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선
올림픽이 월드컵에 밀린다

생활

by 영감


내가 현지에 부임한 1990년 초 네덜란드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2만 불이 넘는데 우리는 6천 몇 백 불에 지나지 않는 후진국, 좋게 말해서 '개발도상국'이었다. 우리도 그 나라를 잘 몰랐지만 그들도 한국에 대해 아는 거라곤 80년대 분데스 리가를 들었다 놓은 '붐군차(차범근 선수)' 정도였다.




주거와 국민성

처음 가서는 튤립으로 유명한 리쎄 Lisse라는 동네에 세를 얻어 혼자 살았는데 하루는 옆집으로부터 우리 회사를 통해 경고가 날아들었다. 우리 집 뒷마당 잔디를 하도 안 깎아서 정글이 되었다는 거였다. 그 나라는 거실 창문을 안 닦아도 동네에서 민원이 들어온다. 개인의 자유는 존중하지만 동네 '모냥 빠지게' 만드는 건 못 참는 것 같다.


사람들은 길가로 향한 통유리 거실 창문의 커튼을 활짝 열어놓고 산다. 식구들하고 밥 먹는 것까지 다 보인다. 겨울엔 거실에 파카 입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꽤 있다. 실내 온도를 섭씨 15도 정도로 해 놓고 살면서 좀 훈훈한 집을 보면 미국식 (American temperature)이라고 흉본다. 검약을 강조하는 칼뱅주의 교리의 영향이라고 하는 데 잘 모르겠다.


어느 주말, 한국에서 출장 온 동료들과 사무실에 나왔다. 근처 가게에 가서 점심을 사다 주려고 혼자 밖으로 나왔는데 건물 열쇠를 사무실에 두고 왔다. 누가 안에서 건물 현관문을 열어 줘야 하는데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다. 하는 수없이 근처 가정집을 두드리고 전화 한 통화만 하자고 하자, 바깥노인이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전화기를 현관문 밖으로 끌어다 준다. 그러면서 자기 안사람이 방금 세상을 떠났는데 나를 집에 못 들여서 미안하다고... 그 후 이 놀라운 이야기를 현지 동료들에게 들려주었는데 놀라는 자가 없었다. 엉뚱한 데서 문화 쇼크를 먹는다. 그 무서운 침착함과 냉정함. 그 집도 그때 커튼이 활짝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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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Gedesby1989님의 이미지


잔디 깎기도 그렇고 출퇴근도 멀어서 (25분..) 알스미어라는 호숫가로 집을 옮겼다, 물론 잔디는 주인이 깎아주는 조건으로. 겉으로 봐서는 물가에 있는 집으로 보이는데 사실은 물에 떠있는 배 집( houseboat )이었다. 차는 한 대 밖에 못 세우지만 요트를 붙일 선석 (berth)은 쓸데없이 네 개씩이나 됐다. 우리 집에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는데 재미있게도 공통된 두 번째 질문은 집의 하수구가 어디로 연결되냐였다. 혹시 오물을 호수로 흘려보내지나 않는지 의심했다. 첫 번째는 질문이 아니고 감탄사, 다시 한번 와야겠다는 다짐이었다(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한국에서 후배가 찾아와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는데 이상하게 속이 울렁거린다고 했다. 사실 그 친구 속이 아니라 집이 울렁거린 거였는데... 일 년에 한 열흘은 집이, 아니 배가 흔들렸다.





월드컵

알려진 대로 네덜란드는 축구 강국이다. 내가 간 1990년에 이태리 월드컵이 열렸는데 온 나라가 오렌지색으로 뒤덮여 들썩였다. 네덜란드의 독립영웅인 오렌지 공을 기려 오렌지색이 왕실의 색이 되었다고 한다. 마치 축구 실력이 국력이라도 되는 양 설쳐대서 내 맘이 좀 불편해졌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 국가 대표팀을 맡은 건 그로부터 10 년 뒤다. 사무실 벽에 네덜란드 축구 대표팀 사진을 붙여 놓은 것 까진 넘어갔는데 오렌지 깃발을 여기저기 다는 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 나는 회사의 사무실 복도에 하나 이상의 오렌지 깃발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동료 : 좋다, 이유를 알아도 되나?
나 : 여러 나라 고객들이 방문한다. 우리 회사는 다국적 기업이다.
동료: 이 회사는 네덜란드에 등록된 네덜란드 회사다.
나: 등록 같은 건 상관없다. 피고용자들 국적과도 관계없다. 이 회사가 아니라 우리 회사다. 우리 회사는 우리 물건 사가는 나라에 속한다.
동료: 그런 소리를 처음 듣는다 (= 또라이 같은 소리다), 편하지 않음을 느낀다 (=기분 더럽다)
나: 매출의 반이상 차지하는 나라 국기를 건다면 나는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가정법 과거-현재 사실의 반대, 내 기억에 당시 우리 네덜란드 내수 매출이 전체의 20%가 채 안됐다. ).



그로부터 2 년 뒤 1992년 바르셀로나 하계 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순위로 7위를 했다. 네덜란드는 20위 정도... 게다가 황영조 선수가 올림픽 마지막 날 토요일인가 일요일 몬주익 언덕에서 마라톤까지 우승을 해주니 ( 마라톤 중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도 눈물을 흘리면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나는 기고만장하여 월요일 출근을 별렀다. 직원들로부터 축하 인사받을 준비를 단단히 하고 회사에 나갔는데 아니 올림픽 얘기를 꺼내는 자가 한 명도 없는 게 아닌가? 이 인간들이 뒤끝이 있나? 그렇다고 체면에 먼저 얘기를 꺼내기는 싫고. 나 원 참.




음식 그리고 마늘

이래저래 느리게나마 현지 적응을 해갔지만 끝내 정 붙이지 못한 일상은 점심이었다. 치즈와 야채, 계란 등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두 개 시켜서 책상에 앉아 한 개를 씹고 나면, 다른 한 개는 오후 5 시경까지 건드리기가 싫었다. 점심 먹는 재미는 실종되었다. 결혼하기 전 약 2년 동안은 자취를 했다. 아직 그곳에 한국 식품점이 없던 때라 아쉬운 대로 중국 상점에 가서 장을 봤는데 한국 라면은 몇 년씩 묵어서 어떤 건 라면 수프가 돌처럼 딱딱했다. 떠나올 때 후배가 한 경고가 생각났다. '형 알지? 라면 치사량이 천 개야.' 혼자 살면서 라면만 먹을까 봐 일러준 출처불명 가짜 뉴스다. 간혹 교민이나 상사 주재원 집에 초대받아 가면, 잊고 있었던 '사제 (민간인) 밥'에 몸이 먼저 반응하며 거칠게 흡입하는 통에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더 민망한 건 일어설 때다. ㅇ과장님 깻잎 장아찌 좀 싸드려라! 아까부터 그것만 먹던데 (내 젓가락의 검색 순위를 들킴)... 좀 조용히 싸주던지. 이웃의 '결손가정'을 항상 안쓰러워한 그분들에게 지금도 미안하다. 타인의 고통과 불안을 같이 느끼는 인간의 공감 본능을 목격했다.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은 마늘 냄새를 싫어한다. 유럽에서도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정확히 말해서 질색을 한다. 지중해 쪽으로 가면 머리카락 색도 짙어지고 마늘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다. 동양 음식에 마늘이 꽤 들어가고 또 건강에도 좋다는 거는 알아도 감각적으로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직원들이 내색은 안 하지만 크지 않은 공간에 마늘을 상식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이 직장에서 참아야 할 게 하나 추가되는 셈이다. 간접적으로 근무 능률에 영향을 주게 되고 결국 그게 다 비용이다. 나 혼자 히죽히죽 웃으면서 해결할 수 있는 쉬운 문제다. 점심이 부실해서 아침 저녁은 집에서 한식으로 먹으면서도 음식에서 마늘을 다 뺀 이유다. 김치에도 마늘 대신 양파를 넣었다. 깍두기를 한번 담았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신이여 이걸 제가 담았습니까'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럴 땐 김치 국물을 조금 남겼다가 다음 김치 담을 때 끼얹으면 수준이 비슷한 작품이 복제된다. 예술과 과학의 융합이다.


우리 음식 거의 다에 마늘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외국 나가서 알았다. (생) 마늘 냄새는 이를 닦아도 며칠씩 간다. 귀국해서도 서양사람과 만날 일이 있으면 미리 마늘 음식을 자제한다. 주위에 이런 얘기를 하면 약 70%는 갑자기 격앙을 하는데 그때 나오는 볼멘소리가 거의 같다. '한국 사람이 김치 먹는 게 뭐가 어때서?!!' 나로 인해 야기되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 감각적인 불편함을 작은 노력으로 예방하자는 거다. 상대방이 얘기 못하는 애로를 배려해주는 것도 괜찮은 장사(돈이 아닌 감정의 거래) 다. 그런데 김치를 직접 담그면 김치찌개를 못 끓인다, 김치가 아까워서.





언어

그곳을 처음 찾은 한국 사람들이 내게 '자주 묻는 질문'중 하나는 여기 사람들은 어디 말을 쓰냐 였다. 영어 아니면 독일어? 작은 나라가 뭐 따로 언어씩이나 있겠냐는 좀 오만한 질문이다. 독일어와 유사하기는 하지만 네덜란드는 독자적인 언어가 있다. 네덜란드 외에도 벨기에, 수리남, 안틸레스 제도 등에서 국어로 쓰고 있다. 재미있는 건 네덜란드 사람들도 내게 비슷한 질문을 한다는 것. 이에 대해 나는 당신네 레이든 Leiden 대학 ( 네덜란드의 오래된 대학 )에 이미 한국어과가 있다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나라 외국어 대학교에도 네덜란드어과가 있다


이국 땅에서 피아彼我 ( 저편과 이편 , 아군 적군이 아닌 ) 구별하는 요소엔 인종, 음식, 언어 등이 있는데 그중의 으뜸은 언어인 것 같다. 아무리 생김새가 비슷하고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말이 안 통하면 동질감은 떨어진다. 역으로 말이 자연스레 통하면 다른 다름은 극복된다. 5 년씩 살면서 현지어를 배우지 않은 것이 아쉽다. 핑계는 그 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잘한다는 거였다. 덕분에 일 년에 이틀 서머타임(일광절약 시간)을 한 시간 씩 당기고 늦추는 날 아침엔 바보가 되었다. '왜들 이렇게 늦어?' 또는 '오늘은 새벽같이 들 와서 앉아있네?' 미국과 유럽의 서머타임 시작하는 날이 다르고 CNN만 봐서는 모른다. 관광객과 주민의 차이는 그곳 말을 이해하느냐 여부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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