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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연변호사 Dec 19. 2022

억울한 피의자에 대하여(보이스피싱 수거책)



영장실질심사가 있었다.      



검사는 아직 수사 중인 피의자가 증거를 없애거나 도망갈 것이 우려될 때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판사는 피의자를 직접 심문한 뒤 구속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판사가 피의자를 심문하는 절차를 영장실질심사라고 하는데 이때에는 피의자를 위한 변호인이 꼭 있어야 하기 때문에 피의자가 따로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으면 국선변호인을 선정하여 준다. 보통 각 법원에는 영장실질심사에 들어가는 국선변호인 명단이 있는데 오늘 내가 국선으로 영장실질심사에 들어가는 날이었던 것이다.      


피의자를 만났다. 서류를 미리 확인하고 왔기 때문에 20대 중반의 여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 만나보니 훨씬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피의자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접견실에 들어왔다. 의자 위에 앉아서도 손가락을 오므렸다 펴는 행동을 반복하였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초범이구나.   


  

피의자의 죄명은 사기. 보이스피싱 수거책(피해자들로부터 현금을 받아 보이스피싱 조직이 관리하는 계좌에 송금하는 일을 하는 역할)이었다.     


피의자가 어떤 경위로 보이스피싱에 가담하였고 어떤 행위를 하였는지, 그리고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지 잘 알고 있다. 요즘 유사한 사건들이 워낙 많아서.    

 

피의자는 알바천국 사이트를 통해 구인광고를 보았다. 이력서를 등록하였고 회사 쪽에서 연락이 왔다. ‘금융 관련 회사인데 금리가 올라 고객들이 기존 대출금을 상환하면 더 낮은 금리의 대출로 바꾸어 주는 것이다. 고객들로부터 기존 대출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직접 오기 어려운 고객을 만나 대출금을 회수해 오면 된다. 본래 우리 회사의 정규직원이 가야 하는데 당신이 아르바이트로 그 직원을 대신 가는 것이니 고객을 만나 “김영미 대리”라고 이야기하면 된다. 고객들이 현금을 건네주면 우리가 지정해 주는 계좌로 입금을 해 달라. 일당은 13~15만 원이고 교통비는 따로 지급해 주겠다.’라고 이야기한다. 피의자는 먼저 포털사이트에 그 회사를 검색해 본다. 회사의 홈페이지가 나오고 금융 관련 회사인 것처럼 기재가 되어있다. 실제 있는 회사이니 괜찮을 것 같다.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였다(비슷한 사건들을 보면 근로계약서는 작성하는 경우도 있고 작성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돈만 받아서 입금해 주면 되는데 일당을 많이 받는다.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구했다고 생각한다. 피의자는 그 회사의 대표와 텔레그램으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대표는 텔레그램으로 고객과 만날 주소를 알려주고 직접 택시를 호출해 준다. 피의자는 지시받은 장소로 이동하여 고객을 만나 ‘김영미 대리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고객은 피의자에게 현금이 들어있는 봉투를 건네준다. 피의자는 다시 대표가 호출해 준 택시를 타고 이동하여 은행 ATM기 앞에서 내린 뒤 역시 대표가 알려준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금원을 나누어서 송금한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상한 점은 너무 많다. 아르바이트를 채용하면서 왜 면접을 보지 않는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대출금을 현금으로 상환하는지. 왜 그것을 여러 계좌로 나누어서 송금을 하는지. 대표와의 대화는 그 흔한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이 아니라 텔레그램인지. 더 원론적으로 그 간단한 일을 하는데 왜 일당은 그렇게 많이 주는지.    

  

요즘 만나게 되는 보이스피싱 수거책들은 20대가 많다(아, 최근에는 60대 피의자도 만난 적이 있다). 취업이 안 되니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한 것이겠지(별생각 없이 고수익 아르바이트라서 시작한 경우도 많다). 편법적인 일인 것 같다는 생각 정도는 한다. 그러나 ‘회사 직원도 아니고 아르바이트인데’라며 스스로 합리화를 한다.     


이 피의자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사회생활을 많이 해보지 않은 20대의 나이에 ‘고수익 아르바이트’는 참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약간의 편법이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일로 교도소에 가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피의자는 겨우 15일 일하고 일당 13만 원씩 195만 원을 받은 게 전부이지만 2억 5천만 원을 편취한 사기범이 되었다. 검사는 ‘억울하면 네가 진짜 몰랐다는 것을 증명해 봐라.’라고 하지만 피의자가 애써 합리화했던 사정들이 사실은 계속해서 ‘이거 하면 안 되는 일이야.’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형을 낮추려면 피해자와 합의를 해야 하지만 피해자는 피의자의 일당이 아니라 실제 피해액수를 합의금으로 요구한다. 그래서 결국 대부분 실형이 선고된다. 


    

복잡한 마음으로 변론을 하였다. 피의자가 몰랐다고. 단순 아르바이트라고만 생각했다고. 가족들이 있고 도망갈 이유가 없으니 구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받고 재판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늦은 오후, 피의자가 구속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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