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했던 사랑하는고향에 대한 향수병은 없었지만, 내 발목을 잡은것은 뜻밖의 것이였다.이른바"소통의 부재"
소통의 부재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우선소통할 지인이 없고, 소통할 기회가 있어도 언어적 장벽이 존재하며, 언어가 극복되어도 가치관의 상이함이 소통의 부재를 만든다.
코로나로 전세계가 판데믹 공포에 빠져있는 현 시점에서, 아직 코로나에서 안전하지만 여느나라보다 더 공포에 떨고있는 인도의 지배적인 가치관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목표인가 과정인가
인도를 장기간 여행이나 거주한다면 가장 많이 듣는말중 하나는 "아 유 해피?"와 "노 프라블럼."일 것이다. 반면 한국인이 가장많이 하는 말은"잘디잘디(힌디어로 빨리빨리)"이다.
널리 알려진대로 인도 인구의 80%이상은 힌두교이다. 인도문화에 뿌리깊게 자리잡아있는 힌두적 사고방식은 "Go with the flow" 에 가깝다. 그들은 타고난 카스트에 맞게 살다가, 집에서 정해준 짝과 함께 결혼하고, 죽을때까지 본인에게 정해진 길을 가면서 가능한 많은 것을 누리고자한다. 자 이제 한국인의 삶을 떠올려보자. 타고난 조건보다 나아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본인의 이상향에 맞게 짝을 찾아 결혼하고, 죽을때까지 삶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느쪽이 더 합리적인가? 어느쪽이 더 가혹한가?
어찌되었든 한국인들이 인도에서 맞닿는 문제점은 인도인들이 대체로 문제처리 및 대응이 느리며, 잘못해도 미안하다는 소리를 안한다는 것. 하지만 이 모든것을 상쇄하는 하나의 장점은 상대방이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느겨지면 앞의 단점은 모두 사라지고 최고의 아군이 된다는 점이다.
어느날 내 인도친구는 이를 한마디로 정의해주었다. 한국인은 목표지향적(Goal-oriented)이며, 인도인들은 과정지향적 (Process-oriented) 이라는 것. 한국은 최상의 목표달성이 우선시 되기 때문에 빨리 & 정확하게가 중요하지만, 인도는 그 과정자체가 인생이며 그 안에서 잘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인도인들 입장에선 여행지에서나, 사무실에서나 항상 Status check를 하는 한국인들에게 "그렇게 해서 행복하니?" "문제없으니 기다려"라는 말을, 한국인들 입장에선 항상 꾸물거리고 답답해보이는 인도인들에게 "빨리빨리"라고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당장 어떻게할지 답이 정해져있는가?' 에 대한 답이 Yes/No인지의 여부가 각 문화의 간극을 유발한다.
지난 3월 19일 저녁 8시, 모디는 공식 연설을 통해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내기 위해 3월 22일 하루동안 14억인구 전원이 집에서 자가격리하자는 "통금"안을 제시했다. 한국인이라면 이 상황에 몇가지 합리적 질문이 생길것이다. 가령컨대 "통금이라는 제도가 현 시대에 적합한 것인가?" "하루간 통금이 진행된다면, next step은무엇인가?" 첫번째 의문에 대한 답이 '인도이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다'고 하자. 두번째 의문에 대한 질문은 한국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울수도 있다. 보통 모든 제안이나 조치는 시행착오 또는 test and learn을 통한 인과과정을 통해 집행되는데, 그 측면에서 금번 안은 모호하기 때문이다.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안뿐만 아니라 인도의 대부분의 규정과 집행안은 모호하며, 사람·시기·장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는 특징을 가지고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모디의 연설"과정" 그 자체는 너무나도 정중하면서도 카리스마틱하며, 전 인도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연설이였다는 점이다.
지난 3월 19일 진행된 인도 나렌드라모디 총리의 코로나관련 연설. 연설의 주요안에 대한 논란과 무관하게 많은 인도인들을 감동시키며 코로나의 위험성을 주지시켰다.
채식주의자의 두얼굴
지난 30년간 수원에서 살면서 봤던 채식주의자는 종교인 제외 단 3명이었다. 그러나 인도를 오고난 후인도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 한명걸러 한명, 혹은 그 이상이 채식주의자이다.
그럼 이 쯤에서 생각해보자. 채식주의자를 떠올리면 무엇이 생각나는가?속세와 떨어진 푸르른 자연에서 명상하는 스님, 매일아침 샐러리주스를 갈아먹는 요가강사... 최소한 절제된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가 떠오를 것이다.
인도문화의 흥미로운 점은 두 얼굴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교리적으로 보았을때 명과 암, 현실에 대한 포용과 부정(초월)이 공존한다. 혹자들은 이러한 점 때문에 많은 종교의식을 수행하면서도 각종 범죄가 동시에 발생하고, 세속적 부/명예/계급을 유지하면서도 명상/요가 등의 초탈함을 추구한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대로 발리우드 영화, 결혼식 등 인도인들의 일상에서 춤을 빼놓을수 없으며, 고대에서부터 이어진 풍습처럼 춤에는 사람과 술이 빠질수 없다. 따라서 힌두교 문화에서 음주가 게으르고 야만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많은 인도레스토랑에서 술을 팔지않음에도 불구, 생각보다 많은 인구가 술을 즐긴다. 인도에는 "목테일(Mock-tail)"라는 메뉴가 있어 레스토랑 메뉴에도 목테일섹션이 따로 있는데, 이는 흔히 말하는 무알콜 칵네일이다. 또한 한국/중국/일본처럼 소위 담금주 문화도 존재하여, 잘못될 경우 언론에도 보도된바 있는 밀주로 인한 떼죽음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모든것은 인도인들의 일상에 생각보다 술문화가 깊숙히 자리잡아 있음을 알수 있다.
힌두교 문화가 술을 부정적으로 봄에도 불구, 목테일 메뉴가 별도로 있을정도로 음주분위기를 즐기는 문화는 대중화되어있다.
또 한가지 두드러지는 현상은 위드 내지는 드럭인데 불법이지만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여행지, 파티뿐만 아니라 일상 어디에서도 쉽게 구할수 있다고 한다.(나는 인도생활하며 의도적으로 이 부분을 피해왔기 때문에 자세히 모르지만, 한국과 달리 일반인들의 일상에 만연하게 침투해있는것만은 확실하다) 하루는 약얘기만 나오면 질색하는 나에게, 베지터리안인 친구가 말했다.
그거 아니? 위드도 풀이고 베지야.
따라서 인도의 채식주의자 중 상당수는 철저한 식습관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술과 춤, 약을 동시에 즐기는 다소 양면적이면서도 경탄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은 코로나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인도의 각 주정부는 확진자가 조금씩 늘어감에 따라 강경하게 대응했다.주로 학교 및 대형몰, 영화관, 펍, 클럽 등 사회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모든곳을 당분간 폐쇄하고, 확진자가 발생한 근처 사무실도 재택근무제로 전환한다는 것이였다.
그럼 우리의 기지 넘치는 채식주의자 친구들은 이 사태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친구 1은 아직 강경책이 적용되지 않은 옆 주에 사는 친구집에 당분간 얹혀살기로 했다. 그 곳에서낮에는 재택근무를 즐기며 요가수업을 듣고, 밤에는 기존처럼 술과 춤과 함께하는 나이트라이프를 즐기는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온라인데이팅앱을 통한 만남도 예정되어 있다.
친구 2는 조금 더 현명하게 교통비를 들일필요 없이 집에서 즐기기로 했다.낮에는 자택근무를 하며 필요한 물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하고, 밤에는 하우스파티를 즐기기로 했다. 갈일은 없겠지만 그 곳에는 클럽과 펍에있는 모든것이 있을것이다. 친구, 친구의 친구, 술과 음식, 그리고 아마 위드도...?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던 나라 '인도' 생활을 통해 내가 기대한것은 무엇이였을까. 기존의 우물 밖을 나오고 싶었다고 하기엔 내가 있던 곳이 우물이였다는걸 알게되는데도 몇 달이 걸렸다. 또한 아직 생각의 우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고 스스로 확신한다. 그럼 좀 어떤가? 내 방식대로 살면서, 나와다른 방식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 그것이 요즘 다들 얘기하는 로컬리제이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