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흔들었던 칭찬 한마디

나도 잘하는 게 하나는 있을 텐데

by 엄달꼬달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된 것은 어릴 적 부러움에 대한 늦은 대리만족이었다면, 미술학원을 가겠다고 용기를 갖게 된 것은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중학교 다니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미술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유일하게 실습이 이루어지는 것은 수채화였고, 당연히 실기시험도 수채화로 평가했다.


미술 실기시험 보던 날이 생각이 난다. 선생님은 실기평가를 A, B, C 등급으로 나누었고, 아이들의 그림을 공개해 보여주면서 실기점수를 채점하셨다.


내 그림은 B 점수 그룹에 있었는데 나는 확연히 A그룹의 그림과 차이를 느꼈다. 무엇이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내 그림과는 달랐고, A그룹의 그림들이 잘 그렸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A그룹 그림이 잘 그렸다고 내가 느낀 이유는 명암 때문이었다. 내 그림과 A그룹 그림과 차이는 명암이 있고, 없고 였다. 미술교육을 학교 공교육으로 밖에 받지 못한 내가 이론을 알리 없었고, 그런 그림을 그려 본적도 구경해 본 적도 없었다.


어릴 적 특별히 학원 등 사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타고난 소질이 없는 내가 그림을 못 그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평가를 위해 수채화 그림을 그리는 수업시간 동안, 내 그림의 부족한 부분을 눈으로는 알았지만, 내 머리는 이해 못 했고, 내 손은 흉내 낼 수 없었다. 나도 잘 그리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날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철저한 입시 위주의 수업시간표가 운영되었다. 미술수업이라고는 일주일에 고작 한 번 정도.


수시가 없던 시절이라 수능이 대학으로 가는 전부인 통과 문이었다. 대학 진학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과목은 그렇게 찬밥신세가 되었다. 교과에 편성은 하지만 미대로 진학하지 않는 학생에게는 큰 의미 없는 그런 과목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일주일에 한 번 이루어지는 소묘 수업이 다였다. 그나마 고3이 되면 미술 수업시간조차 자율학습이 이루어졌다.


공부를 월등히 잘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대학으로 진학을 목표한 아이들은 국영수 위주로 머리를 싸매고 공부했고, 그나마 집안 형편이 좋아 본인이 좋아하는 예체능 쪽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한 반에 2~3명 정도 극히 소수였다.


나처럼 공부도 중간, 집 형편도 안되고, 예체능에도 소질 없는 아이는 본인의 소질 따위를 생각하거나 고민하기보다는 국립대라도 진학하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꿈꿀 뿐이었다.


이렇게 평범한 나에게 마음의 불씨를 남게 한 작은 사건이 있었다.


나의 고등학생 시절 미술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한 단발 정도의 머리 길이에 하얀 백발을 하신 할아버지 선생님이었다. 학교에서는 평범한 할아버지 선생님일 뿐이었는데 소문에 선생님은 개인 전시회를 열 정도로 미술 쪽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시는 인지도가 있는 분이었다.


그날도 우리는 평소처럼 일주일에 한 번밖에 없는 미술수업을 위해 미술실로 이동했다. 우리가 하는 미술수업이라고는 일 년 내내 하얀 도화지 위에 연필 한 자루 들고 소묘를 그리는 것이었다. 당연히 실기 평가도 소묘로 이루어졌고, 원구를 그려 그림 한 장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나도 소묘를 열심히 그려나갔다. 물감으로 색이 들어가기 전, 스케치까지는 평소 조금 흉내는 낸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보고 따라 그리는 건 그나마 조금 한다고 혼자만의 믿음에 넘쳐 자신감 있게 그림을 그려나갔다.


나의 그림은 교실 앞 교탁에 놓인 원구를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고, 원구 옆에 전시된 예전 학생들이 그린 소묘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린 것이었다.


원구 소묘는 그렇게 완성되었고, 그림에 아무 지식 없는 내 눈에는 썩 잘 그려졌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좋아하고 있을 때.


그림이 거의 완성되었을 무렵, 흰머리 선생님은 나에게 다가와 가볍게 말을 거셨다.

“잘 그렸는데. 어디 학원 다녔니?”

“아... 아니요. 학원은 안 다니는데요....”


나는 선생님의 물음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을 했다.

그게 다였다.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 무심히 내 옆을 지나가시면서 걸어주신 한마디.

그리고 그날 나는 소묘 실기 평가에서 A를 받았다.


미술학원이라고는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내가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은 것이다. 더욱이 원래 물체를 보고 그린 것도 아닌 소묘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린 것뿐인데.


그날의 기억은 그렇게 언젠가는 그림을 배워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해 주었다.

이게 드라마나 영화 속 이야기라면 그때라도 그림을 시작해 미대를 가겠다고 발버둥 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현실에 사는 평범한 소심한 학생이었다.


우리 집은 형편상, 혹시나 내가 일찍이 미술을 전공하겠다고 선언한들 부모님은 무조건 반대하셨을 것이다. 아니, 나는 현실의 문제를 그냥 미뤄버릴 정도로 그렇게 큰 꿈을 꿀 정도로 배포가 큰 사람도 아니었다.


나의 존재감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평범한 아이. 성적도 중간. 공부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특별한 사고 치는 건 없어 담임에게 관심은 못 받지만, 부모님 속 안 썩이는 그런 아이.


지금에 와서 가끔 생각을 해보기는 한다. 내가 미술을 전공해 대학을 갔다면 현재의 나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겠지 하고.


나는 학생 시절 나의 적성을 찾지는 못했지만, 내가 성인이 되어 직장을 갖고, 경제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는 때가 오면 다양한 취미생활을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성인이 되어 늦게라도 나의 적성을 찾는다면 직업으로 소화할 수는 없어도 취미라도 즐기며 살겠노라고.


나는 그렇게 늦은 나이에 미술학원 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