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의 온도(2) - 봄, 꽃잎의 중력

by 혜성
[꽃잎의 중력] 검은 펜, 오일 파스텔


벚꽃 잎이 봄비처럼 내리던 화창한 그날, 그 수많은 꽃잎들에 내 마음을 압도당했다.
봄이 되면 내 몸은 무언가에 짓눌린 듯 무거워진다. 땅이 나를 잡아당기는 건지, 하늘이 나를 누르는 건지.
내 첫사랑은 그렇게 무언가에 이끌리듯 시작되었다.


나는 사랑의 첫 시작에 대한 이유를 아직도 찾지 못했다. 평소와는 다름없는 하루였고, 평소와는 다름없는 그 사람이었다. 그저 다른 점이라면 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는 것뿐. 그저 하늘이 유독 파랗게 구름 한 점 없었고,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벚꽃 잎이 파란 하늘에서 내려앉고 있었다는 것뿐. 그렇게 맑은 파랑은 내 마음을 괜스레 뒤흔들어 놓았다.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이어진 마음은 내 의지로 결정할 수 없는 고장 난 핸들과 같았다. 외면하고 부정하다 결국 내 마음을 인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사랑에는 여전히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중심을 잃었다. 그래서인지 작은 돌부리에도 쉽게 걸려 넘어졌고, 자꾸만 무너져 내렸다.


초저녁의 하늘이 어스름하게 파란빛을 띠던 그날, 나는 완전히 내려앉았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게 느껴졌고, 몸은 부수적으로 그 아픔을 표현해 냈다. 하지만 그 몸부림은, 내 마음을 다 옮기기엔 너무 작고 나약했다. 어둑한 파랑이 방을 집어삼켰을 때, 내 마음도 함께 움츠러드는 밤이 되었다. 그 순간만큼은 온 세계가 나에게서 조용히 등을 돌리는 것 같았다. 늘 혼자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졌던 나에게 그날의 혼자라는 적막은 아주 무겁고 어두웠다. 다시는 내가 빛을 보지 못할 것 같단 생각이 들 만큼. 잔뜩 뿌옇게 흐려진 창문은 파랗게 내 마음을 가져갔다.


하지만 내 첫사랑은 안타깝게도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이미 무너져 내렸지만, 나는 쌓아 올리고 무너져 내리길 반복했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지는 끈을 붙잡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내 손에 들려 있던 끈은 시간이 흘러 서슬이 퍼런 쇠사슬이 되었지만, 가시 돋친 철의 표면이 내 손에 생채기를 내어도 주먹 쥔 손에 힘을 쉽사리 풀 수 없었다.


누군가는 사랑에 기한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내 생각엔 미련에는 기한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무언가를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지 않고 미련을 갖는 것이 나에게는 결국 무거운 마음이 되었다. 살랑살랑 내려앉던 작은 벚꽃 잎은 크고 무거운 바위가 되어 나를 짓눌렀다. 한낮의 화창한 파란 하늘이 초저녁의 어스름한 파란빛을 띠던 것처럼 나의 마음 또한 그렇게 변색되었다.


그렇게 내 첫사랑은 빛을 잃어갔다.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그 마음 이후로 사랑이라 느낄 법한 감정이 찾아오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사랑이 뭔지를 모르겠다. 무언가에 압도당할 듯 이끌리는 그 마음은 어쩌면 그때만 느낄 수 있었던 한 철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빠져나가는 내 마음의 빛을 어떻게든 끌어안으려 했던 그 몸부림이, 어쩌면 너무나도 아팠기에 강렬하게 남게 된 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보면

나는 가끔 봄 날의 따뜻하고도 짓눌리듯 압도당했던 내 첫 감정이 되살아난다.


하늘은 여전히 매년 봄이 되면 파랗게 빛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날처럼 새하얀 벚꽃잎에 가득히 짓눌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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