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어른이 된다는 것

by 혜성
사회초년생 시절, 한 회사에 면접을 갔다.

40대 중, 후반이 되어 보이는 한 남성이 면접관으로 참석했다. 빈 공간은 형식적인 몇 가지의 질문들과 답변이 오갔다. 그의 질문들은 다른 면접관들보다 꽤나 날카로웠고, 철학적이었다. 회사에 와서 어떻게 일을 할 거냐, 우리 회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질문들이 아니었다. 그 대신 그는 나에게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준비하지 못한 질문들에 대한 답의 공백 속에 나의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시간을 끌 수 없던 자리에서, 나는 평소 내가 생각하던 것들을 꾸밈없이 답했다. 다행히도 그는 나의 답변이 꽤나 흥미로웠는지 입꼬리를 슬며시 올려 미소 지었다.


그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나 더 던지겠다고 했다. “대신, 어려운 질문이니 3분간 생각하고 답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 한 문장에 나는 꽤나 큰 압박감을 받았다. 하지만, 나의 부담감에 비해 그의 얼굴엔 미소가 장난스레 어려있었다. 왠지 나를 한 번 시험해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이 회사의 본부장이고,
당신은 신입사원에 지원했습니다.
만약에 회사에 입사를 했을 때,
당신이 어떤 큰 실수를 해서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입혔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결할 겁니까?


일어나지도 않은 나의 실수를 이 회사에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막연한 공간 속 나의 미래를 그 짧은 시간 안에 상상해 보고 답해야 하다니. 너무나도 가혹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들고 있는 것 같았고, 내가 맞추지 못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저 답을 듣는 것 자체를 흥미로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고민하는 3분의 시간 동안, 그는 그저 손을 모으고 나를 물끄러미 지켜볼 뿐이었다. 나는 머리를 쥐어 짜내며 이상적이고 형식적인 답을 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이 정답이 아니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내 답을 조용히 듣고 난 후, 면접을 끝내려는 그에게 나는 다소 당돌하게도 정답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왠지 그는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는 담담히 답했다.


정답은, 그 사실을 나한테 말하는 거예요.
그게 내가 본부장이란 직함을 달고 있는 이유고,
당신이 잘못했을 때 내가 대신 해결해야 할 이유이기도 해요.
당신이 책임질 것은 없어요.
그 책임은 내가 집니다.


그렇게 홀연히 그는 회의실을 떠나갔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나는 그와 함께 일할 기회를 얻었다.

그가 제시한 답이, 그저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겉 멋든 문장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그의 말은 여태껏 만났던 자신을 ‘어른’이라 칭하던 사람들과는 다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덕분에 그와 함께한 사회생활은 내 삶에서 일보다는 더 많은 것을 배웠던 시기가 되었다. 그때 덕분에 나도 ‘어른’이라는 것에 한 발짝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정말로 회사가 어려워졌을 때, 그는 자신의 말을 지키려는 듯 많은 것을 책임지고 회사를 떠났다. 자신의 몫만큼 우리 팀 직원들에게 챙겨주라는 말을 남기고서. 나는 그 당시 사회초년생이었기에 그의 말과 행동이 존경스러워 보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 저렇게 늙어가고 싶다!’ 하는 막연한 꿈을 가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도,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나이를 먹고 보니 그렇게 행동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자신이 쉬이 내뱉은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점점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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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