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뜨겁고 진득하던 살갗이, 살짝이 불어온 다른 온도를 접하는 순간을 사랑한다.
파란 하늘은 끝을 모르게 높아만 지고, 내 머리 위론 커다란 공간이 생긴다.
그러면 나도 하늘과 함께 높아지고 싶은 마음에 설렘과 기대를 안고 자꾸만 떠오른다.
한 달의 숫자가 두 자릿 수가 되면 천을 조금 더 덧댄 옷을 찾고, 한 겹 더 더해진 이불을 꺼낸다. 나는 무언가를 빼는 변화보다 무언가를 더해 준비하는 계절에 설렘을 느끼곤 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감정이 샘솟는다. 뜨거운 온도에 녹아내렸던 나는 다시 조금씩 굳히기에 들어간다. 그러면 굳히는 순간에 내가 처음 원하던 모양과는 다른 모양을 만들어내곤 하지만, 그 변화가 나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가져다준다.
반년 조금 넘게 지나가 버렸더라도 남은 몇 달만큼은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쩌면 하늘이 높아져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조금 더 넓어진 만큼, 내 마음에도 그 만한 공간의 틈이 생기는 건 아닐까 싶다. 이 시기가 찾아오면 나는 틈을 가득 채울 새로운 일들을 잔뜩 벌인다.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기도 하고, 공원이나 산을 찾아 참았던 산책을 하기도 한다. 미뤄두었던 친구와의 만남도 앞당기고, 못 본 척했던 집 안도 날을 잡고 한번 싹 쓸고 닦아준다. 괜스레 미리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며 캐럴을 듣기도 한다. 한층 어둑해진 출, 퇴근길에 스쳐오는 상쾌한 바람을 만나면 새로이 다가온 또 다른 파랑의 기척이 반가워진다. 사소하지만 그동안 잊고 있던 것들을 기억해 내어 슬며시 한쪽 주머니에 담아둔다.
내 마음의 틈은 입구가 좁더라도 꽤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그래서 이 계절이 오면 나는 비어 있는 공간을 다시금 채워 넣기에 여념이 없다. 잠깐의 녹아내림으로 탈락되었던 나의 것들을 다시 주워 담아 본다. 어쩌면 모두가 생각하는 완벽한 모양을 만들긴 어렵겠지만, 그렇게 계속해서 나는 빈 하늘을 채워 나간다.
이것저것 더하고 나면, 나는 겨울을 준비하듯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작은 다람쥐가 된 듯하다. 덕분에 또 다가올 차갑고 짙은 겨울에 맞설 수 있는 단단함을 되찾는다. 녹아버린 몸과 마음을 굳혀 새로움이 된다.
녹음이 하나씩 다른 색을 찾아 몸을 물들인다. 나 역시도 지나온 날을 되돌아보며 단단해진 표면을 여러 색으로 칠한다. ‘이번 해도 많은 것을 이루어 냈구나!’ 싶을 정도로 나는 매번 무언가를 그렇게 해댄다. 덕분에 알록달록 물든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비어 있는 공간은 담을 수 있는 주머니가 될 수도 있지만, 흐물거려 무언가를 담지 않으면 혼자 설 수 없을 때가 많다. 나 역시도 좁은 틈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쩌면 무언가를 더해가는 계절과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그 계절을 다시 마주할 때면, 매번 처음인 듯 설렘을 가득 안는다.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 ‘그만 좀 열심히 살아!’ 라며 핀잔 섞인 농담을 건넸다.
하지만 누군가는 나에게 ‘그럼에도 나는 너를 존경한다.’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 말은 내 좁은 틈을 가득히 채워주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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