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환희 Sep 03. 2015

자기소개서를 쓰는 우리의 자세

두괄식에 산뜻한 단문으로. 문체는 조증에 가까울 정도로 긍정적이어야 한다. 구체적인 사례는 실재하지 않아도 좋다. 주어진 질문을 뚫어지게 보다 보면 겪지 않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고 애사심이 뭉게뭉게 피어오를 테다. 나는 이 글을 쓰며 자아를 실현중이다 라고 염불 뇌듯이 중얼거리며 행여 서류 낙방이라는 부정한 상상은 삼가야 한다. 
  나는 귀사를 사랑한다. 귀사가 충용하는 톱니바퀴가 되고 싶다. 내 모든 오만과 자존, 아집은 해 아래 살라버리고 오너 또는 전문경영인의 지휘 아래 사규와 창립 정신을 철저히 체화해 지켜나간다. 
  다만 하루 다르게 여러 회사, 다양한 부서에 지원을 하니 서류 발표 전까지 시한 없는 충성을 요구하지는 말고 나 이외에 쓸 만하고 똘똘한 인재가 사장 모래알처럼 많다는 사실을 알며 그래도 공백이 있어 누구를 넣어도 회사의 핵심이익과 무관한 자리에 앉기를 소망한다.
  써보니 재미가 붙는다. 어떤 회사는 ‘문예’급의 자기소개서를 바란다고 한다. 연이 닿으면 정결한 마음으로 붓질하듯 쓸 수 있고. 친구에겐 “1일 1자소설에 자소설 작성 역량은 늘겠지만, 내 수명은 줄겠다”는 토로를. 명이 줄고 줄어 간절한 졸임 끝에 운수대통해야 입사를 하고 살길이 트이니, 오늘 첫 자기소개서를 쓰는 내 마음가짐이다.

작가의 이전글 광복 70주년 기념 숙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