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은 울창한 나무와 이름 모를 풀들, 몇 개의 호수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곳은 다른 색의 물감으로 덧칠해졌다. 특히 이른 낮이나 늦은 밤, 사람들이 없는 학교를 거닐면 풀벌레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모든 계절을 품는 그곳이 너무나도 좋았지만, 나는 그 계절 중에 청량하고도 파란 ‘여름’을 가장 좋아했다.
새내기로 입학을 하자마자 나는 대학 앞에 방을 하나 구했다. 혼자서 지내는 방은 이제 2평 남짓한 고시원보다는 조금 더 커졌다. 그 작은 방은 잠깐 들르는 손님들로 이따금씩 가득 찼다가 곧 비어버리곤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그 손님들은 나에게 가족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나누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은 내향적인 나에게 먼저 손 내밀고 다가와준 친구들이었다. 처음엔 몇 명뿐이었지만, 점점 무리를 이루며 열 명 남짓의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각자가 서로 다른 함께였다. 함께하는 시간들은 한창때의 여고생보다도 시끄러웠고, 수많은 웃음꽃으로 가득 찼다. 작은 사진 한 장에도 몇 날 동안 웃음이 끊이질 않았던 날들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시끌벅적한 시간들도 적막함을 되찾을 때가 있다.
수도권에서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은 주말과 방학 때면 본가로 돌아갔다. 그럴 때마다 웃음이 가득하던 작은 방에는 고요함 만이 남았다. 하지만, 친구들과 달리 나에게 ‘집’은 자주 찾기엔 너무 먼 곳이었다. 어쩌면 그 때문에, 앞으로의 시간들 속 혼자만의 고요함에 하루빨리 익숙해지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새로운 ‘나만의 집’이라 부를만한 곳이 생겼다.
학기의 중간인 여름이 되면, 학교의 방학이 시작된다. 그러면 친구들을 비롯해 학교에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유독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마을에 위치한 학교인 이유도 있었다. 특히 방학땐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면 학교 근처는 매우 한적했다. 어쩌다 마주친 낯선 사람의 그림자가 그토록 반갑게 느껴졌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그 잔잔한 고요함은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다.
마음이 동해 산책을 나갔을 땐, 오롯이 풀벌레와 새소리만 들렸다. 학교 근처의 많은 나무들은 작은 바람에도 속삭였고, 여름의 짙은 파란 냄새를 풍겨댔다. 덥고 습한 바람 속에서도 그늘은 땀을 식혀주는 다른 온도를 조용히 건네주었다. 잔잔한 호수에는 이따금씩 작은 파장이 생겼고, 비릿하고도 파란 물 냄새를 전해주었다. 이른 새벽이나 점심시간, 어스름한 저녁의 여름은 각기 다른 모습들을 나에게 선물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이지만 또 다른 파랑과 함께였다.
경계의 바깥으로 나서기 무서워하던 나는, 점점 더 나만의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사람이든 장소든 감정이든, 나는 그렇게 조금씩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처음인 나에게 다가온 매 순간은 마치 첫사랑처럼 깊은 장면의 조각을 선물했다. ‘혼자’ 그리고 또 ‘함께’ 하는 시간들은 그렇게 나에게 또 다른 파랑의 온도를 느끼게 해 주었다.
다시금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된다.
익숙하던 얼굴들은 마치,
파란 수국처럼 활짝 피어 내게 찾아온다.
비어있던 나의 공간은 금세 가득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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