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뒤로 빠지는 경영자

그러다가 아주 빠지는 수가 있다.

by 영감

조선말에 고종이 외국인들 테니스 치는 걸 보고 그런 일은 노비한테나 시키지 그러냐고 물었다는 얘기가 있다. 지배계급을 이루었던 양반은 몸을 움직이는 노동을 기피하고 멸시했다. 오직 머리만 사용해서 남을 부리는 걸 양반의 본분으로 알았다. 조선시대 양반계급은 그 신분을 '타고난' 반면에, 오늘날의 시대착오 경영자는 그 자리에 '타고 올라간'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 다른 차이는 요새 경영자 중엔 머리 쓰는 거 마저 아랫사람에게 미루는 이가 많다는 거다.


이제 뒤에 앉아서 일 시키고 감시하는 보스형 경영자의 역할은 시스템이 대신할 수 있다. 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어렵고 까다롭고 고통스러운 역할을 누구 안 맡기고 앞에서 직접 들고뛸 때 그 위력이 크고 타 기업과 구별된다.




필자가 네덜란드 법인에 근무할 때는 인터넷이 아직 일반화되기 전이었다. 하루는 지사의 젊은 기술자인 F가 내 방에 와서는, '인터넷'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이메일 시스템으로 쓰면 좋을 텐데요... 했다. 만일 내가 그때 F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본사에 제안했더라면 비용과 시간을 대폭 줄였을지도 모른다. 뭔가 새롭게 바꾸는 계획을 관철시키려면 변화에 저항하는 경영자를 이해시키는 게 관건이다. 대개 나이가 많고 방어적인 데다 '무식'하기까지 해서 설명하는 것조차 힘이 든다, 듣다가 이해가 안 되면 화를 내기도 한다.


어떤 경영자는 인터넷, 스마트폰 등 개인 통신에 문제가 생기면 으레 아래 직원을 불러서 손보게 한다. 자기는 의자를 뒤로 빼고 앉아 신문 뒤적이면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나중에 같은 문제가 생기면 다시 직원을 부른다. 직원이 문제와 씨름하는 동안 최소 두 사람의 시간이 허비된다.


기계문명을 혁신한 정보통신 기술은 이제 인류 문화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기업에서 IT는 사무 도구의 수준을 넘어 미래 사업을 관통하는 공통 맥락이 되었다. 인터넷, 스마트폰과 관련된 사업의 (요샌 무관한 사업이 별로 없다) 전략을 판단할 때 개인적인 사용 경험은 필수다. 조금만 배우면 되고, 배우려고 하면 가르쳐 줄 사람이 줄 서있다. 경영자의 외부환경에 대한 적응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요건이다.

경영자는 기술 발전을 이해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에서 회사의 비전 발표 등 전사적인 행사를 할 때 앞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정신이 없는 사람은 실무자들이다. 반면에 총수나 대표는 느긋하게 앉아 있다가 인사말 몇 마디 읽고 내려와서는 어디론가 총총 사라진다. 중역 몇 명이 허둥지둥 따라간다. 이런 행사 때 미국이나 유럽의 다국적 기업에서는 회사의 대표, 그리고 중역들이 제일 바쁘다. 지위가 높을수록 행사에서 발언, 발표해야 하는 순서도 많고 시간도 길어진다. 중간 휴식 시간에 일반 직원들이 커피 잔을 들고 잡담할 때, 발표 예행연습을 하느라고 여념이 없는 그룹 회장이나 중역들을 흔히 본다. 행사 진행은 외부 업체에 맡기므로 모든 직원들은 차분하게 행사에 참여한다.


전 직원이 모인 행사에서 최고경영자가 기획실이나 비서실이 만들어 올린 형식적인 인사말만 읽고 내려오는 걸 보면 안타깝고 아깝다. 듣는 사람의 집중력이 사내 방송이나 이메일보다 몇 배는 되는 실시간 생방송의 소중한 기회를 흘려버리고 있다. 원고를 직접 만들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메시지의 핵심과 골격을 실무자에게 줘서 말을 만들게 하자. 그다음 반드시 내 것으로 변환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듣는 직원들을 생각하며 말하듯이 읽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되어있다. 덧붙이고 지우면서 나의 말 나의 글이 된다. 그 수고에 대한 보상은 직원들의 감동이다.

경영자는 소통에 앞장서야 한다.


자꾸만 뒤로 빠지는 경영자 A.JPG 삽화 연봉은 화백


자동차나 식품 같은 소비제품에 여러 사람의 안전이 직결되는 사안이 발생하면 사회의 이목이 집중된다. 제조사 홍보 부서에서 마지못해 내놓는 해명들은 믿음이 안 가고 또 다른 의문점을 만들어 낸다. 결국 공적기관이 개입해서 조사하고 재판까지 이어진다. 회사의 책임으로 결론이 나면 이미지 실추는 물론이고 막대한 재정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경영자 개인이 형사처벌까지 받게 된다.


기업의 대표가 의도적으로 소비자에게 해악한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초기 단계에서 경영자가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에 따라 피해의 규모가 달라진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실무부서에 해결을 미루고 법률적으로 빠져나갈 궁리만 하면 소비자 피해는 늘어만 간다. 그래서 기업 대표가 언제 문제를 알았고, 해결을 위해서 어떤 조치를 취했냐에 따라 형사처벌의 여부와 형량이 결정된다. 기업의 대표가 문제에 적극 개입하여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기회를 놓친 죄를 묻고 벌하는 것이다.

경영자는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앞장'의 사전적 의미는 '무리의 맨 앞' ( 표준국어대사전)이다. 앞에서 든 사례처럼 리더가 무리의 맨 앞에서 기술 발전을 이해하고, 소통을 이끌고, 문제에 뛰어드는 조직은 대개 성공한다. 용기가 없고 게으른 지도자들은 피하고 싶어 하는 덕목이다


경영자 역량이 기업의 경쟁력이고 브랜드가 되는 시대다. 어영부영하다가 '누가누가 자기 일 잘하나' 경쟁에서 자기 부하에게도 밀린다.


경영자가 더 고단한 시대다. 내가 쫓아다니던 산악회의 대장은 산행을 가면 대원들의 두배는 걷는다. 선두에서 가다 후미로 거슬러 내려가면서 점검하고 다시 돌아오면서 일일이 사진을 찍어준다. 길을 잃은 대원들이 있으면 대장이 찾아내서 데려온다, 배낭 세 개 매고.


경영자는 전쟁터의 장수다. 장수가 앞장서서 호령할 때 병졸들이 안심하고 따른다. 조직의 크기와 관계없이 경영자가 나서서 변화하고, 소통해야지 직원들이 호응한다. 직원들은 상사를 흉보면서도 닮는다. 말투, 글투, 심지어 걸음걸이까지도 은연중에 따라 한다. 경영자의 영향력은 크다.


군자지과야 여일월지식언 과야 인개견지 경야 인개앙지 君子之過也 如日月之食焉이라 過也에 人皆見之 更也에 人皆仰之
군자(君子)의 잘못은 일식(日蝕)•월식(月蝕)과 같다. 잘못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고, 잘못을 고치면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본다. : 논어 자장편 / 낭송논어 ( 김수경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