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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또 Dec 07. 2016

모든 것이 처음인 이 곳에서

일상, 네덜란드 #1. 이방인입니다.


숨만 쉬어도 잘못된 기분. 네덜란드 첫 3일의 기억이다. 그리고 26일 차, 결국 서러움이 폭발했다.


몇 년 전의 교환학생과는 전혀 달랐다. 나의 모든 환경을 책임져주는 학교도 없었고, 학생이라는 신분과 나와 같은 상황들의 친구들도 없었다. 그 흔한 교환학생이나 워킹 홀리데이가 아닌, 약간은 독특하게 인턴을 오게 된 나에게 필요한 정보는 어딜 둘러보아도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네덜란드어로 적힌 알지도 못하는 법을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이해했어야 했으며, 관련 규정에 대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도와주지 못했다. 스스로 한다고 하고는 있지만 어디선가 또 나도 모르게 어떤 법 혹은 규정을 어기고 있을지 몰라, 누군가 나에게 잘 되어가냐 물어봐도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나의 무지가 언젠간 큰 부메랑이 되어 내게 날아올 것 같은 생각에 항상 조마조마하기만 했다.


매일매일이 그리고 모든 일들이 내겐 새롭고 처음 겪는 일이었고, 처음 하는 일은 항상 완벽할 수 없기에 실수가 있기 마련이었다. 이 곳에 도착해서의 내 모든 일과 행동은 시작임과 동시에 실수 투성이었고, 무엇을 해냄으로써의 뿌듯함과 비례하게 실패감, 무기력함이 동반되었다. 사사로운 감정들을 참으려 노력해도, 쌓이고 쌓여 결국 내 정신적 스트레스의 한계치를 넘는 순간이 온 것뿐이었다. 특히 출국 전 내게 닥친 여러 감당치 못할 일들과 더불어, 출국 직후의 공항 택시 사기까지. 내 네덜란드 생활은 시작 전부터 완벽하게 꼬여있었기에, 언젠가 터질 폭탄이 터져 버린 것과도 같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오는, 생각보다 작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배고파서 음식을 하러 부엌을 갔지만 가스레인지 쓰는 방법을 모를 때, 세탁을 하려 했지만 세탁기 키는 법을 모를 때, 추워서 튼 라디에이터는 1/5만 따뜻해져 방은 한없이 추울 때, 가위가 필요해 샀지만 손잡이에 묶여 있는 케이블 타이를 끊을 가위가 없을 때, 한없이 예민한 화재경보기가 내가 음식 할 때마다 요란하게 울려댈 때. 지금으로썬 충분히 해결 가능한 일들이지만, 당시의 하루를 생각하면 내 움직임 하나하나에 걸림돌이 치였고, 도움을 청해야 했다. 나는 차라리 혼자 조용히 누워서 숨만 쉬며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덕분에 하루하루 심심할 날 없고,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다. 아니, 아무렇지 않으려 했었나 보다. 26일째,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다 처음으로 참 정착하기 힘들다는 말이 참지 못해 나와버렸다.


그 날 역시 참 별 일 아닌 사사로운 일이었다. 앞 브레이크가 바퀴에 닿아 잘 굴러가지 않았고, 평소보다 더 힘들게 페달을 굴려야 할 뿐이었다. 하지만 산 지 열흘도 안 된, 그동안 네 번이나 수리점을 찾아갔던 자전거였다는 점과, 11월 추운 겨울 아침부터 땀 흘리며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내 모습이 순간 너무 어이없었다. 자전거를 타다 나도 모르게 소릴 질러버렸고, 뭔가 복합적인 서러운 마음에 하루 종일 눈물이 났다.


한창 우울해하다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여기 온 거지? 뭘 원해서 온 걸까? 지금 이렇게까지 내가 겪고 있는 이유가 뭘까? 난 왜 홀로 네덜란드에, 취업도 아닌, 인턴을 하려고 왔을까? 한창 서럽다 보니 처음의 결심조차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여행으로써 만나는 도시와, 삶의 터전으로써 만나는 도시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이방인으로써 현지인의 삶을 단순히 즐기는 여행과 달리, 살아간다는 건 조금 더 삶과 밀접한 상당 부분에서 전혀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동화되어야 한다는 것과 같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 과정 속에서 내가 '이방인'이란 사실은 여행보다 더 뚜렷하게 느껴진다.


또한 이방인이 타지의 생활권에 자리를 튼다는 건, 수많은 허가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고, 당연히 누리고 있던 본국에서의 혜택을 무의 상태에서 내가 새로이 요구하고 얻어야 한다는 의미와 같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겪는 어려움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벽에,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생활 속 어려움까지.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당연하게도 이 또한 익숙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갑자기 이름 모를 두려움이 들었다. 취업 비자도, 은행 계좌 개설도, 거주 등록도, 보험가입도 언젠간 다 끝나겠지. 그리고 아마 새로운 환경과 사회에 맞춰 나는 아마 누구보다 잘 적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무뎌지고 지금보다 조금 '덜' 이방인이 되어 익숙해진 후엔 또다시 한국에서의 생활과 같아져 버리는 게 아닐까?





나는 똑같았던, 변화가 없던 한국에서의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극을 받고 싶었다. 한없이 소심해지고, 남과의 비교를 통한 발전만을 꾀던 한국에서의 나를 벗어나고 싶었다. 생각 없이 정답만을 향해 달려가던 생활을 잠시 멈추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유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새로운 시간이 필요했다. 길게는 이년 정도 슬럼프를 겪다 도망치듯 네덜란드로 오게 되었다.


짧지만 30여 일 살아오며 느낀 네덜란드는 참 자유롭고 평화롭다.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지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하지 못했던 평온함을 느끼기도, 그리고 나 자신을 온전히 느끼기도 하였다. 주변 환경, 자연뿐만이 아니라 작은 문화까지도 새롭고 고요하며, 개개인을 존중함에 소중했다.


이 곳에서 살게 될 9개월 남짓의 시간 동안 나는 조금 더 적응될 뿐, 마치 이 곳이 모두 꿰뚫은 듯 고향인 양 완벽한 네덜란드인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겪는 생활 속 어려움과 서러움은 금방 적응되겠지만, 내 주변은 항상 경험하지 못했던 요소요소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나는 생활 속 작은 서러움에 이끌려, 소중한 경험들을 놓칠까 무섭기만 하다. 적응이라는 편안한 감정에 속아 또다시 '주어진 일'만을 하며, 출퇴근을 반복하는 일상을 살게 될까 무서워졌다.


9개월의 시간 동안, 나는 한 발짝 물러서 조금 더 '이방인'으로써의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을 지내보고자 한다. 의도하여 그들의 삶과 문화를 멀리서 바라보며 배우고, 이와 동시에, 그 공간에 존재하되 분리된 '이방인'으로써의 나를 또 이해하고 배워보고자 한다. 그리고 먼 훗날 이 소중한 경험과 생각을 다 잊어버릴까 무서워 기록을 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또 언젠가 다시금 서러워질 때, 혹은 익숙함에 속아 새로움에 무뎌질 때, 다시 읽게 되면 위로를 받지 않을까 혹은 용기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제일 먼저 적게 되었다.





이야기가 돌아 돌아 이렇게 되었지만, 너무 서러워하지 말자는 다짐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너무 익숙해지지 말자. 서러움에, 익숙함에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지 말자. 나를 중심으로 이 시간들이 온전히 내가 되어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용기를 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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