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롭다

봄 밭에서 / 2026.3.22

by 눈항아리


따순 바람이 좋다.

무채색 대지 위에 점점이

초록 붓칠을 하는 봄.

설레는 바람결에

단출하게 바람막이 하나 걸치고

밭으로 나갔다.



감자밭에 거름 뿌리고

쇠스랑 들고 밭 고르는

남편의 뒷모습이 보인다.


몇 해 쌓아놓고

거름 집을 지어주고

부숙 시킨 퇴비는

구수한 땅 내음을 품고 있다.


그래도 뭉쳐진 거름덩이를 피하고 싶어

멀찍이서

농부 남편의 하는 양을 구경한다.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

흙바닥인 건 똑같다.


아직 김매기 할 풀은 없고

밭은 준비 중이다.

거들일이 있으려나 싶어

농부 아낙은 농부 옆에 와 앉은 것이다.


가만히 앉아 봄날을 구경한다.

앉은뱅이 의자 하나 가지고 올 걸.

쭈그려 앉으니 무릎이 시큰 거린다.



여린 날벌레 한 마리 비행한다.

피식피식 추락할 것 같은

위태로운 몸짓이다.


잿빛의 모래거저리

독불장군처럼 모래밭을 질주한다.

여섯 발자국을 따라

두 걸음 따라가니 멈춘다.

스무 번 숨을 참았다 작은 숨을 내쉰다.

녀석도 나도.



살그머니 기운차게 움직인다.

다시 두 발자국 따라가니 멈춘다.

잔뜩 경계하고선 1분 여를 꼼짝 안 한다.


녀석은 비상경계 태세,

나는 살랑바람에 괜히 신나 구경 태세.

녀석이 언제 움직일까

숫자를 센다.


내 발은 멈췄고 바람을 마주하고 섰다.

들판에 동화된 것처럼 위장했다.

녀석은 다시 움직인다.

존재감으로 반짝이는 대단한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다니.

아무리 내가 자취를 감춘 척했다 해도.

어이없다.

좀 알아주라.



전력질주해 닿은 곳은

녀석의 안식처.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고

거뭇한 흙을 파헤치고 머리부터 숨긴다.

덩어리 진 흙이 모래거저리 몸통 위에서 흔들 움직인다.

깔린 건 아니겠지.



밭일하는 농부의

봄 밭에 앉았다.

회색 점들이 바삐 움직였다.

봄은 우중충한 먹빛이다.

그리고 봄은

연둣빛 속에서 피어나는 노란빛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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