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기술 핀과 포크

아들에게 배우는 체스

by 눈항아리


“달복아 엄마 이제 기본 다 익혔다!”


나는 칭찬을 바랐다. 오죽하면 강아지 생각을 했겠는가. 아들은 칭찬의 말은 건너뛰고 전술을 배웠냐고 물었다. 전술은 무슨, 난 이제 막 기초를 배웠을 뿐인데. 체스 기물의 모양도 가물가물하고 몇 칸, 어디로 옮겨야 하는지 외우기에 급급하다. 아침에 배웠는데 자기 전에 잊다니. 나의 상태는 아랑곳 않고 아들은 전술을 가르쳐준다고 했다.


체스판은 없다. 아직 배송 전이다. 그렇게 한밤중 이불에 누워 우리는 머릿속에 체스판을 그렸다. 자장가 대신 아들에게 싸움의 기술을 전수받았다.


“엄마 핀과 포크를 알려줄게.”


아들은 머리에 체스판을 그리고 말을 올려놨다.


“대각선으로 말이 놓여 있어. 대각 선 끝 a1에 백색 비숍을 놓고, h8에 흑색 킹, g7에 흑색 나이트가 있다고 가정해 봐.”


랭크와 파일이 뒤죽박죽이 되면서 체스판이 머릿속에서 일그러졌다. 수학 행열을 다시 공부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머릿속에 체스판을 그렸다. a1에 비숍을 놓는데 한참 걸렸다. 그리고 h8에 킹을 놓았다. 그런데 그 사이 먼저 놓았던 비숍이 사라졌다. 비숍을 생각의 덩어리고 꾹꾹 눌러 자리를 고정했다. 이번엔 나이트를 h8에... 악! 셋 다 날아가 버렸다. 내 머릿속은 하얀 백지가 되었다. 체크무늬는 사라진 지 오래.


‘체스 판이 빨리 오면 좋겠다. 머릿속이 아니라 눈앞에 실물이 있다면 훨씬 이해하기 쉬울 텐데. ’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의 강의는 계속되었다.


“블라 블라~”

그 말이 들릴 리가 없었다.


아마도 아이의 말은 이런 말이었을 거다.


“핀은 핀으로 고정한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거야. 비숍은 대각선으로 움직이니까 나이트가 없다면 바로 체크 상황이잖아. 그러니까 나이트는 절대 움직일 수 없어. 이런 상황을 핀이라고 해. ”


이미 백지상태가 된 머리에서 호응의 말이 흘러나왔다. 몰라도 아는 척. 어둠이 나의 난감한 얼굴을 가려 주었다. 다행이었다.


“포크는 말이야.”아들이 말했다.


‘포크는 내일 하면 안 될까? 나는 포화상태라고.’ 나는 생각했다.


“포크는 여러 개 찍어서 먹는 것처럼 공격하는 거야?”그러나 나는 말했다.

나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웃자고 말했는데 그 말이 맞다고 칭찬을 받았다.


“포크는 1개의 말이 여러 개 말을 공격하는 거야. 포크로 콩알 여러 개를 찍는 것 같은 공격이야. ”아들이 말했다.


그 뒤로 포크에 대한 체스판이 차려졌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귀를 닫고 있으면 안 들린다. 뇌의 용량을 넘어서면 집어넣을 수 없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귀가 스스로 닫힌다.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참 신기한 일이었다.


아들이 가르쳐준 핀과 포크 전술을 머릿속에 그려내지 못했다. 체스 판이 휙휙 그려질 리가 없다.


그렇다고 아무런 배움이 없는 건 아니다. 배움은 스스로 그 길을 찾아간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 대신 다른 공부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때로 나도 느꼈던 것이다. 수학 책을 펼쳐놓고 게임 공부를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아들에게 핀과 포크 체스 전술을 배우며, 공부는 스스로 하도록 독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가르치려는 욕심이 배우려는 의지를 넘어서는 걸 경계해야 한다. 진도가 있고 그날 배울 양이 정해져 있어야 하는 이유다. 가르치는 데도 계획을 세워야 하는 이유다. 임기응변식의 가르침은 공부에 대한 열의를 꺾을 수 있다. 반항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달복이가 계획 없이 가르친다고 절대 비난하는 게 아니다. 방법이 틀렸다고 뒷담화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킬 때, 특히 영어를 시킬 때가 생각나서 그렇다.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공부하는 자가 공부 욕심을 내야 한다. 가르치는 자의 역할은 열의를 불태우도록 격려하고 응원하는 일이다.


내 머릿속을 열어 보여준 건 아니지만 백지의 나를 보여준 것 같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 마음이 들면 사람이 겸손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나도 공부를 안 한 게 아니다. 엄청 열심히 했다. 미숙해 보이는 건 아는 자의 시선에서 그런 것일 뿐. 아침 일찍 일어나 숙제처럼 써재낀 체스 기본 익히기 글을 보여줬다.


‘달복아 엄마 이렇게 열심히 정리도 하고 숙제도 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패드의 불을 밝히고선 아들은 내 글을 읽었다. 그런곤 평소보다 나를 꼭 안아줬다. 칭찬인가 보았다. 아이의 가슴에서 사랑이 느껴졌다.


“엄마 정말 열심히 공부했네.” 달복이가 말했다.


“그지? 달복아 엄마가 체스 챔피언이 될 수 있을까? “ 내가 말했다. 칭찬으로부터 금방 날개를 부여받았으니까.


“아니.” 달복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초반부터 내 기를 확 꺾어놓는 심보 고약한 선생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러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아이는 나무다. 꿈나무. 나도 나무다. 체스 꿈나무. 꿈꿈꿈.



싸움의 기술 핀과 포크

핀은 움직이면 더 큰걸 잃게 만들어 묶어 두는 전술이다.
포크는 한 번의 수로 상대의 두 개 이상의 말을 동시에 공격하는 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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