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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 Jul 05. 2024

여권 가방을 놓고 왔다고?

나의 북미 여행 이야기 2 : 내 마음의 비상과 추락사이




드디어 오늘이 왔다. 약 2주간의 휴가는 우리 부부에게 행복한 휴식을 줄 것이다. 새벽 4시 30분 인천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섰다. 정류장은 걸어서 10분 이내지만, 보도블록이 부분적으로 울퉁불퉁 좋지 않아 자동차로 그 구간까지 캐리어들을 옮기기로 했다.


짐을 모두 길바닥 한쪽에 내려놓은 남편은 다시 차를 몰고 집으로 갔다. 짙은 푸른 빛깔의 새벽은 자동차 불빛이 스며들어 반짝거린다. 인적 드는 도로변에서 짐을 지키며 스트레칭을 하다가 제자리 뛰기도 하면서 즐거움을 몸으로 한껏 뿜어냈다. 걸어오는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부터 진짜 여행 시작이구나!’


대로변의 신호등이 바뀌어 파란빛 어둠을 뚫고 힘차게 바퀴를 굴리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정류장에 벌써 누군가 와 있었고, 곧 부부 몇 쌍이 우리 뒤에 섰다. 다들 어디로 떠나는지 궁금하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버스를 기다리는 그들이 신기하다. 표정만 봐도 얼마나 즐거울지 예상이 된다.


버스가 막 도착했다. 가뿐하게 올라타 자리를 잡았다. 모두가 탔고, 기사님도 운전석에 다시 앉으시려고 한다. 바로 그때, 남편이 갑자기 “어!” 하더니, “먼저 가.” 한마디 하며 앞문 쪽으로 급히 뛰어나간다. 놀란 기사님의 “그럼 다음 차로 오시면 되겠어요.”라는 말이 들린다. 내 좌석은 출입문과 반대편이라 갑자기 사라진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이 상황에 뇌작동이 느린 거 같다.  이해하는  한참 걸렸다. ‘여권 가방이라고?’ 자동차 키를 집에 두고 올 때, 가방은 그대로 조수석에 두고 내렸나 보다. 여행에 들떠 있다가 몇 분 사이에 이게 웬일인가. 마치 봉변당 것 같다. 버림받을 때 이런 느낌일지 모르겠다는 별난 상상까지 한다.


남편의 휴대폰이 울렸다. 버스 안에 실은 기내용 캐리어를 잘 챙겨달라고 말한다. 놀란 마음은 계속 진정이 안되었다. 사실 크게 걱정할 건 없는 일이다. 25분 배차 간격 동안 빠르게 다녀올 수 있다. 다음 버스를 탔다는 전화를 다시 받았다. “휴…” 쉼 없이 달리는 구간이나 공항에서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한다. 뒤늦게 기분이 상한다. 걱정거리가 없어졌는데도 여전히 마음은 안 편하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풍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반대편 창가로 한강변의 스치는 초록 가득한 나무와 수풀을 보는 사이 체했던 마음이 어느새 풀린다. 휴가를 위해 빠듯하게 업무처리를 하느라 여유로운 마음의 준비를 갖지 못한 남편이다. 자동차로 옮기는 방법을 제안한 사람은 나였다. 애초부터 정신없게 만든 것 같아 후회가 된다.


그런 실수를 만약 친구가 했다면, 미안하지 않게 안심시켰을 거다. 만약에 그런 실수를 내가 했다면, 어땠을까? 평상시의 반응이라면 남편은 “출발 전에 빨리 알아서 얼마나 다행이야?” 라며 오히려 '칭찬'으로 위로를 해줬을지도 모른다. 맞다. 이건 한심한 실수가 아닌 칭찬할 일이다.


버스는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멈췄다. 다른 난관이  생겼다. 버스를 차도 거의 한복판에 세웠다. 힘겹게 굴러가는 화물용 캐리어 두 개와 기내용 캐리어, 내 무거운 보조 가방을 한꺼번에 맞닥트렸다. 차례대로 차분히 옮기고 있는데 기사님이 마지막 남은 짐 주인을 찾고 계신다. 마음을 내려놓은 만큼 느긋해진 속도로 힘 빠진 대답을 하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사고치신' 주인공께서 미안한 표정으로 급히 들어오고 있다. 항공사 카운터를 향해 함께 경쾌하게 걸어갔다. 놀라울 정도로 붐비는 여행객들 때문에 우리의 간격이 점점 벌어진다. 잘 오고 있는지 그가 뒤를 돌 때마다, 나는 먼 산을 바라보듯 시선을 딴 데 놀리면서 걷고 있다. 마음이 한껏 부풀어 있는 새벽부터 낙하산 없이 추락한 내 심장이여! 놀래 킨만큼 약을 올리며 흥겨운 마음으로 열심히 뒤따라갔다.




비행기가 안정감 있게 날고 있다. 장시간 비행의 지루함을 조금이라도 덜려면 영화감상이 딱 좋다. 그러나 재미없는 것들만 모아 놨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다. 옆에 앉은 남편을 보니 이미 영화를 하나 골라 열심히 보고 있다. 재밌냐고 물으니, 그냥 볼만하다고 한다. 마음에 들어야 보는 나, 있는 것 중에 적당한 것 골라서 즐겨 보는 그, ‘많이 다르구나.’ 영화 사랑의 차이일까?


드디어 북미 대륙에 진입. 시애틀을 막 지나는 중


에어쇼 화면에서 북태평양 까만색 바탕에 비행기만 달랑 보이더니, 느새 ‘시애틀’ 지명이 나타난다. 아들이 청소년기 때 몇 년간 유학을 한 곳이다. 보고 싶은 아이를 만나기 위해, 학교 방문을 위해 다니던 도시다. 자동차가 오르막 길을 달릴 때마다 맞닿은 하늘만 시야에 들어오던 광경이 떠오른다. 성인이 된 아들이  어느 날 “청소년 시절의 시애틀은 제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곳이에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에게 의미가  깊어진 도시다.


비행기는 대륙 동쪽으로 더 깊숙이 날아가고 있다. 곧 ‘뉴욕’이 닿을 듯하다. 오전 10시, JFK 국제공항에 착륙하자마자 아이들에게 ‘무사하다’는 카톡을 보냈다. 미국 입국심사 분위기는 위축감을 주었던 예전과 많이 다르다. 여행자의 신뢰할 정보 외에 한국의 위상 덕분인지 심사관호의가 담긴 말투와 표정을 잠시 읽었다. 이전부터 이 나라는 까다로운 절차를  마치고 공항을 일단 나서면, 특유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나라다.


15시간 만에 세계의 수도 뉴욕, 지금 여기에 있다. 내 짝꿍, 동반자는 외국에 오니 든든하다. 우리를 안내할 가이드와 인사를 나누고, 입국심사가 늦어지는 다른 동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도 ‘긴장하며 심사를 대기하고 있겠지?’ 어렵게 시간을 내어 기대를 품고 왔을 그들을 기꺼이 기다릴 수 있다.


배가 점점 고파올 무렵, 모든 팀이 모였다. 좀 어색하다. 살짝 표정을 보니 ‘어떤 사람들일까?’라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뉴욕에서의 첫 끼니를 해결하러 갈 예정이다. 그들과 걸어가며 남편과 나는 서로 쳐다보고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자꾸 벌어지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새롭게 맞을 장소마다 만들어질 우리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서 기쁘다. 그 안에서 나다운 여행의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JFK 공항을 천천히 벗어난 버스는 여행자들의 기대까지 한가득 채우고 달리기 시작한다.



점심 식사를 위해 이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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