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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또 Oct 04. 2017

함께하는 디자인

인턴, 네덜란드 #10. 디자인 워크샵



  (사실) 네덜란드는 디자인 강국이다. 디자인 분야가 아닌 친구들은 내가 왜 여기 있나 항상 물어보곤 하지만, 이 곳은 그래픽과 건축부터 델프트 공대의 디자인 리서치 분야까지 폭넓게 알려져 있는 나름 디자인 선진국이다. 이 곳만의 특징을 꼽으라면, 런던처럼 톡톡 튀는 힙스터스러운 디자인보다는 좀 더 잔잔하면서도 똑똑하고 충실한 디자인. 네덜란드 특유의 해학적인 매력이 가미되었지만, 가벼움보다는 단단함이 먼저 느껴지는 디자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건축 분야에서 생각보다 굉장히 원색을 많이 쓰는 등 도전적인 경향이 있는데, 세상에 노랑, 초록, 빨강이 모두 들어간 건물에서조차도 촌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느 하나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 디자인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네덜란드 디자인이다.

  나는 이곳에서 디자인 리서치 부서를 다니고 있다. 인턴 중이지만, 한 프로젝트의 인터랙션 디자이너로써 증강현실 기반 디자인을 맡아 일하고 있다. 사용자 중심 디자인이 기본인 이 곳에선, 전반적인 모든 (디자인) 업무에 기본적으로 UX 관점이 요구되며, 학교에서 사용자 중심 디자인 방법론으로 배우고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모든 업무에 적용되고 있었다. 제품이든 서비스이든 인터랙션이든, 모든 관계자가 모여 회의하고 사용자 리서치를 기획하고 분석한다. 포스트잇을 협찬받았나 착각할 정도로 모든 의사소통, 그리고 내 자리까지 이미 포스트잇으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새삼 일을 하고 있더라면, 아 내가 한국에서 외주 할 때 하던 '외형' 디자인이 아니라, 내가 그동안 배워왔던 디자인 띵킹을 하고 있구나 하는 감회가 들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일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이곳의 문화는 바로, 하루가 멀다 하고 진행되었던 워크샵 문화이다.




  흔히 워크샵이란, 친목도모의 목적성이 강하며 거의 대부분의 단체에서 정기적으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에서 혹은 학과에서, 연구실 단위끼리도 최소 1박을 기준으로 본래의 장소에서 벗어나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다 같이 놀러 가곤 했다. 업무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지만, 그보다 친목도모를 위한 액티비티가 더 많았다. 그것이 흔히 알려져 있는 워크샵이다. 

  여기서는 그것과 조금 다른 (디자인) 워크샵을 말해보고자 한다. 하루에 3-5시간 정도 다 같이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조금 긴 디자인 미팅. 발표와 토론 중심이 아닌 다 같이 어떠한 활동을 하며 의견을 교환하는 워크샵. 학교 다양한 프로젝트에서도 이러한 워크샵을 많이 경험해보았지만, 네덜란드 교수님이 계시는 연구실에 들어가게 되었고, 뭔가 또 다른, 하드코어 워크샵을 경험하였었다. 분명 어디 새로운 곳을 가긴 가는데, 좋은 공기는 무슨 에어컨 잘 나오고 프로젝터를 쏘기 좋은 가까운 회의실을 예약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 같이 인텐시브 하게 아이디에이션 하기를 며칠 반복하였다. 우리 교수님의 특징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웬걸, 이 곳에 오니 회사의 모든 회의실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워크샵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디자인 워크샵은 보다 더 크리에이티브하게 의견을 공유하고자 다양한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곳의 워크샵 사랑을 알게 된 건, 한 달도 일주일도 아닌 첫 출근날. 오전에 회사 로비에서 보스와 만나 커피를 마시며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며 내 머릿속엔 작은 환상과 걱정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내 자리는 어떻게 생겼을까? 팀원들은 누구일까? 내 소개는 어떻게 해야 하지? 등등의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마친 후 보스를 따라 들어간 곳은 사무실이 아닌 회의실이었다. 그렇게 나는 출근한 지 30분 만에 워크샵에 참여했다.

  나도 그 사람들도 서로 누군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웃으며 반겨줬다. 그 당시의 나는 이 회사가 정확히 어떤 프로젝트를 하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했지만, 그렇게 3시간가량 아이디에이션 워크샵에 참여했었다. 알고 보니 그 자리에 있던 8명 중 두 명을 제외하고는 그 프로젝트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솔루션의 방향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다양한 배경의 디자이너들로부터 다양한 각도의 의견을 한 마디 한마디 들어보는 것이 워크샵의 목적이었다. 우와, 이런 정석적인 디자인 워크샵이 열리다니! 하며 신기하다고 놀랐었지만, 흔한 거였다. 서로 길 가다가, 커피라운지에서 커피 마시다가 마주치면 서로 물어봤다. '수요일 1시에 바빠? 우리 워크샵에 참여하지 않을래?' 시시때때로 전체 메일이 날아왔다. '금요일 10시에 워크샵 참가하실 분! 아주 재미있을 거예요.' 어쩜. 맞아. 여기 디자인 회사였지. 수많은 배경의 디자이너가 모여있는 풀을 이렇게 활용하다니 정말 효율적이잖아. 감탄했다.


  한 번은 내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하여 회사에서 4일 내내 워크샵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퇴근시간 이후에는 칼같이 헤어졌다.) 독일 지부에 있는 다른 직원들도 출장을 오기도 했고, 제품에서 서비스, UI 디자이너까지 팀의 모든 디자이너가 참여했던 워크샵이었다. 4일 동안 사용자 경험 플로우를 그리고, 터치 포인트를 찾고, 솔루션 방향을 찾고, 레고나 간단한 재료들로 프로토타이핑을 하기도 하고, 기존 및 개선 시나리오를 영상 촬영까지 하며 알차고도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워크샵 이전에는, 나 홀로 일하며 한 시나리오 안에서의 인터랙션에 집착해 디자인을 했었다면, 이 워크샵으로 인해 보다 더 시야가 넓어진 듯한 마법 같은 경험을 겪었다. 기존의 시야에서 벗어나 제품 자체에서의 해결책, 전체적인 서비스 플로우에 관련된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들으며 내가 그동안 얼마나 한 가지에 집착하고 있었는지 자아 성찰하는 기분이었다. 그래,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봤어야 했는데. 함께 전체적인 시나리오와 시스템을 차근차근 쌓아 올리며, 아이디어가 점점 빛나는 모습을 생생히 목격했다. 힘든 만큼 행복한 순간이었다. 


워크샵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글, 그림 뿐만 아니라 영상, 목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프로토타이핑 하였다.


  이런 정말 '정석'적인 워크샵과는 조금 가벼운, 다른 워크샵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Inspiring bite'로, 앞서 말한 것과는 조금 다른 오픈 세미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점심시간에 주로 이루어지는 이 워크샵은 이름 그대로 먹으며 듣는 세미나이다. 각자 점심에 먹을 도시락, 샌드위치를 들고 모여, 먹으며 발표를 듣는다. 무거운 발표도 아니고, 현재 우리 팀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지, 이에 대한 코멘트가 있는지, 혹은 현재 회사에서 학위 연구를 하고 있는 박사/석사의 발표가 이루어지곤 한다. 업무 공유와 사교의 의미까지 복합적으로 포함된, 어떤 특정한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이름 그대로 '영감 받기 위한' 세미나. 우리 회사에 AI 하는 팀이 있단 말이야? 가서 들어봐야지. 나중에 프로젝트에 필요하면 물어보면 좋겠다, 정도의. 




  이러한 워크샵들은 다양한 브레인스토밍 활동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체계화된 미팅이었다. 팀원들 혹은 동료 직원들이 함께 모여, 선형적인 업무 전개 방식이 아닌 함께 다차원적 매듭을 꼬는 듯한 업무 방식. 이 뿐만 아니라, 미래의 비즈니스 파트너 혹은 의사나 주부 같은 미래 사용자 층,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진행하기도 하였다. 목표와 목적에 따라 다양한 워크샵이 이루어졌다. 최대한 다양하게 의견을 듣기에 모두가 열려있었다.

 하나의 솔루션을 제안하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디자인이 필요하다. 전체적인 서비스를 총괄하는 서비스 디자이너와 회사의 제품 자체를 담당할 제품 디자이너, 사용자와의 관계성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인터랙션 디자이너, 해당 디자인 환경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진 전문가까지. 그렇게 하나의 프로젝트는 여러 디자이너가 함께 각자의 시각을 공유하고 타협점을 찾으며 완성된다.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디자이너가 시간 맞춰 한 장소에 모여 인텐시브 하게 다각도로 솔루션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이곳의 워크샵이었다. 워크샵이란 함께 일하기 위한 그리고 함께 디자인하기 위한 하나의 소통 도구였다. 


 요즈음의 디자이너는 모든 과정을 총괄하고 모든 것을 잘해야 하는 직종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그리고 사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길 욕심나기도 한다. 물론 한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잘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결국은 회사인 만큼 모두의 역할은 철저히 분업화되어있고, 모두 다 잘한다 하더라도 각자의 전문분야는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함께 다각도로 고민해 볼 기회가 많고, 일이 진행이 될 수만 있다면, 오히려 각자의 전문분야를 살리며 큰 줄기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윈윈 하는 계기가 아닐까 싶었다. 아, 이게 '함께' 디자인하는 거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 디자인 워크샵은 매우 광범위하고 일반적이라 '워크샵을 자주 한다'라는 것만으로는 특별한 점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크게 특별할 것 없는 워크샵일지라도 내가 이 곳에서 가장 인상깊게 여긴 것은 모두가 의견에 열려 있다는 것, 그리고 또한 말하기에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단 모여 무언가 함께하기를 원한다는 것. 이 모든 활동이 정확히 몇 퍼센트의 효율이 있고, 더 나은 결과가 나올지 확실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브레인스토밍을 위한 이러한 일련의 활동들이 보다 더 크리에이티브한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모두가 믿는다는 것이 존재했다. 디자인이란 원래 정답이 없는 분야였다. 나 혼자 끙끙대며 최선의 가짜 정답을 찾기보다는, 바로 주변의 의견과 도움을 받아 가짜일지라도 최고의 정답을 찾는 방식, 혼자 하기보다 함께하는 자세를 배운 점이 인턴기간 동안 내가 얻은 가장 큰 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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