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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y 11. 2020

당신은 비혼할것을 평생 맹세합니까?

나의 선택을 칭찬하고 다른이의 선택도 존중하는 삶

* 어떤 삶을 살든 지지해주고 싶은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글. *


 어제 우연히 재밌는 기사를 읽었다. 내용인 즉슨 솔로 라이프, 혼자 살기 류의 컨텐츠로 인기를 끌었던 유튜버 겸 인플루언서가 갑작스레 결혼을 했다는 것.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코멘트는 흥미로웠다. 요즘 트렌드인 비혼 비스므레한 컨텐츠로 인기와 수익을 얻고나서 얼마후 결혼했다하니 소비자로서 기만과 우롱을 당한것 같다는 의견이 있는 한편, 이런 반응에 대해 한때 비혼주의자였다 나중에 생각이 변할수 있는데 왜 남의 경사를 못마땅해하냐는 비난도 있었다. (결국 이 논란은 유튜버가 스스로 비혼주의자라 칭한적이 없으며, 과거 미디어 인터뷰를 통해서도 비혼이라기보단 혼자 잘지내는 법을 컨텐츠로 보여주고 싶다는 기획의도를  밝혔던것이 전해지며 무의미한 언쟁이였던걸로 마무리되었다.)


 사실 필자는 이와 다소 유사한 상황을 실생활에서 몇번 본 적 있다. 사실 사회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것이다. 비혼주의자라며 적극적으로 본인의 지론을 이야기하였으나, 얼마후 적극적으로 청첩장을 돌리는 주변인들 말이다. 속사정을 듣고나면 그랬을수도 있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 사람의 과거 행적을 생각하면 의아하고 황당한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흥미롭게도 이런 상황은 비혼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흔한것이였다. 

"남자들은 다 개 아니면 애야. 앞으로 남자는 절대 안믿을래."- 지금은 애 둘엄마인 15년전 사촌언니

"빽사주고 청소, 빨래도 다해줬는데 바람이라니. 결혼? 죽었다 깨어나도 안해."- 얼마전 결혼한 남자대리의 3년전 모습


 이들의 "결혼 안해" 투정들과 몇년후의 깜짝 웨딩마치는 귀엽게 느껴졌지만, 요즘의 "비혼"이라는 단어는 그 양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그럼 비혼의 정의는 무엇일까.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비혼(非婚)은 미혼(未婚)이라는 어휘가 '혼인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나 아직 하지 않은 상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비판의식에 기반하여 '혼인 상태가 아님'이라는 보다 주체적인 의미로 여성학계에서 사용하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일반인들도 흔히 쓰는 개념이 되었다.

 결국 비혼은 기존의 귀여운 투정들과는 다르게 학계 및 시류를 반영한 용어이며, 자신의 인생철학이나 가치관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단어이기도 하다. 또, 비혼은 특정 시점에 그 반대개념과 동시에 양립할 수 없다. 비혼이면서 기혼일수 없다. 마치 "채식주의자"이면서 육식을 하는건 모순인것처럼.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가치관이나 신상의 변화가 생기면 언제든 바뀔수 있는것이기도 하다. 채식주의자였던 사람이 언제든 다시 육식을 시작할수 있듯이.


 인간은 학습의 동물이다. 과거의 사건을 통해 얻은 교훈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교정하고 발전시켜나간다. 또한 인간과 환경은 서로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기에, 개인의 결정은 내/외적인 동기에 의해 얼마든지 변할수 있다. 내 주변의 (구)비혼주의자들도 그랬다. 그들은 어떠한 직/간접적인 계기를 통해 "비혼"이라는 향후 삶의 방향성을 결정했었다. 누군가 결혼에 대해 물으면 자신의 "비혼"결심을 당당히 대답했었다. 또는 자신의 결심을 잊지 않기위해 누가 시키지않아도 스스로 "비혼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들은 왜 결심을 바꿨을까.



*다음 문단은 TV series "Parks and recreation"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TV시리즈 "Parks and recreation"에서 주인공 레슬리는 어느날 새 남자친구 때문에 스타일이 180도 변한 친구 앤에게 지나가듯 한마디 한다. "넌 누구랑 데이트하든 그사람처럼 되잖아." 그 얘기를 듣고 앤은 곰곰이 지난 과거를 회상해본다. 그녀는 철부지인 남자를 만날땐 보모가 되었고, 건강염려증인 남자를 만날땐 그 남자랑 운동하기위해 늘 조깅수트를 입었고, 로데오라이더인 남자를 만날땐 카우걸처럼 행동했으며, 심지어 남친이 없어 아무나 데이트할때조차 그 상대들에게 맞춘 행동을 해왔던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잘보이기 위해 내 모습을 맞춰온 과정에서 진정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잃어버렸다는걸 깨닫게된다. 그 후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 no-date기간을 가졌으며, 고민끝에 기증 정자수정으로 미혼모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결국 그 과정에서 뜻이 통하게 된 한 사람과 미래를 함께 하게 된다. 길고긴 연애의 역사와, 방황의 시간과, 자아발견의 과정을 통해 앤은 결국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찾은것이다. 

기나긴 방황과 흑역사의 끝에 자신만의 행복을 찾게된 앤



 한편 관성이란 것은 한 사람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누구나 관성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으며, 의식적으로 지대한 노력을 들이지않고서는 작은 습관조차 고치기 어렵다. 당신도 다리꼬기, 손톱 물어뜯기 같은 사소한 습관들을 아직까지 그대로 가지고있지 않은가? 하지만 당신은 당신을 믿어야 한다. 지금까지 최소 20여년 이상 당신이 관성을 거부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은 당신의 경험적 본능이 그게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게 당신을 행복하게 하기위한 최선의 선택이였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의 패턴, 가치관 또는 무언가가 당신을 불행하게 했고 향후에도 계속 그럴것 같다면 스스로 어떻게든 관성을 깨고 더 행복해질수 있는 방향으로 교정해나갈것이다.


 따라서 지금껏 혼자 사는 삶이 본인에게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해왔고, 앞으로 그럴것이라 생각된다면 관성과 경험에 따라 응당 비혼을 선택할것이다. 혹시 지금껏 누군가와 대체로 함께해왔지만 그것이 당신을 불행하게 할것이라고 감지했다면, 관성을 극복하고 비혼이라는 나에게 더 적합한 길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의 방황과 시행착오, 비혼에 대한 번복끝에 끝내 누군가와 평생 함께하기로 결정했다면, 이 또한 존중받을만한 용감한 결정이. 때로는 비혼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사람이 결혼을 하면 몇배로 더 축하할 일이기도 하다. 비혼주의자가 되게 만들었던 기혼의 단점이자 장벽들을(육아와 업무의 양립, 출산후 경력단절, 아버지란 이름의 부담감 등 무엇이든) 극복할수 있게 도와줄 배우자, 가정/근무환경을 만나는 축복이 일어났을 경우 말이다.



 "당신은 비혼할것을 평생 맹세합니까?" 가슴에 손을 얹고, 당장 "네"라고 대답하기 어려울 수 있다. 누군가는 "네"라고 섣불리 말했다가 곧 맹세를 어길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것은 어떤 선택을 했든 당신은 주어진 상황과 환경, 시점에서 당신의 경험적 본능에 의해 당신에게 가장 유리한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점이다. 그 선택을 스스로 칭찬하고 인정해주어야 하며, 나뿐만 아니라 다른사람들의 선택도 내 선택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방식으로 최선의 결정이였단걸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1인가구든, 2인가구든 혹은 그 이상이든 당신은 그 가정을 책임지는 (공동)가장이다. 가정의 구성원이 불안해하거나 남의 시선에 의해 휘둘리지 않도록 당신의 가정을 돌보아줄 필요가 있다. 비단 그 가정의 구성원이 나 한명이라고 해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상황이든, 언제 어디에서든 당신은 다음의 질문에는 "네"라고 대답할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지금 이순간부터 평생 변함없이 당신을 아끼고 사랑할것을 맹세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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