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복

<과수원>3

by 눈항아리

일복은 타고나는 걸까. 운명론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일이 끊이지 않고 굴러 들어오는 삶을 산 나는, 우리는, 일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평생을 사는 것 같다. 일복은 어쩌면 타고나는 건지도 모른다.


꽃이 피어서 좋다고 했다. 배꽃이 그렇게 하얀 줄 몰랐다. 하얗고 하얀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날이면 꽃비를 맞으러 배 나무 아래 섰다. 장화도 뭣도 없었고 그저 떨어지는 하얀 눈꽃 같다며 좋아했다. 우리는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강아지처럼 살랑거리며 다녔다. 복숭아꽃은 뒷동산에서 피고, 온 동산에 사과 꽃이 피었다. 그러나 꽃의 여흥은 딱 한 번, 한 해뿐이었다.


우리는 금세 꽃의 진실을 앍게 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봄부터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런 시구처럼. 한 송이 과일 꽃을 피우기 위해, 하나의 과일을 매달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노동력을 바쳐야 했던가.



과일나무에는 거름을 많이 준다. 비료도 많이 준다. 농약도 많이 뿌린다. 거름은 날것으로 오지만 다행히 비료는 잘 포장이 되어 나온다. 비료를 퍼서 뿌릴 때면 코를 찌르는 시큼한 냄새가 난다. 무럭무럭 자라라 나무야. 비료를 주며 이런 마음을 가지면 좋았을 텐데. 나는 산골 소녀가 되었지만 숲이 주는 선물을 모르고 살았다. 자연과 나 사이에는 늘 ‘농사일‘이라는 삼엄한 울타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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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발견하기 위해 귀 기울이다 자연스레 글쓰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 자연, 시골생활, 출퇴근길,사남매의 때늦은 육아 일기를 씁니다. 쓰면서 삶을 알아가고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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