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꿈을 꾸는 아이
라떼만 해도 연예인 같은 화려한 직업을 선호하기보다는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과학자, 의사, 판사 등 우리 주변에는 없지만 책이나 티비 속에서는 너무도 흔한 직업이 동경의 대상이었다.
아주 어릴 적 나는 꿈이 없었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뭐라도 말을 해야 할 거 같아 어른들이 물어보면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적성이 뭔지도 잘 모르는 나이, 아는 직업도 별로 없었고, 그냥 멋있다고 느낀 직업도 딱히 없었다.
아는 직업 중에 그나마 어른들이 그 정도면 ‘적당하군’ 하고 느낄 수 있는 직업을 대충 대답해 줌으로써 더 이상의 질문을 받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뒤로 심각하게 진로를 고민하게 된 것은 고등학생이 된 시점이었다. 아마도 대학을 진학하려면 전공을 선택해야 하고, 전공으로 취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자 담임은 진학하고 싶은 희망 대학을 조사했다. 우린 이제 1학년이었고, 누구나 꿈은 크고 원대하게 시작한다. 아이들은 저마다 서울대 등 흔히 말하는 일류 대학, 인 서울 대학들을 1~3순위를 채워 제출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방 국립대학교를 1순위로 적은 사람은 나 혼자 밖에 없었다. 꿈이 너무나 소박한 사람은 우리 반에서 나 혼자뿐이었다.
현실을 말하자면, 우리가 다니는 학교는 지방에 있는 평범한 평준화 고등학교였고, 서울로 진학하는 아이는 솔직히 많지 않았다. 이 국립대도 들어가기가 쉬운 학교는 아니었다. 한 반에서 3분에 1도 진학하기 어려운 학교였다.
나보다 공부를 훨씬 잘했던 우리 언니도 국립대에 입학해서 다니고 있는 현실에서 두 명이나 대학교를 다니는 건 우리 집 가정형편으로는 버거웠다. 더욱이 나는 언니보다 공부도 못했다. 그래서 자취는 꿈도 꾸지 않았으며 언니를 따라 집에서 통학이 가능한 등록금이 저렴한 국립대를 가야 한다고 일찍이 생각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은 희망 직업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조사지는 개인별로 작성해 제출되지 않고, 종이 한 장에 표로 만들어져 반 전체를 돌고 돌았다. 아이들은 과학자나 판사 같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직업을 쓰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아는 그런 평범한 직업이면서 공부를 어느 정도는 해야 갈 수 있는 교사, 간호사 등의 직업을 써넣었다.
희망 직업 조사표가 돌고 돌아 나에게 다시 왔는데 내가 쓴 직업이 눈에 젤 띄었다. 그건 누가 그었는지 내가 쓴 직업에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었기 때문이다. 교사, 간호사가 아닌 처음 듣는 직업에 의문을 가진 누군가가 자기도 모르게 들고 있던 펜으로 밑줄을 그어버린 것이다.
내가 쓴 직업은 1. 심리상담사, 2. 사회복지사였다.
아이들은 본인의 희망직업에 대해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나는 이 두 직업을 만나기 위해 학과 정보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도서관에서 직업 관련 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나는 그때도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현재 내 성적으로 조금만 노력하면 갈 수 있고, 전공을 선택해 졸업하면 뚜렷한 자격증이 있어 취업이 가능한 학과로 진학을 목표로 잡았다.
공부랑 무관하게 누구나 꿈꿀 수는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이란 건 나중에 알게 되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