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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형훈 Jul 02. 2024

제주문학관 북토크 Q&A

2024. 6. 20. 19:00 ~ 21:00

 첫 북토크가 끝나고 2주가 지난 지금, 2개의 영상 공모작을 제출해서야 인스타그램에서 약속한 글을 작성합니다. 너무 각 잡지 않고 편하게 문장을 쓰겠습니다.


 보라색 포스트잇에 남겨진 글이 제게 묻는 질문들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보라색인데, 저날 제게 배정된 색이 그 색이라 은근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대로 촬영하지 못한 1개의 질문을 제외한 총 4개의 질문의 대답을 적어보겠습니다.



    

 Q1. 다양한 작업 중, 기억에 남는 공연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1. 공연은 제가 1회밖에 진행하지 않아서 '기억에 남는 공연'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23년 12월에 <아래로 진동하는>이 그 공연입니다.


 근래에 있어서 제게 가장 많은 배울 점을 준 기획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타 분야 예술가분들과 협업을 하는 게 엄청 재밌었거든요.


 작곡가가 만든 음악을 듣고, 작곡가가 제시한 키워드를 이용해 제가 이야기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맞게 영상을 만들어 연주자와 무용수분들께 전달합니다. 전달할 때도 최대한 연주자와 무용수분들이 납득하고, 몰입할 수 있게끔 충분한 설명을 함께 준비했습니다. 그러면 감상에 대한 피드백이 오고, 이를 다시 적용하기를 반복합니다.


 이 사이클을 8번 실행하니 8개월이 흘렀고, 8개 곡의 영상이 만들어졌습니다.


 공연 전날 딱 하루 리허설을 할 수 있었는데요. 이날 영상 테스트를 하면서 '큰일 났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연장 디스플레이 스펙 시트에 맞게 작업을 해왔는데, 색이 다르게 나온다던가, 일부 화면이 일그러지는 것을 확인했거든요.


왼쪽은 저희 프로젝트 대표님이 멋지게 연주하고 계신 당시의 현장 사진이고, 오른쪽은 제 작업용 모니터를 그대로 캡쳐한 사진입니다.

 흰색 오브젝트 좌측을 보시면 'R'의 초록색이 검은 배경 부분을 침범합니다. 확대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집에 모니터가 3대나 있고, 미니LED를 사용하는 디스플레이도 하나 있어서 리허설 전에 테스트하고 갔는데 저렇게 표현이 되니 당황스러웠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공연장에 사용된 LED 패널의 컨디션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더군요. 똑같이 생긴 정사각형 패널을 수십장 혹은 수백 장을 이어 붙여야 저런 대형 화면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연하였습니다.


 그날 새벽까지 특히 문제가 되는 색을 따로 조절하여 수정했고, 위 사진 정도로 어떻게든 커버했습니다.

 이외로, 공연 당일 날 영상 송출 컴퓨터가 갑자기 꺼져버려서 공연이 잠시 지연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공연을 보러 온 친구들은 처음에 연출인 줄 알았다고 하네요.


 전시할 때도 그렇고 항상 당일이 되면 무언가 하나씩 고장을 일으킵니다.


 9개월간 이러저러한 서사가 쌓여버려서 이 공연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리고 그 이후에 뭔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거든요.



 

Q2. 소설을 시각화한다는 말은 어떤 뜻인가요?


 A2.'소설의 시각화'는 제게 있어서 꽤 이런저런 시도가 있는 작업입니다. 하지만 주요 사용되는 의미는 소설 속 등장인물이 보고 있는 것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등장하는 지하 폭포를 작가가 분명히 글로 묘사했고, 저는 이를 상상해서 나름의 폭포를 그려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상상한 폭포 말고, 작가가 상상한 폭포를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말하는 '작가의 폭포'를 만들어내는 것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재현'만 하면 문학을 복합한 의미가 사라져 버리니 영상을 보면서도 소설 속 느낌이 나도록 머리를 쥐어짜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민하다 만들어진 것이 이번에 제주문학관에 전시한 <릴리가 두고 간 영원>입니다. 이 작품은 시각 작품이 한 화면에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것을 이용해서 제작된 것입니다.

영상=주인공의 현재 상황 / 텍스트=주인공의 과거

 관람객이 주로 보게 되는 중앙의 '텍스트'는 주인공이 겪은 과거의 일로, '영상'처럼 행동하는 원인이 됩니다. 이렇게 연출하면 이야기의 현재와 과거를 한 화면에 담을 수 있기 때문에 꽤 재밌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약하면, 제게 있어서 '소설의 시각화'는 작가가 직접 보거나 상상한 것을 직접 재현하는 것, 제한된 공간에 많은 정보를 담아보는 것입니다. 앞으로 더 색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기를 자신에게 바라고 있습니다.




Q3. '우리는 고리 위에 있다'에서 광합성 열차와 같은 소재를 어떻게 생각하였나요?


 A3. 이 소설에서 주제를 관통하는 단어는 '고리'입니다. 그래서 주인공 주변에 물리적이던, 이상적이던 고리를 형성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배치하였습니다.


 주요 무대가 되는 '탈 것'을 정하는 부분은 의외로 수월하게 기획하였습니다. 특정 질환을 치료하는 공간이기 때문인데요. 아무래도, 수면 위나 공중은 탑승객에게 긴 시간의 안정감을 주기에 어려울 것 같아서 열차로 이미지를 그렸습니다.


 여기에, 이야기의 배경이 지금으로부터 천 년쯤 미래이므로 현재 지구에 없는 형태로 개조시키니 '광합성 열차'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Q4. 미디어 아트와 소설 중, 어떤 게 창작하기 어려운가요?


A4. 재미없게 말씀드리면, 둘 다 어렵습니다. 제가 배우거나 경험한 것들을 꺼내서 가장 어디서 안 봤던 것, 안 겹치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도 조금 재미있게 말씀드리면, 제가 하는 작업에 한해서는 영상 작품을 만드는 게 더 어렵습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다 만든 이야기에 추가 작업이 더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찰나(2017)
미션(2018)
우리는 고리 위에 있다(2023)

 각각 제가 쓴 장편소설의 분량입니다. 요즘은 200자 원고지 기준 600매 이상을 장편으로 여기니 <미션>은 중편이 되겠습니다.


 이야기를 완성하는 데 평균 12~14개월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세계관 만드는 거랑 인물 설정에 1/3의 시간을 썼던 것 같습니다. 퇴고는 시간 날 때마다 했으니, 시간에서 제하였습니다.


 개인 작업을 할 때는 무조건 소설을 베이스로 하므로 이야기가 만들어져야 영상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영상 매체에 어울리게 이야기의 순서나 내용을 바꿔야 하고, 영상 음악도 제가 직접 만들고 있어서 시간이 더욱 걸립니다.


전시 공간 배경 음악 만들기
3D 애니메이션 및 후처리


 이번에 전시한 <릴리가 두고 간 영원>은 A4용지 2페이지 반짜리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제 고민을 그대로 표출한 것이라서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소요하여 금방 쓸 수 있었는데요. 이를 영상에 맞게 깎아내고, 편집하고, 3D 오브젝트를 만들고, 음악을 만드는 데 4개월이 더 걸렸습니다.


 표현 매체를 바꾸면서 깨닫게 되는 것도 이러한 부분입니다. '빠르면 5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읽는 글을, 영상으로 만드니 14분이 되는구나.' 하면서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었죠. 표현력의 한계도 피부로 느꼈습니다.




 벌써 이 Q&A를 쓴 지 네 시간이 흘렀습니다.


 사실, 이번에 북토크를 함께 했던 작가님들이 워낙 유명하시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들이셔서 제게 오는 질문은 당연히 적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그리고, 포스트잇으로 제게 궁금한 것들을 많이 남겨주셔서 큰 감동을 하였습니다. 저는 반전에 쉽게 감동하는 사람이거든요. 이에, 될 수 있는 한 솔직하고 진지하게 답변을 드리고 싶어서 브런치로나마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8년간, 장편소설 세 편과 단편소설 한 편을 발표하였습니다. 본명과 함께 필명으로도 글을 계속 쓰고 있고, 발표하지 못한 단편들도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다시 운이 따라주어서 작년처럼 좋은 매체를 통해 다른 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왔으면 좋겠네요.


 계속 열심히 활동하면 다시 뵐 수 있는 날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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