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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원재 Aug 29. 2022

포스트 코로나와 극장론

코로나 시기 변화한 사회를 중심으로

개그콘서트나 무한도전이 막 인기를 끌던 시절에 통용되던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유행어'라는 것들이었다. 이건 단순히 웃기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질적으로 묶이는 하나의 요소였는데 어느순간 유행어라든지, 그렇게 통하는 단어들이 없어져가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사회가 점차 파편화, 개인화가 점차 심해져 간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한번 이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통계자료나 객관적 데이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추세에 대한 짤막한 생각을 남겨보고자 한다.

 아마 국민 여동생, 국민 남동생 같은 이미지로 소비되던 연예인이 예전엔 있었다. 전 국민이 국민 여동생 하면 문근영을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고, 나아가서 국민 MC 유재석, 강호동 등의 이른바 '국민-'이라는 말이 입에 붙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순간 이 '국민'이란 말이 잘 안쓰이게 되는 것같다. 실제로 유재석이 국민MC로 불리게 된지 이미 십수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 계보를 잇는 사람이라고 특정하기도 어렵고, 무언가 '국민-'이란 단어를 붙이기에도 민망한 시절이 되어가고 있다.

 영화판으로 들어와보면 아마 예전에는 이 배우가 나오면 무조건 흥행하거나 티켓파워가 보장되던 배우들이 분명 존재했었다. 이른바 '대세'로 TV를 틀면 어디에나 나오기 마련이었다. 스타는 어느 시절에나 있었지만 간판 스타나 대표, 그러니까 온 국민이 이사람은 '대세'라고 인정하는 연예인이 분명 있기 마련이었다. 아마 내 기준으론 이런 연예인이 '아이유'다음으론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최근 손석구 배우가 꽤나 대세픽이 되긴 했었다.)

 그러나 최근 몇년 사이, 특히 코로나 이후로 가면 갈수록 모두가 공유하는 국민 TV프로그램이라든가, 가족 단위로 모여서 시청하는 것들이 점차 사라져감을 느낀다. '나혼자산다'같은 경우 꽤나 많은 연령대가 보고 있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시청자도 많은 편이며 '무한도전'이나 '1박2일'같은 예능에 비해 큰 화제성을 지니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음악의 경우에도,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이 존재하던 시절 온 가족이 시청할 수 있었고 그것은 세대를 넘나드는 공감대의 프로그램이 되었었다. 그 프로그램에 나온 가수는 50대부터 10대까지 모두 아우르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지금의 'BTS', '송가인', '임영웅'을 보면 이들 가수는 정말 세대간 단절의 극단을 보여주는 성격을 지닌다. 

BTS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그룹만 공유하는 셈이고(물론 이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끈다는 사실은 변함 없다.) 송가인이나 임영웅은 트로트를 좋아하는 50대, 60대 어른들만이 공유한다. 얼마전 화제가 된 임영웅 콘서트는, 콘서트를 예매해주고 기다려주는 자녀 세대들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들은 그 콘서트장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기다렸을 뿐 정작 임영웅에 대한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니다. 반면 과거 GOD같은 가수가 냈던 '유행가'를 생각해보면 정말 유행가였고, 그런 것들이 예능에 요소로 노출되곤 했었다. god의 거짓말 같은 노래는 예능, 광고 등 대부분의 요소에 쓰였지만, BTS의 음악은 그정도의 장악력이 생기진 않았다. (거듭 얘기하지만 이건 곧 인기의 절대적 척도가 아니다. 그러니까 BTS가 god보다 인기 없단 소리가 아니다.)

 유튜브 시장 또한 그렇다. 운동, 게임, 영화, 음악, 경제, 먹방, 만화, 스케치코미디, 예능, 스포츠, 마술 등 정말 수만가지의 테마가 있고 그 분야에 흥미가 있는 사람은 알고리즘에 의해 그 분야의 것들만 집중해서 보게된다. 마치 대학의 전공처럼 점점더 세분화 되어가고 전문화 되어가면서 각각의 영역에 대한 이음새보다는 '단절'과 같은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실상 채널이 너무나도 많아서, 국민 전체가 보는 어떤 프로그램이 성립된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현상이기도 하다. ENA 채널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같은 드라마가 최근 전 세대에 인기있는 편이었지만 최고 시청률 17.5%정도로 마무리했다. (이정도 시청률은 사실 무한도전 위기론이 돌때의 시청률이다.) 한편으론 메이저 방송국이나 종편 채널의 차이가 없어졌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리고 싶진 않다. 결국 모든 사람이 제각기 흥미있는 것을 좀더 세분화 시켜서 집중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을 뿐이다. 각자에게 재밌는 것이 이제 너무 많은 세상이 도래했다. 이건 코로나로 바깥 세상보단 OTT채널과 커뮤니티 소셜미디어에 익숙해지면서 더욱 가속화된 것 같다. 우스갯소리지만, '반박시 니 말이 다 맞음'같은 밈이 바로 이런 세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을 고착화시키고 본인 입맛에 맞는 것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과거 어벤져스 등 인기있는 외화의 천만 관객 달성 기간은 12일에 불과했다.(어벤져스:엔드게임, KOBIS통계 기준) 특히나 디즈니는 상영일수를 3주~4주로만 아주 짧게 유지하고 스크린에서 내려버리는 방식을 사용했었다. 짧은 기간에 트렌드를 선도했고, 대부분의 스크린을 장악했다. 한국 시장에서 천만 이상이 본 영화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봤다고, 그러니까 대유행을 했다고 한다면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천만관객을 돌파한 대부분의 영화는 비슷한 시기, 그러니까 약 2주가 넘지 않는 기간동안 천만을 달성한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이 흥행작들은 당시 이걸 안 보면 대화가 되지 않는 수준이거나, 하루라도 빨리 보지 않으면 스포일러를 당하기 때문에 서둘러서 봐야했다.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어서 탑승해야 하는 고속열차와 같았다.

 그러나 올해 <탑건 : 매버릭>의 흥행은 조금 독특하다. 물론 천만은 달성하기 힘들어보이지만, 700만이란 기록은 대흥행이라 볼 수 있고, 월드와이드 개봉에서도 꽤나 장기상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한국 기준 6월 22일 첫 개봉 이후 극장에 여전히 걸려있고 4DX등의 특수상영관의 수요도 남아있는 형태다. 8주를 넘어 9주 연속 상영을 하고 있으며, 8월 21일 기준 박스오피스 4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른바 N차 관람객들의 관람이 지속되고 있는 형태인건데 이는 최근 한국영화 시장에서 영화가 흥행하던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마찬가지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또한 현재 VOD가 풀린 상태임에도 여전히 상영하고 있는 상영관들이 있다. 이것 또한 두터운 팬층의 지지로 가능한 일인 것이고, 꾸준히 관람객이 유입되어 200만 관객을 돌파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되어 흥행에 성공했던 예는 이준익 감독의 <왕의남자>(2005)를 떠오르게 한다. 약 12주정도를 상영했던 이 영화는 3번째로 천만관객을 돌파했던 대박작품일 뿐만 아니라 당시에 50회 이상을 영화관에서 관람한 사람이 있었을 만큼 언론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상영관도 그리 많지 않았고, 대형 제작사나 배급사(물론 공동제공으로 cj가 참여)가 붙은 작품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꽤나 특이한 케이스였고, 대부분의 영화는 3~4주 사이에 거의 관객이 결정나, 그동안 극장에 오래 걸린 영화들이 많지 않았다. 

 포스트 코로나 시기 이후의 이러한 N차관람, 장기 상영의 형태는 사람들의 취향이 점차 파편화되고 세분화 되는 과정에서 영화관이 살아남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광이 아니라면, 이제 사람들은 영화관에선 확실한 것만을 보고 싶어한다. 영화값도 비싸고 자신의 취향이 아닌 영화를 보게되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3주만에 짧고 굵게 사라지는 영화들에게는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디즈니(마블)도 더이상 이런 전략을 펼치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된다. 마블의 세계관은 이제 자체 OTT를 통해 배급하는 드라마를 통해 너무 복잡하고 넓어졌고, 세대 교체 과정에서의 여러 잡음, 영화 자체의 완성도 문제, PC나 여러 이데올로기적인 문제가 겹쳐 '취향타는 영화'로 변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탑건 : 매버릭> 같은 작품이야말로 극장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말해주듯,(나는 이 의견에 동의하진 않는다.) 이제 영화는 일종의 스펙타클함이거나 좋은 경험의 장이어야만 한다. 혹은 확실한 완성도로 사람들을 울리고 머릿속에 깊게 박혀 계속 영화관에서 그 잔상을 확인하고 싶게하는 것들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요소가 확실하게 증명되어야만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일 힘이 생겨나는 듯하다. 

 트렌드라는 것은 본래 빨리빨리 소비되는 특성을 지녔지만, 요즘의 트렌드가 하나로 모을 수 없는 다채로운 취향들을 존중해주는 것이라면(혹은 단절), 결국 모르는 미지의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설득의 시간이 마련되어야 하는 법이다. 이 설득에 실패하는 영화들은 정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외계+인 1부>, <비상선언>은 이 과정에서 실패했다.(비상선언은 심지어 바이럴논란까지 겹쳐 잡음이 크게 나고 있다.) 조금은 가혹하다. 이제 대중에게 혹평받는 영화는 빛을 발할 기회조차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좋지 않은 작품에 구태여 좋지 않다고 구구절절 쓰는 것이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비판 전문 리뷰어도 많고 꽤나 근거와 논리가 정연하게 펼쳐지기에 사람들을 이건 나쁜 영화라고 설득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리고 그런 영화는 이제 영화관에서 선택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랜 시간동안 그 설득에 성공한 영화들은 보상을 받기도 한다. <헤어질 결심>은 첫 출발이 굉장히 저조했고 이 영화 망했다라는 소문도 돌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관객들을 매료시켰고, 설득력이 있는 영화였기 때문에 N차관람러와 두터운 팬층을 모았다. 결국 200만이 넘는 숫자로 손익분기점(BEP)를 넘을 수 있었고, 그 보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다 써놓고 보니, 결국 영화가 훌륭하면 된다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정말 영화가 훌륭하냐 안훌륭하냐로 갈렸다면 <헤어질 결심>은 벌써 천만이었어야 했다. 그러니, 이제는 훌륭한 영화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천천히 안배해야하는 시점이 아닌가. 장기상영에 대한 영화관에 인식이 조금 진지해질 때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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