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나는 오늘 포르투갈의 서쪽 끝이며,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이라고 불리는 호카곶에 왔다. 바로 여기다. 포르투갈에 온 이유도 그리고 이번 여행을 시작하는 마음을 동하게 했던 이유도. 어느 날 우연히 미디어를 통해 호카곶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참 이런 것에 집착이 강한 것 같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최서단, 최남단, 최북단 이란 호칭이 등장한다. 이뿐이랴 최초나 최고, 심지어는 최후까지도 가지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면 또 어떠랴, 나도 최서단이라고 하니 와보고 싶은걸. 다른 사람도 나와 같지 않을까? 어찌 보면 어디와도 동일한 땅이고 바다일 뿐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새해 첫날의 일출을 보기 위한 노력은 또 무슨 소용이랴, 어제도 떴고 내일도 뜰 해인데 말이다. 내가 거기에 의미를 두고 소중히 하면 될 일이다. 오늘 여기에 내가 있는 이유도 내가 여기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는 수수했다.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이라고 해서, 매년 수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라고 해서 보다 체계적이고 화려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대면한 호카곶은 너무 소박했다. 실제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기념비 하나였는데, 대서양을 바라보며 높이 선 기념비에는 이 지점이 가지는 지리적인 설명과 그 유명한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라는 말이 적혀있다.
여기 와서 보니 실제 지명은 CABO DA ROCA, 포르투갈어로 cabo는 ~의 끝, 끝단을 의미하고 da는 ~로부터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니 ‘ROCA의 끝’ 이렇게 해석될 것이다. 다시 ROCA는 암석 지층 이런 뜻을 가졌으니 풀어쓰면 ‘땅의 끝’이라고 해석되겠다. 어제 포르투갈에서 만난 친구들이 내일은 어디를 가느냐는 질문에 ‘호카곶’ ‘호카곶’이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못 알아들었던 것이 이 때문이구나. 그러고 보니 ‘곶’이란 뜻은 바라도 튀어나온 땅을 의미하는 한자어로 튀어나온 땅이 크면 ‘반도’ 튀어나온 땅이 크지 않으면 ‘곶’이라고 불리니 어찌 유럽 사람들이 알아들으랴. 혼자 웃음이 났다.
누군가의 이름과 연도가 적힌 비석을 발견했다. 아래에는 아직 그다음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는지 비어있었는데, 무엇을 기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1987년과 1988년 이후 정복자가 없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도전할 가치가 없는 것이거나 도전자가 아직 없거나를 의미할 테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큰 일을 한 사람일지, 아니면 이곳에서 시작한 대서양에서 큰 일을 한 사람일지 모를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서서 대서양을 바라본다. 저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각자의 수준에서 감동을 받고 있으리라. 그러면서 주변을 보니 대서양의 풍광이 크고 멋지기는 하다. 어쩌면 ‘카보 다 로카’의 환경이 오히려 소박한 것이 이해가 되었다. 이렇게 웅장하고 멋진 자연을 앞두고 여기에 어떤 것을 세운다 한들 멋있다는 느낌을 받으랴.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관광객의 방문은 제한된 ‘카보 다 로카’를 관리하는 건물이 있었고, 우뚝 솟은 빨간 등대가 인상적이었다. 여기도 머무르며 이곳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보다. 문득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을~’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잠시 멈춰 이 분을 위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돌아선다. 이 사람들은 내가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동쪽 끝인 한반도에서 왔음을 알까? 극동지방에서 살면서 태평양(동해)을 바라보고 살던 내가 이 큰 대륙의 서쪽 끝에 와서 대서양을 마주하고 있으니 참 실감이 나지도 않는 일이기도 하다.
리스본에서 카보 다 로카까지 하루를 종일 사용해서 하는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에 여행은 분명 이곳 때문에 시작되었지만, 막상 리스본에 와서 보니 가는 방법이 너무 까다로워서 가지 말까? 생각도 했었다. 리스본에서 기차를 타고 신트라로 이동하고, 신트라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카보 다 로카로. 대중교통만으로 오기에는 쉽지 않은 방법임에 분명하다. 갑자기 귀차니즘이 발동해서 그냥 리스본에 머물까 하다가 ‘그래도 가자’고 결정한 것이 참 다행이다. 이곳에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