데 이번에 가니 자연생태관 건물도 있고 이 지역 출신 가수의 동상도 있었다. 나오는 길에 엄마랑 사진을 남기고 싶어서 직원 아저씨에게 사진을 부탁했는데, 아저씨는 직업 정신을 100% 발휘해 사진을 정말 많이 찍어주셨다. 우리 뒷모습 사진, 걸어가는 모습, 살짝 돌아보는 모습 등 이 공간을 담는 추억을 잘 알고 재밌게 사진 찍어주셨다. 유쾌한 분이었다.
엄마와 관방제림을 따라 죽녹원 쪽으로 다시 돌아왔다. 관방제림은 오래된 나무가 자기들이 크는 모습 그대로 자라고 있는 길이다. 울퉁불퉁한 흙길이고, 나무뿌리가 웃자라서 땅을 비집고 나오기도 하고, 너무 오래된 나무라서 한아름에도 채 잡히지 않는 거대한 나무들이다. 엄마는 단정한 가로수보다 개성 있게 자라는 관방제림이 더 좋다고 했다. 한참을 쭉 걸어와 드디어 버스 타는 곳에 왔다. 기다리는 길에 댓잎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이걸 안 먹고 갔으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담양을 엄마가 참 좋아해서 다행이었고, 나도 덩달아 즐거웠다. 엄마와 얘기했다. 다음엔 선선한 날씨에 한 번 와보자고. 나도 두 번의 여름 담양을 경험했으니 다음은 시원한 가을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