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오픈세미나] 노동을 보는 눈

2020.04.09

by 한근연

노동을 보는 눈: 우리의 삶 우리의 일


Intro: 우리의 노동, 안녕들 하신가?



장면 하나: 초등학생들이 바라보는 노동


2016년 경향신문은 초등학생 110명에게 ‘노동’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답변 중 일관되게 나타난 것은 ‘불쌍하다’였다. ‘덜 배운 자’ ‘억눌린 자’ ‘노예’라는 답변도 있었다. 학생들의 답변은 전체적으로 노동자는 ‘힘들게 일하면서도 자유를 갖지는 못한 사람’이다.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직업은 ‘아파트경비원’ ‘마트계산원’ 등 단순 노무직이 대부분이었다. 초등학생 뿐만 아니다. 중고등학생들도 대부분 자신이 ‘노동자’가 아닌 ‘전문직’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런 직업을 갖는 사람은 최대로 잡아도 20퍼센트에 불과하다.



장면 둘: 파업은 기득권 다툼?


2016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과반수가 노조와 파업에 대해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국민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에 관해서 ‘기득권의 이기주의’라고 여기고 있다. 실제로 대표적인 강성노조인 현대차노조의 경우 연봉이 9000만원, 정년이 보장됨으로써 사실상 한국사회 상위 10퍼센트의 소득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는 한편, 최근 노조 조직률은 11퍼센트를 돌파하며, 2003년 이후 최고치에 달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현대차노조가 소속된 민주노총은 100만명의 조합원을 돌파하며 한국노총을 제치고 제 1노총이 되었다.



장면 셋: 우리의 노동은 노동이 아니란 말인가?


국제 여론조사 연구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사회가 동성애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응답한 이들의 비율은 2007년 18%에서 2013년 39%로 증가했다.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증가폭이었다. 특히 2013년에 20대(18~29세)의 71%가 ‘사회가 동성애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2014년 실시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터에서 만난 당신의 동료들은 귀하의 LGBTI 정체성을 압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0% 이상이 ‘거의 모른다.’ 혹은 ‘아무도 모른다.’고 대답한 반면 ‘모두 혹은 상당수 알고 있다.’라고 응답한 사람은 5.5%에 불과했다. 이 조사를 두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등에서는 성소수자 노동권을 가시화하기 위한 새로운 노동운동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안녕하세요, 한근연 2020년도 2학기 오픈세미나 2팀입니다. 2팀에서는 ‘노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주제들을 다뤄보고자 하였는데요. 이와 관련하여서 우선 ‘3개의 장면’을 가지고 와보았습니다. 어떤 주제들은 익숙하고, 또 어떤 주제들은 새로운 주제들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장면들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어떤 의견이 먼저 머릿 속에 떠오르시나요?

우리의 삶과 노동은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일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습니다. 이른바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입니다. 현대사회에서는 누구나 돈을 벌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종류로 해서든 우리는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각박한 삶의 현실만큼이나 노동을 두려워하고 어렵게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건물주’를 부러워하기도 하지요. 건물주가 되어서 누군가에게 임대료를 받아서 생활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노동’하지 않아도 될테니까요.

그러한 현실이 바로 초등학생들의 설문 조사 속에서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지요. 초등학생들이 보건대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아마도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며, 그것이 ‘자아실현’과는 털끝만큼도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입니다. 아이들의 생각이라고 보기엔 놀라울만큼 현실을 잘 통찰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 그렇기도 한게, 역대급의 취업난이고 누구나 취업시장에 한발자국이라도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지만, 역시나, 우리 모두 일을 하고 싶어서 일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와 관련해서 또 한편의 생각은 우리의 노동은 꼭 반드시 그렇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노동교육을 강하게 주장하시고 계신, 강수돌교수님이나 하종강교수님은 우리 사회의 노동에 관한 인식이 지나치게 천대받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건전한 직업관을 가지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노동은 쉽게 말하면, 일이고 평생 해야 하는 것이 일이니만큼, 그것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고자 한다면, 우리의 일이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자신의 자아실현과 가까운 것과 연관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겠지요. 하여튼 이 교수님들의 주장에 따르면, 노동은 자아실현이며, 삶 자체가 하나의 노동의 수행이기 때문에, 그것을 긍정하는 것은 곧 삶을 긍정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과연 그렇기만 할까요? 노동을 통해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것들은 아주 극히 일부의 전문직이 아닐까요? 아파트 경비원이나, 청소부를 하면서도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어떤 편견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아주 긴 만큼, 노동 또한 연속되어서 발전될 수 있고 인생의 발전경로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맥락에서 노동에 대한 ‘대안적’ 인식이 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해당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또한 장면 둘과 셋에 나오듯, 그러한 맥락에서 ‘노동권’이라는 것이 중요하게 제기되기도 하지요. 노동 자체에 대한 가치판단 이전에, 노동할 수 있는 자유, 노동할 수 있는 권리부터 우선적으로 중요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파업이나, 소수자의 노동권운동도 그와 유사한 맥락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파업이나 소수자의 노동권운동도 반발에 부딪히기는 매한가지입니다. 파업이 교통을 마비시키거나 소수의 임금노동자를 위한 기득권 운동, 소수자의 노동권 운동은 새로운 특권을 창출할려는 반다수적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톨게이트 파업을 두고 벌어진 인터넷상의 논쟁들이 아마도 그 예일 것입니다. 아, 정말로 노동이라는 주제 어렵네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쟁점별로 하나씩 하나씩, 살펴볼까요?


Q. ‘노동’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렇게 떠올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1. 모두가 수긍하는 노동의 가치란? by 기성


노동의 시작을 알기 위해 우리는 가늠할 수 없는 머나먼 과거를 떠올려야 한다. 발톱, 사족보행, 날개, 단단한 발바닥, 작고 날렵한 몸집, 등 어느 것 하나도 가지지 못했었던 인간이라는 종이 다른 동물 종보다 더 오래 생존하면서 진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던 여러 요인들 중 하나를 꼽자면 ‘분담’을 꼽을 수 있다. 우리가 아는 개미나 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동물들은 분담이라는 행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성별에 따른 생식학적 차이로 인해서 어느 정도 분담이 이루어지긴 하나 이는 서로간의 합의 하에 이루어진 분담이 아닌 생존을 위한 분담에 불과하다. 인간에게서도 이와 같은 성별에 따른 분담이 나타나는데, 이는 ‘사회’의 시작과 관련이 있다. 야생에서 생존을 위해 동굴이나 강가에 모여 군락을 형성했던 인류는 생존을 위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는데, 초기의 인류는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의 가짓수가 극히 적기 때문에 그 분담이 비교적 생식학적 차이로 인한 성별에 따른 분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서 자라나는 다음 세대들에게 이 사회의 체제를 최대한 빠르게, 그대로 이어나가기 위해 이 분담을 사회적 관습으로 굳히게 된 것이 원인이었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이러한 사회적 관습은 이어져, 여성과 소수자의 노동에 대한 시선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데 과거와 달리 노동의 가짓수가 늘어나 개인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고 사회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이어나가지 않아도 사회의 붕괴, 생존의 어려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이러한 시선은 분명 바뀌어야 할 것이다. 자세한 내용과 토론은 다음 주제에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초기 인류 사회에서 발생한 분담이라는 개념이 사회에서 확장되면서 새로운 가치를 갖게 된다. 사유재산, 지배층과 피지배층, 정복 활동, 등의 개념이 생겨나면서 분담은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타인에게 일을 시키는 ‘고용’, 즉 ‘노동’이라는 형태를 띠게 된다. 초기의 노동은 고용주의 일방적인 노동자에 대한 업무 부과 형태(우리나라의 경우, 백성들에게 부역을 강제한 것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로, 상하구조가 명백하여 노동자의 권리나 노동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유재산이 없이 남에게 고용되어 노동하는 행위는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으며 이것이 현대까지 이어져 우리가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러나 ‘인권’의 신장과 기본권에 대한 인식이 재고되면서 ‘노동’의 가치도 변화를 맞게 된다. 기존의 고용주와 노동자의 상하관계는 명백하게 인권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였고 근로기준법과 같은 노동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이 정립되기 시작한다. 고용주와 노동자 간의 노동 계약을 고용주가 위반했을 경우,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러 방법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여기서 노동자 연합이 고용주와의 계약 사항을 보고 계약 불이행, 계약 자체의 문제, 기타 근로기준법 위반, 차별, 등의 문제를 인식하면 파업 체제에 들어간다는 수단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 ‘파업’이라는 수단도 녹록치 않다. 일단 ‘파업’은 상당히 강경한 수단으로 고용주와 노동자 측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노동자 측에서 문제를 제고하거나 공론화할 수단에 한계를 느끼기 때문에 파업 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한진 중공업 사태, 쌍용자동차 사태, 최근 톨게이트 파업까지 여전히 파업에 이르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아직까지도 파업 이전에 노사 간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시스템이 미력하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몇몇 파업 사태의 결말이 노동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었다.(이 경우 파업 자체가 불법인 경우가 많다.)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은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었고 다시 복직을 하더라도 노동자들이 좋지 않은 조건으로 어쩔 수 없이 합의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들어본 말은 이와 달랐다. 뉴스에 종종 나오는 파업 사태를 보고 부모님들은 노조 측에서 너무 욕심이 많아 좋은 근로조건에서도 계속 파업을 주도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학교 선생님, 동아리 OB선배님들, 등과 같은 5~60대 분들도 비슷한 언급을 하셨던 기억이 있다. 조사해본 대부분의 파업 사태들은 기업의 일방적인 정리해고나 계약 불이행 등 일방적으로 갑질을 하여 노동자들의 권리를 억압한 경우가 많았으나 오히려 경기도 좋지 않은데 시도 때도 없이 파업을 일삼는다던지, 더 힘든 조건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배가 불렀다던지, 순수한 의미의 파업이 아닌 정치적으로 일부 진영에 의해 주도되는 것 같다던지 등의 파업에 대한 불편한 시선들이 존재했었다.



Q.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들의 또 다른 원인들이 있을까? 혹은 이 부정적인 시선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들이 있을까?


Q. 노동의 가치는 절대적인 것인가? 노동 문제는 단순히 노동이라는 카테고리를 넘어 사회의 여러 문제에 적용될 수 있는 ‘갑을’관계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고용주와 노동자가 과연 평등한 위치 선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음..노동에 대한 시각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위에서 언급되었던 파업의 경우, 서로 대립되는 시각이 존재하는 대표적인 이슈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한 번 파업을 보는 시선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고, 그를 통해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더 얘기를 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2. 파업을 보는 시선 by 승환


2020년 오늘날, 현대 사회에 사는 사람이라면 어디에선가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파업은 사실 정말 생활 가까이에 있는 문제다. 올해 초에도 서울지하철 노조의 파업이 이슈가 되었었고, 이는 대중교통을 평소에 이용하는 많은 시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 외에도 우체국이나 톨게이트, 교직원 등의 공공부문의 노동자들, 더 가까이는 고려대에서도 몇 년 전 청소노동자들이 파업을 했었다. 그 외에도 전국의 다양한 직종과 분야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은 항상 있어왔던 일이다. 물론, 자주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현대차를 비롯한 사기업 노조들의 파업들도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이렇듯 파업은 항상 우리 사회의 근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사실 어쩌면 (과장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내가 아는 사람이, 혹은 본인이 직접 파업을 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런 ‘파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우선 파업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파업이므로 일을 하지 않는다. 대신 빨간 머리띠를 머리에 두르고, 똑같이 빨간색(아니면 어떤 다른 원색깔의) 조끼를 입은 나이 많은 찐 어른들이 바닥에 앉아서 구호를 외친다. 표정은 성나고 억울한 표정. 꽤나 위압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분들은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일까?


일단 밥그릇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밥그릇은 중요하다. 일단 밥그릇을 채워야 하니까 다들 일을 하려는 것 아닌가? 아마 저 사람들은 자신의 밥그릇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 것이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근로조건이 또다른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워라밸이 중요한 시대이고, 사실 그건 사람이라면 나이에 관계없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그 사람들은 밥그릇과 근로조건 때문에 파업을 하는 게 될 것이고, 그에 대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파업을 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기업주이거나 고용자의 입장에서는 꽤나 답답한 일일 것 같기도 하다. 당장 회사는 굴러가야 하고, 특히나 공기업이라면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가게 된다. 사실상 시민들의 피해를 볼모삼아 자신들의 이익을 더 받겠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공기업이 아니더라도, 기업은 노동자들이 일을 해야 수익도 나고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갈 텐데, 노동자들은 자기들 생각만 하고 기업 생각은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경제난이고, 심지어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졌는데도 불구하고 파업을 한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너무 자신들 생각만 하고, 기업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기업 생각을 해야 할까? 자신들 생각만 하면 안 되는 것일까? 노동자와 기업 간의 관계는 어때야 하고, 둘 사이의 관계는 현실에서 어떤 방식으로 조정되고 있으며 어떻게 조정되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택시 파업이나 톨게이트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택시나 톨게이트 수납업무의 경우, 인력거꾼이나 영화 간판 화가처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인데, 그만큼 줄어드는 고용 수요를 억지로 맞춰줄 필요가 있을 것인가? 고용 수요가 줄어들, 전망이 좋지 않은 직업을 택한 사람이 감수해야 할 몫이 아닌가? 물론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일종의 삶의 투자 실패를 했다고 볼 일이 아닌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삶의 방식을 관철시키거나, 사회적으로 보완할 방법은 없을까? 애초에 보완을 해야 하는가?



Q. 파업에 관해서 들어본 적 있나요? 파업에 대해서 그동안 어떻게 생각해왔나요?


Q. 노사 간 근로 계약 문제를 국가에서 어느 정도로 개입을 할 수 있으며 ‘파업’이 아닌 다른 방안으로 노동자의 근로 계약 문제의 공론화는 가능할까요? 그리고 이를 해결할 다른 제도나 시스템이 존재할까요? 한편, ‘파업’이라는 수단은 과연 옳은 수단일까요?


Q. 기술 발전으로 인해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직업들이 있는데, 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어떤 대응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3. 소수자의 노동 by 환엽


#세상이 말하는 노동은 나의 노동일까?


‘노동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리에 떠오르는 전형적인 상은 노란 철모를 머리에 쓰고 파란 작업복을 입은 4,50대의 중장년 남성일 것이다. 사무직에 적용해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얀 와이셔츠와 때 묻은 서류가방을 든 중장년의 남성’.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상정하는 노동자의 기본 값에 가깝다. 언론에서 다루는 노동자 혹은 노동조합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우외환…日보복 혼란속 현대車 파업 강행하나 (뉴스1 19.07.30)

https://www.news1.kr/articles/?3683329

민주노총 오늘 총파업...현대차 노조 불참 '반쪽 파업' (YTN 19.03.06)

https://www.ytn.co.kr/_ln/0103_201903060117425917

[단독] "코로나에 경제위기 현실화" 기아차 노조 잔업TFT 중단 (서울경제 20.04.01)

https://www.sedaily.com/NewsView/1Z1B1XOHUO


노조, 혹은 노동을 키워드로 보았을 때 우리 언론이 가장 일반적으로 다루는 내용들이다. 언론이 이야기하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대기업의 정규직이자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같은 거대 노동조합에 소속된 조직화된 노동자들이다. 다시 말해 우리사회가 이야기하는 노동자란, 앞서 말한 중장년층의 남성이라는 특징에 더해 대기업에 근무하는 조직화된 노동자인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사회가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라고 규정한 노동자의 모습은 대다수의 노동하는 사람들의 얼굴들과 괴리되어 있다. 2018년 노조직률은 10%를 갓 넘은 11.8%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가 보편적이라고 인식하는 노동자의 모습은 넓게 잡아도 열에 하나밖에는 되지 못한다. 노동운동 밖에 노동이 있는 것이다. 이들은 수화기 뒤에서 누군가의 얼굴 없는 폭언을 들어야만 하는 비정규직 여성전화상담원이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구직 싸이트를 뒤지는 청년이다. 졸음을 참아가며 새벽녘 편의점 계산대를 지키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이고, 정체성이 밝혀지면 계속 노동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성소수자이자 부당한 지시에도 행여 불이익을 당할까 참고 일해야 하는 이주민이다. 사회가 상정한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노동자의 모습에서 탈락한, 그간의 노동운동이 포괄하지 못한 소수자들이 사실은 노동자를 구성하는 다수인 것이다. 그간의 노동운동은 거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고 진보정당 또한 조직화된 노동조합의 지지를 받는 것에 그쳐왔으나, 사실 노동은 노동운동 밖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노동은 오늘날 단지 일을 하고 돈을 버는 행위를 넘어 한 사람의 사회경제적 지위, 삶의 형태, 정신적 및 신체적 건강과 직결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특히 위와 같은 영역에서 소외되고 있는 소수자들에게 더욱 깊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소수이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인 이들의 노동의 양태를 조명해보는 것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노동시장 진입에서의 소수자에 대한 차별


노동시장은 일상생활에 비해 성별 규범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는 영역이라고 할 것이다. 노동 현장에서는 각 개인의 생물학적 성별에 맞는 젠더의 수행이 요구되며 이성애 검증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노동 현장에서의 젠더 수행은 물론이고, 화장실이나 탈의실의 이용, 유니폼의 형태, 혼인의 여부 및 동료들과의 일상적 어울림에서도 성소수자는 일탈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김리한 2020, 4). 따라서 소수자에게는 직장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굉장한 제약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입사지원시에도 명백한 장벽이 존재한다. 국가인권위원회(2016)가 입사지원서(3,567개)의 기재 요소들을 모니터링한 결과 ‘학력과 출신학교, 사진을 포함한 외모 및 신체조건, 성별조건, 출신지역, 혼인 여부’등의 개인정보를 요구하고 있었다. 위와 같은 정보의 요구는 사회 정상성 규범에 맞지 않는 성 소수자 및 이주 노동자, 장애인 등 소수자 집단을 지원서 단계에서부터 배제하는 기제로 작용하는 위험성이 있다. 더군다나 입사 지원 과정에서 면접 공간은 소수자에게 자신의 생산성을 증명해야 하는 장소일 뿐 아니라, 취업을 위해 소수자성을 은폐하거나 드러내는 정도를 세심하게 조정해야 하는 공간이 되게 된다. “왜 머리가 그렇게 짧나(혹은 기나)?”, “왜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나?” “만나는 사람은 있나?” “평소에도 화장을 (안)하고 다니나?” 라는 질문 들 앞에 소수자는 스스로를 검열하거나 은폐하게 된다.


“제 서류를 딱 보더니 ‘주민번호가 1번이시네요. 군대도 갔다 오셨네요. 근데 외모가 여성이네요. 어떻게 되신 거에요’ 이렇게 물어봐요. ‘어떻게, 수술은 하셨습니까’ 그런 민망한 부분까지 파고 들면 상당히 불쾌하죠, 불쾌하고 당혹스럽기도 하고. 근데 결과적으론 뽑아주지도 않을 거면서 쓸데없는 질문은 진짜 많이 하니까. 군대는 어디 갔다 왔냐느니.......(다원, MTF, 28세).”


“제가 이제 여자로서 패싱이 된 상태에서 주민번호가 다를 경우에는, 주민번호 알게 되면 주민번호 걸고 넘어가고, 업무능력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아요. 그런 거(정체성)를 화두로 두고......(연정,MTF, 29세).” (김리한 2020, 56)


#노동시장 진입 이후의 차별


노동시장에서 ‘정상성’이란 곧 생산성으로 치환할 수 있다. ‘비정상성’이 외연으로 가시화됐을 때, 즉 자신이 ‘일반적이지 않음’이 밖으로 드러났을 때 생산성이 없는 것으로 취급받게 되는 것이다. 기업은 굳이 조직 문화에서 남들과 다른 이질성을 가진 사람을 ‘받아들일 필요성이 없는’ 것으로 인식해 버린다. 여기서의 정상성이란 이성애중심주의와 성별 이분법을 통해 구성되며, 이는 결혼제도나 주민등록제도를 통해 사회적으로 공인된다.


‘너는 왜 머리가 짧아’ 이렇게 물어보면 ‘제가 머리 짧은게 좋아요.’ 라고 얘기를 하게 되는데, 그걸로 납득이 안 되는 거죠, 그 사람들은. 더 뭔가 많은걸 원하고, 호기심을 갖고 저한테 물어보는데(중략) ‘계속 (머리) 기르면 안 돼? 기를 수 없을까’.......(중략).......어느 회사를 가던지 간에 머리카락 길이 문제는 늘 있었고........(중략).......‘너 왜 남자셔츠 입고 다녀’ 이런 식으로......(지우). (김리한, 2020, 51).


제가 솔직히 배운 게 많이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공사판 아니면, 기술을 배우던가 해야 되는데......(중략)......그쪽 사람들은 되게 거칠어요. 근데 거기다 대고 (‘남성적이지 않은’ 모습을)해 버리면 큰 일 나죠. 잘릴 수도 있을 것 같아. 난 무서워 그런게.......(중략)......일부러 목소리 더 걸걸하게 내려고 하고, 일부러 행동도 좀 우직해 보이게 하려고 하고, 남성적인 면을 강조하려고 하죠. 그래야 되니까.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해야 되니까. 이곳에서 할 수 있으니까 일을..(민준) (김리한, 2020, 70).


소수자들이 직장에서 사회적 규범성에 맞출 것을 요구하는 일종의 ‘불링’을 당하게 되는 배경에는 그들의 취약한 고용 지위가 또한 영향을 미친다. 앞서 말한 다양한 입사지원시 요구되는 조건들 때문에 그러한 조건들에서 일반적으로 탈락하게 되는 소수자들은 불안정하고 단기적이며, 저임금의 노동시장에 투입되는 경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여건이 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거나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자영업으로 옮기게 되는 경향성을 보이는데, 그나마 그러한 여건조차 녹록치 못한 소수자들은 계속해서 불안정한 노동의 쳇바퀴 속에 남게 되는 것이다.


Q1. 아르바이트 노동 등 노동시장에 진입하고자 했을 때 스스로를 검열했던, 해야 했던 경험이 있나요?

Q2. ‘정상적 노동자’의 기준에 탈락한 소수자들은 소수로 보이지면 사실은 다수임을 확인했습니다. 소수자에게 친화적인 채용환경,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리한. “한국 20대 성 소수자의 노동시장 진입 차별 경험 및 대응 전략”, 고려대학교 대학원, 2020.



4. 결론을 대신하여: 보론, 마녀, 그리고 ‘made in china’


그러나 15세기 말이 되면 반혁명이 사회적 정치적 삶의 모든 수준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먼저 정치당국들이 가장 젊고 반항적인 남성 노동자들에게 자유로운 성관계를 허용하는 악랄한 성정책을 통해 그들을 포섭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로 인해 계급적대가 프롤레타리아 여성에 대한 적대로 바뀌게 되었다. 자크 로시오가 중세메춘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지방당국들은 피해자가 하층민 여성인 경우에는 강간을 사실상 범죄가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캘리번과 마녀, 실비아 페데리치



모든 성인 남성이 아내를 가질 수 있고 가족을 꾸릴 수 있으며,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받는 조건을 만들라.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스스로와 자연에게 죄를 범하는 희생자가 되고, 성과 인간의 살을 거래하면서 오염되는 불쌍한 피조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조건을 만들라. 아내와 어머니는 가족과 가정의 일만 할 수 있도록 하라. 남성이 중대한 공무와 가족을 위한 의무를 대표한다면 아내와 어머니는 가정생활의 안락함과 시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은 우아함과 아름다움으로 사회적 예절을 순화시키고, 인간이 좀더 품위 있고 고상한 수준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여성, 자연, 식민지와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 마리아 미즈



지금까지 노동을 보는 다양한 시각에 대해서 다뤄보았습니다. 노동에 관해서 다양한 쟁점들이 존재하는 만큼, 병렬적이지만 풍성하고 다양한 논의를 해보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쟁점들을 다루면서 정리가 조금 되셨나요? 이 문제에 관해서 내 입장은 이런 것이여야겠다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마무리를 하기 전에, 다른 논의를 하나 추가해보고자 합니다. 위에 제시된 책들은 모두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점에 나타난 어떤 현상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 현상은 이른바 ‘마녀사냥’이라고 불리는 현상인데요. 흔히 광기의 대명사로 불리는 마녀사냥은 보통 중세의 암흑시대를 상징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조금 다른 시각을 제출하는데요. 실제로 마녀사냥이 가장 많이 성행하였던 시기는 17세기에서 18세기, 중세라기보다는 근대에 많이 가까운 시기였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공화국과 헌법들이 등장하고 자유주의와 합리적 이성의 전성기였던 이 시기, 가장 많이 마녀사냥이 이뤄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실비아 페데리치는 자신의 저서 <캘리번과 마녀>에서 이러한 마녀사냥이 사실상 여성 노동을 ‘가정으로 축출’하는 자본주의의 전초작업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따르면, 중세 봉건제 말기에 들어서 봉건체계가 위협에 처하면서 대규모 농민반란들이 일어나는데, 이 동요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지배계급은 남성 노동자들과 동맹을 체결합니다. 남성 노동자들에게 ‘가정을 만들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대신, 그들이 지배계급에게 요구하는 요구사항들을 진정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의 노동, 아동의 노동은 딱히 보호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의식이 형성되지 않았고 대규모 여성노동과 아동노동이 존재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여성노동과 아동노동은 성인남성보다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상인과 지주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성이 ‘집밖으로 나와’ 일하게 되면, 노동자들에게 가사노동을 제공할 ‘돌봄 노동’에는 공백이 생기게 됩니다. 중세만 하더라도, 대부분 노동이 농촌에서 이뤄지는 자급자족이었기 때문에 이는 해결될 수 있었지만,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서자 이러한 돌봄노동의 공백은 큰 삶의 질의 저하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지배계급은 ‘가족을 돌볼 아내’를 맞이할 권리를 노동자들에게 줌으로써 그들의 요구를 퉁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집밖의 거대한 산업을 차지하던 여성들에게 ‘아내의 미덕’을 찬양하는 시와 소설이 발표되기 시작했고 점차 국가 또한 여성노동을 하등시하는 관점이 등장했습니다. 남성은 공적 사무, 여성은 사적 사무에 종사한다는 이른바 ‘빅토리아적’ 핵가족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고 이에 저항하는 여성들 역시 존재했습니다. 그러한 여성들에게는 가혹한 박해가 주어졌습니다. 자유로운 여성에 대한 경멸이 성적인 문란함, 오염의 이미지와 결부되어 결국 ‘마녀사냥’이 대규모로 성행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러한 ‘마녀사냥’의 결과,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가 완성되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의 전형인 핵가족, 그리고 임금노동, 그리고 모든 것을 시장에서 구입해야 하는 상품시장, 이러한 요소들은 우리가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오늘날 우리사회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역사는 오늘 우리가 다룬 주제들과도 일정 부분 겹쳐집니다. 당연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해서 생각하고 궁리하면 할수록, 우리는 과거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우리들의 계승자입니다.

인트로에서 저는 우리가 노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질문하였습니다. 여러 쟁점들을 거쳐 든 생각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노동을 보는 눈은 우리의 일, 결국 우리의 삶 자체를, 우리가 사는 세계를 보는 눈과 깊은 연관을 가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일을 하는 방식, 우리가 일을 하게 되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형성해온 역사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형성되어온 역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결국 과장 좀 보태면, 노동을 보는 눈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그 역사와 현재를 파악하고, 그래서 나는 어떻게 일할 것인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때야 할 것인지, 바라보는 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래의 노동은 어떨까요? 이와 관련하여 한 장의 사진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로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이 낸 표지 사진입니다. ‘made in china’라고 되어있는 이 사진 속에는 전염병을 몰고 온 중국에 대한 인종주의적 혐의가 짙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림 속에 배치되어 빨간색 아이폰을 보면 심상치 않습니다. 빨간색 아이폰, 그리고 세계화가 준 충격은 단순히 전염병만이 ‘made in china’ 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노동을,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조직해왔는지를 간명히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미래의 노동은 어떨까요? 마녀, 그리고 ‘made in china’.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일하게 될까요?



*한근연은 1985년 창립되어, 고려대학교에서 중앙 학회로 활동하며, 한국사회의 다양한 주제에 관해서 토론하고 실천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근연 브런치에서는 세미나 글, 회원 개인 글 등 다양한 주제의 글들이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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