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심고, 파를 심었다

2026. 3. 29

by 눈항아리

“재는 어디서 났어?”


건조한 봄날이다. 산불감시 차량이 수시로 다니는데 들판에 불을 놨을 리 없다. 남편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은 양철통에 굴뚝까지 붙어 있는 화로다. 가끔 나무를 넣고 잔가지를 태우기도 하고 고구마를 구워 먹기도 한다. 내가 안 쓴다고 잊고 있었다.


남편이 감자를 자른다. 구둣방 아저씨에게 보름 전에 얻어온 씨감자다. 씨눈이 하나는 그렇고 두세 개는 있어야 한단다. 눈이 몇 개 없는 건지, 자른 감자가 무지하게 크다. 우리는 한 줄 70개만 심으면 되는데 감자가 많아서 부러 크게 자르는 건지도 모른다. 작은 감자는 그냥 심는다. 그런데 칼집을 내야 한단다. 싹이 잘 나라고 그런다.


감자를 자르고 재를 발랐다. 바가지에 퍼온 재는 가느다란 회색의 흙 같다. 바가지 한 구석에 있는 까만 숯덩이 몇 개가 재라고 말해준다. 감자 단면에 재를 바르고 잘 말려서 굳혀야 한다. 상처를 보호하고 살균을 위해서란다. 바람결에 감자를 널어뒀다. 하루 이틀 말려서 단단하게 굳으면 좋다. 그런데 우리는 잠시 후에 감자를 심는다. 지난해에는 재도 안 바르고,


네모진 바구니에 하나씩 조심히 담는다. 그냥 바가지로 퍼가지고 가면 될 것을 남편은 유리 감자를 옮기는 것처럼 군다.


“그냥 한꺼번에 들고 가면 되는 걸, 왜 그래?” 나는 딴지 걸기 대장이다.


남편은 감자를 심는다. 손으로 흙을 파고 조심스럽게 덮는다.


‘호미도 없이 뭐 하는 거람.’


“내가 감자 심을게. 자기는 다른 거 할 일 많잖아.”

언제 도와주나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남편은 바로 일어선다.


나는 남은 감자를 네모 바구니에 한꺼번에 담아왔다. 구멍에 감자를 하나씩 놔준다. 호미로 땅에 구멍을 파고 흘러내리는 흙이 구멍을 메우기 전에 얼른 씨감자를 넣는다. 흙으로 덮고 파고 묻고 살짝 누르고 앞으로 나간다. 얼마나 잘 심는지 모른다.


원래 심는 건 내 일이다. 팔 아픈 나는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남편이 신신당부했지만 어디 그럴 수가 있나. 나는 일 안 하고 마당에 마른 가지나 정리한다고 나왔다. 쇠스랑을 들고 정원 손질을 하고, 가위를 들고 나뭇가지를 잘랐다. 마당 일이나, 농사일이나 똑같은 일인데, 바쁜 농사철에 뻔히 일하는 걸 두고 마당일이나 하고 있자니 좀이 쑤신다. 감자를 심는 게 백 번 낫지. 마당 정리는 얼추 끝났다. 일을 안고 끙끙거리는 남편을 안 도와줄 수가 있나.



내가 감자를 심는 동안 남편은 밭 한 귀퉁이에 퇴비를 뿌렸다. 미니 관리기를 가지고 나와 밭을 갈아엎었다. 단단한 흙을 한번 뒤집으니 명품흙으로 탈바꿈했다. 흙 빛깔이 예술이다. 장화가 쑥쑥 빠지는 고운 흙에 기계를 더 올려두기 싫었던 것일까. 남편은 괭이를 들고 손수 골을 탄다. 그러곤 힘들단다. 얼굴이 벌게졌다. 몇 고랑 안 된다고 얕본 것이다.


이번엔 미니 삽을 가지고 나온다. 파 밭으로 간다. 한겨울을 들판에서 보낸 파가 초록 손을 내민 지 한참 되었다. 파를 옮기고 넓은 밭을 한꺼번에 갈아엎으려고 그런단다. 뿌리와 줄기가 다치지 않도록 삽으로 흙을 떠서 파를 퍼올린다.


뿌리는 잘 보존해서 심어야 할 것 같은데 끝을 잘라주면 더 잘 자란단다. 가위로 긴 뿌리를 조금씩 잘라내고 한 뿌리씩 나눴다. 산발이 되어 엉겨 붙은 파뿌리가 힘겹게 떨어진다.


어느새 나는 파 고랑 앞에 서서 파를 심고 있었다. 한 뿌리씩 나눈 파를 깊게 판 고랑에 줄줄이 놓는다. 5 센티미터 간격으로 놓으라고 남편이 말했다. 듣고 한 귀로 흘리고 그저 대충 놓는다. 흙을 덮으면 조금씩 움직이기 마련이고 파는 일 자로 서 있는 것도 아니니까. 파 한 고랑을 놓고 한쪽 이랑을 무너뜨리며 흙을 덮고 반대편 이랑의 흙을 또 무너뜨린다. 파를 곧추세우고 줄을 세우고 고랑을 덮으면서 앞으로 나간다.


남편은 허기가 진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컵라면에 물을 부어달라고 했다. 남편은 테라스에 걸터앉아 라면 한 그릇을 뚝딱 먹고 일어서며 허리가 아프다고 한다. 내일이면 온몸이 아프다고 할 것이 뻔하다.


“나이 들면 힘들어서 농사 못 짓겠다.” 남편은 그랬다.

“나이 들어서 다른 일 안 하면 농사로 소일하고 좋지.” 나는 그랬다.

“나는 놀러 다닐 거야.” 남편은 그런다.

“나도 같이 놀러 다닐 거야.” 나도 그랬다.


나는 마당손질하다 슬그머니 밭일로 넘어갔다.

남편은 삽질, 괭이질로 구슬땀을 흘렸다. 오후 내내 일하고 힘들었나 보다.

봄날의 밭에서 우리는 먼 훗날을 계획을 한다.

노년의 우리는 그 밭에 앉아 있을까.


봄은 시작되었고 일요일의 농부는 봄날의 밭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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