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벽 파랑

10대의 끝자락에서 내게 찾아온 첫 파랑

by 혜성
[새벽 파랑] 오일 파스텔, 수채 색연필

2011년 겨울, 나는 수능을 치르고 가족을 떠나 서울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2평 남짓한 작은 고시원이었다. 고시원 안의 방들은 창문이 없는 방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내 방에는 손바닥만 하고 세로로 길쭉한 창이 나 있었다. 그 창은 너무 작아서 다 열어도 바깥이 보이지 않았고, 바람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바깥의 색만은 어렴풋이 전달해 주었다. 낯선 방 안의 유일하게 빛이 나는 존재였다.


수능을 치르고 미대 입시 기간이 되면, 각 지방에서 아이들이 서울로 상경해 홍대 앞 미술학원 거리에 하나둘 모여든다. 미대 입시를 위해 서울로 올라온 나 역시 홍대 앞의 한 미술학원에서 약 3개월을 보내며,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가 다 되도록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다. 지방 아이들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낯선 곳에 정착한다는 것은 설레고도 힘들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그런 동질감으로 뭉친 지방 아이들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서로가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나는 그들과 함께 학원이 끝난 늦은 저녁부터 그림 스터디를 하게 되었다. 이 또한 내 방의 작은 창처럼 사소하지만 나름의 노력이었다. 하루 12시간의 학원 생활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늘 피곤함에 찌든 얼굴로 학원 근처 카페에 모였다. 말이 스터디였지만, 서로의 하루를 나누고 잠시 숨을 돌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자리는 매일 이른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피곤한 발을 이끌고 카페에 모였고,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은 무언가 달랐다.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이었고, 그다음 날은 휴일이었다. 마음은 느슨해졌고, 말은 길어졌다. 어느덧 새벽 5시. 카페에서 나올 무렵엔 아무도 피곤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빛은 반짝였고, 몸은 나른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아마도 그때 우리는 각자의 내면에서 조금씩 움트고 있는 무언가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어렸지만 단단했고, 설익은 마음은 뜨거웠다. 깜깜하고 적막한 도로 위로, 새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새하얀 도화지 위로 첫 발자국을 남기며 각자 흩어졌다.


다시금 작은 고시원으로 돌아온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설렘과 작은 흥분으로 요동치는 마음은, 결코 크리스마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에야 생각한다. 그 순간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밝게 빛났던 순간이었다는 것을. 낯선 도시 속 작은 방에서는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서서히 밝아오던 아침이 그저 형식적으로 달려 있던 작은 창을 통해 방 안으로 조금씩 번져 들어왔다. 새벽을 알리는 파란빛이, 마냥 어둡기만 하던 내 방을 서서히 파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전날 많이 내린 눈의 빛이었을까

어스름하게 밝아오던 하늘이었을까

아니면 간밤을 지켜낸 간판의 네온사인 불빛이었을까


작고 사소한 그 창은 답을 내게 알려주지 못했고, 내가 느낀 감정도 그때 당시엔 뭐라 정의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끔 새벽의 어스름한 파란빛을 보면 그날의 그때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러면 그 어릴 적 감정도 살며시 함께 고개를 든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그 감정을 ‘행복’이었다고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로는 가끔 행복이 그리워질 때면, 새벽의 파랑을 떠올린다. 작지만 하찮지 않았던 그때의 몸짓을 기억해 낸다. 무언가 대단하진 않지만, 나아갈 힘을 얻는다.

그 작은 파랑은 오늘도 나를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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