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음주 관습
사진 출처 : Pixabay로부터 입수된 EarthTrip
한국에서 활동하는 어느 외신 기자로부터 들었는데 자기네 유럽 기자들은 점심을, 한국 기자들은 저녁 자리를 선호하더라고. 언론 기자가 취재원과 교류하는 현장을 비교한 얘기다. 그쪽 업계에 대한 나의 경험이 전무하지만, 한국 영화에서 경찰서 출입 기자와 강력계 형사가 선술집 원통형 테이블을 끼고 앉아 공방 하는 시간이 대개 저녁때인 걸 보면 터무니없는 편견은 아닌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저녁 식사 시간을 이용한 소통은 비단 언론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린 현상이다. 정치, 언론, 기업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는 이들이 저녁을 먹으면서 현안을 해결하고 인간적 교류를 이어간다. 한국 사회의 업무 환경과 음주 행태가 빚어낸 결과다. 한국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은 종종 탄력적으로 늘어난다. 저녁 자리는 업무의 연장이 되고, 저녁식사에는 자연스럽게 술이 동반된다.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 정서적 유대가 깊은 한국 사회에서 술은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술의 도움으로 취재원의 입을 열고, 여야가 타협하고, 거래처와 계약을 성사시키고, 동료와의 갈등을 해소한다.
술 마시는 전통
술은 농경사회에서 축제나 의식에서 사용되며 생활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아왔다. 한국이 술꾼들의 천국으로 불리게 된 내력도 조상들의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 사료에 당시 음주 문제와 관련된 기록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세종대왕이 술의 폐해를 훈계하기 위해 주자소에서 인쇄해서 반포한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술의 해독은 크니, 어찌 특히 곡식을 썩히고 재물을 허비하는 일뿐이겠는가. 술은 안으로 마음과 의지(意志)를 손상시키고 겉으로는 위의(威儀)를 잃게 한다'
세조 때 영의정까지 오른 정인지가 술에 취해 임금에게 너라고 불러서 문제가 되었으나 공신이란 이유로 세조가 덮었다는 세조 실록 기사가 있다.
정조 때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에 다녀와서 쓴 열하일기에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폭음하는 습관을 개탄하는 대목이 있다. '우리나라 술 마시는 풍습은 천하에서 가장 험악하다. 주량만큼은 너무도 지나쳐서 반드시 큰 사발로 콧대를 찡그려가며 단번에 술잔을 뒤집어 마신다. 이는 술은 들이붓는 것이지 마시는 게 아니며 배 불리기 위해서이지 고상한 정취를 돋우기 위함이 아니다. '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19세기말 조선을 여행하고 쓴 기행문 (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에서 '한국은 과음 습관이 유별나, 취해버리는 건 한국인들의 독특한 특징이다, 한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곡주를 마신다 하다라도 누구도 그를 짐승으로 여기지 않는다'라고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벽酒癖을 묘사했는데, 120년 전 이야기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늘날의 음주 행태와 별 차이가 없고 현실감 넘친다.
음주에 관대한 환경
한국에서는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높다. 음주 후에 약간의 실수가 있더라도 술로 인한 해프닝은 어느 정도 이해해 주는 분위기가 있다. 술 취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을 줄여주는 주취감경이 아직 존재한다. 이는 술을 마시는 행동을 무책임하게 만들고 음주를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한국에서 술은 물이나 음료수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상의 음료다. 도보 10분 거리 안에 술을 파는 편의점이나 마트가 없는 동네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또 다양한 형태의 술집들이 도시 곳곳에 밀집해 있어 술을 마시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미디어는 사람들이 어울리는 장면에서 술이 필수적인 요소인 것처럼 현실을 과장한다. 영화나 드라마의 술 마시는 장면에서 의도적인 설정을 제외하고는 술을 못 마시는 인물이 없다. 하지만 한국인 네 명 중 한 명은 선천적으로 알코올을 섭취하지 못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한국인이 술이 약해서 해장 음식이나 안주 같은 것들이 더 발달했다는 주장까지 있다.
미국에서는 미성년자가 술을 사는 게 마약 구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다. 엄격한 규제 시스템이 존재하는 술은 불법적인 마약 거래보다 미성년자의 접근을 훨씬 어렵게 만든다. 공원, 해변, 운동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는 어른도 술을 마실 수 없다.
미국은 주州마다 법률이 제각각이지만, 음주 연령만큼은 예외적으로 전국이 21세 이상으로 통일되어 있다. 이는 연방정부가 재정 지원을 압박수단으로 활용해서 주 정부에 21세 이상으로 음주 연령을 상향하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음주 가능 연령은 19세부터다. 요즘 우리나라 젊은 세대의 음주량이 감소하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대학 신입생 환영회나 단합대회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음주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술의 폐해
부정부패 온상
알코올이 개입된 저녁 자리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아지고 상대방과의 깊은 대화가 가능해진다. 테이블에 기립하는 빈병의 숫자가 늘어갈 무렵, 동석자 간에 형 동생의 유사 혈연관계가 맺어지고 '형님만 알고 있으라'는 고급 정보와 '딴 데 가서 얘기하면 큰일 난다'는 비밀이 오고 간다. 초저녁에 불가능했던 인허가, 납품업체 선정의 부정한 밀약이 통 크게 성사되고 입찰조건이 청탁자의 입맛에 맞게 맞춤형으로 설계된다.
많은 기업이 거래선 접대에 막대한 시간과 돈을 쓰고 있다. 정부는 기업의 술 접대 관행을 사회가 돌아가는 데 필요한 윤활유 정도로 간주하고 그 비용을 손비로 인정해 준다. 어느 외투법인의 독일인 대표가 한국에서 사업하는데 술 접대만큼 중요한 전략(drinking strategy)이 없다고 빈정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과장한 감이 있지만 크게 반박하기 어렵다.
차별
술자리는 또 다른 차별과 배제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조직 구성원들에게 소속감을 느끼게 하고 동료애를 강화한다는 명분하에 실시하는 '관계 중심적' 회식에서 술은 핵심요소다. 술을 함께 마시는 행위를 의식儀式처럼 여기는 환경에서 건강상의 이유나 종교적 신념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소외된다. 상사가 강권하는 술잔을 마다하지 못하고 죽기 살기로 받아마시는 이유다. 예전엔 마시던 술잔까지 돌리더니, 이제는 마실 때마다 건배하는 식으로 강요한다. 가장 빨리 마시는 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따라가자니 몸이 고되다.
사회적 비용
과음은 다음 날 업무 생산성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새벽까지 달리다 출근해서 혼미한 정신으로 자리만 지키는 군상들의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다. 야근과 음주가 반복되는 악순환 속에서 건강은 서서히 망가져간다.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을 기록하는 나라에서, 술자리마저 노동의 연장이 되는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한국에서 음주로 인한 사회 경제적 비용이 10조 원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음주 원인 질병 치료비, 음주운전 사고, 주취 폭력 범죄로 인한 비용, 생산성 손실, 주벽으로 인한 가정해체 따위가 그 내역이다.
대책
술잔에 비친 한국 사회의 민낯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술 없이는 진솔한 소통이 불가능할까? 개인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알코올 의존증에 걸린 건가?
현재의 술자리 중심 소통 방식에서 벗어나 건강한 업무 교류를 형성해야 한다. 사회생활에서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딱딱한 어법, 엉거주춤한 호칭은 구성원 간의 거리감을 만들어 술자리를 통해 이를 해소하려는 동기를 만들 수 있다.
법 제도적 측면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현행 주취감경 제도는 사실상 음주로 인한 범죄에 대한 면죄부와 같다. 이 제도를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음주 운전과 관련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세법상 기업 접대비 손비 한도를 대폭 축소하여 불필요한 술자리 접대를 줄이고, 투명한 소통 방식으로의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
알코올 중독은 질병이며, 사회적 관심과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건강한 개인과 건강한 사회는 술에 의존하지 않고도 충분히 소통하고 성장할 수 있다.
결국 우리 사회의 개선은 제도, 조직, 개인이 함께 노력할 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