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서울의 첫 느낌은 차가운 파랑이었다.
그곳의 공기는 시리도록 차갑게 나에게 파고들었고, 마치 어둡고 짙은 색의 파랑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파랑의 온도는 나를 자꾸만 주저하게 만들었다.
나는 부모님의 내향적인 성격을 쏙 빼닮았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적부터 살던 동네와 그 반경을 벗어나려 한 적이 없다. 남들에게는 흔한 학창 시절의 무용담이나 소소한 일탈의 추억들이, 나에게는 유난히 낯설게 느껴진다. 하다못해 친구의 집에 놀러 가서 하룻밤 자고 온다거나, 함께 번화가에 놀러 간다거나 하는 사소한 기억조차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단조로움은 나에게 평안하고 일상적인 것 중 하나였다. 서울에서 홀로서기를 하며 내 생활에 변화가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미대 입시를 위해 가족을 떠나와 서울에 홀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한동안 내 생활 반경은 홍대 앞 미술거리의 몇 블록이 전부였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그림만 그렸고, 유명하다던 서울의 번화가 앞에서도 나는 학원과 숙소 사이만 오가며 지냈다. 사는 곳만 달라졌을 뿐,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몇 달의 시간이 흘러 실기시험 일정이 가까워졌다.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진 나에게 경계 밖으로 나아가야 할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가족과의 삶을 독립하며 앞으로는 모든 것을 혼자 해내는 것에 적응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매번 그 '혼자'라는 단어 앞에서 한 발 내딛기를 망설였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혼자 낙오된 무력한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주저하던 날은 다가왔다. 그 새벽은, 처음인 듯 맞이하는 서울의 겨울이었다. 코 끝까지 찡하니 아려오는 차가운 파랑이었다. 이른 아침 첫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내 옆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화구 가방을 든 손은 감각을 잃어가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찔렀다. 옆 사람의 따뜻한 숨결에서 피어나는 입김, 그 희미한 존재에 조금이나마 의지하려 노력했다. 결국, 나는 겁내기만 하던 그 차가움을 마주했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마주한 파랑은 차갑고 무섭기만 한 건 아니었다. 목적지로 인도할 버스에 올라타자 안도감이 몰려왔다. 얼어붙었던 손이 서서히 녹아내리며 혈색을 되찾듯, 나 역시 작은 한숨과 함께 조금씩 녹아내렸다. 몸은 여전히 떨렸다. 하지만 시험을 앞둔 탓인지 늘 다니던 길을 벗어나서인지, 나는 그 낯선 움직임 속에서 묘한 설렘을 느꼈다.
첫 차에 올라탄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자, 어둑하던 하늘이 서서히 밝은 파랑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날이 밝아오면서, 낯선 풍경들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갔다. 전날 내린 눈이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몇 시간의 시험이 끝나고 녹초가 되어 밖으로 나왔을 때, 해는 이미 하늘 높이 떠 있었다. 덕분에 새벽의 시린 겨울 냄새 대신, 녹아내린 눈으로 젖어버린 풀의 포근한 냄새가 공기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마냥 차갑기만 할 줄 알았는데, 그 안에 새로이 스며든 다른 온도의 파랑은 나에게 왠지 모를 기쁨도 가져다주었다.
내가 차가움이라 믿었던 파랑은 나에게 자신의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그것은 내가 그어놓은 경계 밖으로 첫 발을 내딛는 작은 용기가 되어주었다. 물론 여전히 나는 '경계선 안의 익숙함이 나쁘지는 않았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밖으로 나올 용기를 낸 덕분에 조금 더 빛나는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 작은 마음가짐의 변화는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나의 '혼자인 시간들'에 힘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서울은 더 이상 차갑지 않다.
오히려 파랑의 온도를 알게 해 준 첫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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