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파묻혔다

속이 쓰리다. 얼굴이 탱탱 부었다. 손가락의 움직임이 둔하다. 주먹을 쥐면 부풀어 오른 살들의 느낌이 거북하다.

그건 다 엊저녁에 먹은 라면 탓이다. 볶아 먹는 매운 빨간 국물 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식구들 밥을 퍼주고 나면 왜 늘 내 밥은 없을까? 그건 늘 생각해 보아도 이상하다. 새 밥을 하는 때는 안 그렇지만 남은 밥을 먹을 때엔 자주 그렇다. 다음 끼니를 생각해 두 배 밥을 하기에는 양이 너무 많고 한 공기 더 먹을 사람을 생각해 쌀 양은 한 끼 양에서 조금 넉넉히 하는 정도다. 그런데 늘 밥은 양껏 남고 새 밥을 하기에는 난감한 경우가 많다. 그런 날은 밥을 안치지 않는다. 그런 날은 꼭 밥을 더 달라는 식구가 나온다. 신기하기도 하지. 온 식구가 모두 밥을 먹고 나서 몰래 라면 물을 얹었다. 즐기지 않는 라면이지만 나에게 주어진 식사 시간을 즐긴다. 국물 자작하게 보글보글 끓이니 모두 좋은 냄새가 난다며 몰려든다. 나 혼자 먹을 거거든? 라면도 하나 안 보이고 남편에게 대 놓고 밥이 없어 라면을 끓여 먹는다고 찾으러 다니기도 미안하고 짱박아둔 볶음탕면이 하나 있어 끓인 것인데 누구에게 나눠주기 아깝다. 라면은 하나 끓여 한 입씩 나눠주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끓여 먹어!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매운 라면이라 누구 하나 달려드는 자가 없다. 배가 불러서들 그런가. 라면을 마다할 그들이 아닌데... 홀로 만찬을 즐겼다. 참외김치, 열무김치, 남은 토마토를 한 그릇에 담으니 3종 김치가 완성되었다. 김치 색감도 참 좋군. 새콤 달달한 노랑 참외김치, 슴슴한 열무김치, 열무 국물과 고춧가루 몇 개를 뒤집어쓴 토마토가 라면과 찰떡궁합이다. 그렇게 매콤 짭짤한 식사 한 접시, 김치 한 대접을 먹고선 이모양이다.

밥을 먹고살아야 한다. 끼니를 거르면 배가 고프다. 고달픈 먹보는 그래서 얼굴이 파묻혔다. 어디에? 상상하면 슬프다.

김치만은 거하게 차려놓고 만찬을 즐기듯 홀로 라면 저녁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