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할 때 어금니가
남아있는 게 다행이었다.

관리

by 영감


네덜란드 근무를 마치고 귀국해서 치과에 갔더니 양쪽 어금니가 심하게 마모되었다고 한다. 능력에 부친 일을 하다 보면 긴장하게 된다. 그리고 화가 났을 때, 깜짝 놀랐을 때, 무서움을 느낄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를 꽉 깨물게 된다고 한다. 거기서 5 년 동안 그렇게 이를 깨물고 있었다.


영업이 좀 살아나니 이제는 회사의 관리를 챙겨야 할 차례다. '영업 지원 좀 한다고 잔소리나 늘어놓는 게 관리' ( 영업하는 사람들이 관리 업무를 바라보는 일반적 시각)라는 몰상식한 선입견을 가지고 들여다보니 규모는 작아도 있을 건 다 있었다(=장난이 아니었다). 돈 나가는 지출 전표 사인할 때마다 오금이 저리던 차라 우선 회계부터 들여다보기로 했다. 중학교 상업 시간에 배웠던 복식부기 실력까지 동원해서 훑어 나갔다. 일과 후에 대차대조표 붙들고 캐묻다 보면 자정이 가까워지고 경리과장 눈은 벌게졌다 (자네가 야근을 해봤어야지.). 뭘 모르는 상사가 배워가며 가르치겠다고 덤비면 실무자만 피곤해진다. 상사가 의욕까지 있으면 최악이고. 그래도 끈기 있게 되풀이해서 설명해 준 나의 '회계 선생 ' M이 고마웠다.


M이 결혼할 때 회사에 경조비 규정이 없어 관리이사와 상의하니, 규정은 없고 비과세 경조금 상한 액수가 얼마라는데 그만큼 못 준걸로 기억한다. 참 쩨쩨한 나. 소득세율이 높은 나라에서 비과세 혜택은 놓치기 아까운 기회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나중에 본사에서 온 감사팀한테 M이 두 가지를 '조회'했다고 한다. 내 급여의 소득세를 회사가 내주는 거 하고, 내가 회사 경비로 화란어를 배우는 게 규정 맞느냐는 것. 그 얘기를 나중에 전해 듣고 나는 M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회사 재무 투명성을 위해서 자기 상사의 일 이래도 의심해보는 자세는 본받아야 한다. 당시 주재원들이 나가 있는 지역의 세율이 다 달라서 본사는 주재원의 급여를 직급별 실수령액 (=네뜨)으로 정해 놓았다. 그리고 현지 세율로 역산해서 세전 급여액을 역산했다. 내가 직급별 '네뜨'가 나와있는 엑셀 시트를 '떤져'주며 내 직급에 동그라미 치고 세금은 거기다 얹으라고 하니 의아했던 모양이다. 소득세가 워낙 높은 나라라서. 아니면 M 이 의심이 많은 친구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는 내게 한국에서는 양어장에 고기 풀어놓고 낚시질한다는데 사실이냐고 몇 번 물어봤다. 나는 지금도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한 건지 모른다.




영업 뛰랴 ( 정확히 말하면 영업 날으랴 - 부다페스트, 바르샤바, 프라하, 모스코우 등 ), 관리 챙기랴, 안 그래도 부실한 두뇌 용량이 한계를 넘어갔다. 시도 때도 없이 놓친 것 챙길 것들이 떠올라서 침대 옆에 아예 메모장을 매달아 놓고 ( 꿈에 생각난 거 포함) 적어 놓았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반은 무슨 말인지 생각이 안 났다.


하루는 영업이사가 와서 하는 말이 (한국) 본사에서 실어 보낸 물건이 선박회사 문제로 통관이 늦어져... 재고가 부족해 고객들이 난리가 나고... 그런데 그 선박회사가 바로 '한닌 Hanjin'이고... 말하자면 한국 선박 회사인 한진해운이 물건 하역을 늦게 해서 장사를 못한다고 내게 와서 불평하는 거다. '이놈아 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고 니네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이다'라고 쏴 줬어야 하는데 나는 마치 내가 잘못이나 한 거처럼 여기저기 전화를 해댔다. 이 친구 걸핏하면, 회사에서 이사(director) 대우를 제대로 안 해 준다고 투덜거렸다. 월급 얘기다. 제발 '이사' 직급에 걸맞게 영업실적이나 올리면서 그딴 소리 하라고 했어야 하는데 정답은 항상 나중에 생각난다. 당돌하게 나오는 상대방에게 반격할 대사가 실시간으로 생각이 안 나는 게 나의 문제다. 순발력은 축구선수에게만 필요한 능력이 아니다.


90년대엔 본지사 간에 주로 팩스로 통신했는데 기밀 사안을 제외하곤 영어로만 주고받아서 본사의 동료들로부터 원성을 샀다. 지금은 다국적 기업들이 다 그렇게 하지만 당시만 해도 잘 통하는 우리말 놔두고 한국 사람끼리 까칠하게 웬 영어? 였다. 본 지사 간 업무를 한국어로 통신하면 내가 일일이 번역해야 하고 의미도 생생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수적인 득 (이게 사실은 더 중요함) 은 본사의 비합리적인 (= 도무지 말이 안 되는 ) 요구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본사에서 루마니아에 있는 우리 거래처의 경쟁사와 나 몰래 직거래를 하다가 품질 문제 시비가 붙어 돈을 못 받고 있다고 전화가 왔다. 우리 보고 가서 문제 해결하고 돈도 받아달라는 본사의 부탁을 나는 도저히 동료들에게 전할 수가 없었다. 우선 물리적으로 영어로 번역해서 문장을 구성할 수가 없다. 이럴 때마다 나는 우리말이 원래 말이 안 되는 말에 특화된 언어인가 고민했다. 본사는 우리의 투자자이자, 상급 조직이자, 독점 공급자다. 두 글자로 줄이면 깡패였다. 이런 상도의에도 어긋나고 말도 안 되는 본사의 '패륜적 만행'을 동료들과 같이 앉아서 욕하기도 싫었다. 해결은 나의 고유업무가 되었다.

나는 이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 외국회사의 한국 대표를 하면서 비슷한 일을 겪게 된다. 이번엔 본사가 네덜란드다. 우리 몰래 한국에 야매로, 그것도 반값에 판 사건이다. 옛날처럼, 한국의 동료들에게 본사의 입장을 제대로 옮기는데 애먹었다. 문제는 내 안에 있다는 걸 다 지나서 알게 되었다. 문제에 인격을 부여해서 스트레스를 자초함으로써 정작 해결에 필요한 기능을 마비시키는 나의 내적 통제 장치의 결함으로 결론을 맺는다.




해외 법인의 인사 문제는 난감하다. 이미 책정되어 있는 직원들의 급여, 복지 수준을 어느 정도에서 유지할지가 고민이었다. 회사가 너무 짠 건지, 헤픈 건지 판단이 안 섰다. 우리나라 같으면 기업 규모나 직원의 연륜에 따라 대략적 '견적' 이 나온다 ( 아직 우리나라에 연봉 개념이 생소하고, 회장부터 말단 직원까지의 월급이 직급과 호봉에 따라 엑셀 시트 한 장에 공개되던 시절이다. 직급 간에 월급 차이도 크지 않았다.). 유럽은 이런 면에서 보편적 기준이 좀 애매한 반면 회사와 개인에 따라 대우가 다양했다. 우리나라와 소득 수준이 많이 차이 나는 데 본사 기준으로 고집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직 채산성도 안 좋은데 직원들 환심이나 사려고 퍼줄 수도 없고... 사대부는 결코 물건을 가지고 남을 기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좌우간 이런 거 말고도 주위에 조언을 구하면 '알아서 (upto you)'라는 답이 많이 돌아왔다. 만일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덴마크 사람이 내게 와서 한국인 친구 장인 돌아가셨다는데 어떻게 하지? 하고 물어본다면, 나는 문상 절차, 복장, 부조금 액수, 화환 전화번호 , 공짜 봉투, 공짜 넥타이 렌탈, 장례식장 내 현금지급기 위치까지 상세하고 적절하게 (時中) 행동 요령을 권고할 수 있다. 이 사람들 ( 미국도 그렇고 ) 은 일단 '알아서'로 얘기를 시작한다. 자주 들으면 짜증 난다. 우리처럼 획일적인 기준과 관행이 통하는 사회가 아닌 거는 안다. 그래도 사회 통념이라는 게 있는데... 나중엔 나는 동료들에게 'upto you' 포함 3불不 표현을 당부하게 된다. 적어도 회사 안에서 내게 쓰지 말아 달라는 말 3종은,


upto you(알아서) : 당연히 내가 알아서 하지. 그냥 당신 의견을 묻는 거야. 그러니까 사적인거 물어보면 'upto you'는 했다 치고 당신 의견을 좀 줘, 책임지라 소리 안 할게
good question ( 아, 그거 정말 모르겠네) : 그냥 모른다고 해. 그리고 가급적이면 좋은 답 ( good answer )를 기대해
I hope-- (--잘 될 거야 ) : 그렇게 낙관적으로만 얘기해서 업무에 무슨 도움이 되나, 좀 냉정하게 판단하자고.


그랬더니 영업이사 뺀질이가 내게 역 제안을 한다. 사장도 줄였으면 하는 부사 adverb가 하나 있어,

좋아, 뭔데?

'anyway 좌우간'

그래? 알았다고...... 좌우간,


우리나라 사람이 영어를 할 때 anyway 가 유난히 많이 들어가기는 한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성급한 정서와 관련 있다고 보는데 내 생각이다. 결국 3+1 불 표현 협약은 실현되지 않았다. 말은 문화다.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선 직원들을 좌절시킬 정도로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인(=민원)을 찾아 개선하는 방식으로 간접적 보상을 시도했다. 예를 들면 본사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들( 위에 루마니아 건 같은 거), 재고 부족, 품질 문제를 최대한 내 힘으로 풀어주고 막아줬다. 방법은 한국 본사에 있는 예전 동료들을 들볶는 거였다. 네덜란드 출근시간이 한국은 오후 네댓 시가 된다. 그 시간이면 본사 사무실에 있는 유럽 담당 직원이 내 전화 피하려고 슬금 자리를 뜬다는 걸 나중에 귀국해서 알았다. 그래도 본사에서는 객지에 나간 자식 보듯이 우리 지사를 파격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그 외에 시도한 건 직원을 한국에 출장 보내준다든지, 좀 우습지만 내가 마늘을 안 먹는 거였다.


한편 바꿔야 할 관행은 신중하게 판단한 후 고쳐나갔다. 병이 나서 결근하는 직원이 유난히 많았다. 그때까지 한국에서 경조사를 제외하고 결근하는 걸 본 적이 없는 나는 첨에 상당히 헷갈렸다. 그곳에선 ( 지금은 조금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 직원이 병가를 내는 절차가 마치 병가를 장려한다고 오해할 만큼 간단했다. 일단 직원이 당일 아침에 직장에 전화를 걸어 병가를 신고하면 그 후 6개월까지는 다른 절차 없이 쉴 수 있었다. 정부에서 병가 직원의 급료 일부를 회사에 보상해 주는 한편 병가 중인 직원을 대신 관리한다. 병가 직원이 집에 머무를 경우 해당 관청에서 불시에 집을 방문하여 확인하기도 한다는데 실제 그런 일은 흔하지 않다고 했다.


아픈 직원에게는 직장 신경 안 쓰고 치료를 받을 수 있어 좋은 제도이지만 이를 악용하는 직원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월요일 유난히 병가 직원이 많은 게 그 증거다. 일정 기간의 초기 병가 일수를 휴가에서 공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부 직원들이 반발했지만 버텼다. 인원이 빤한 조직에서 결근은 다른 동료에 대한 민폐라는 걸 다들 알고 있기에 대부분의 직원이 수긍해 주었다. 자기네들은 일 년에 한 달씩 흥청망청 휴가를 즐기는 반면, 일 년에 한 번 주말 금토일 또는 토일월, 그마저도 운 좋아야, 쉬는 흉내만 내보는 나를 보면서 차마 뭐라고 불평을 할 수 없었으리라. 그래도 난 그건 안 물어봤다. '당신들은 휴가 중에 아프면 어떻게 들 해?'


귀국할 때 어금니가 남아있는 게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