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소한 파랑의 중심에서

30대의 파랑. 매일의 사소한 파랑으로 나를 물들이다

by 혜성
[사소한 파랑의 중심에서] 오일 파스텔



나에게 행복은 늘 파랑이었다. 한여름의 파랑과 한겨울의 파랑이 주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숨 막힐 듯이 더운 여름 공기 속에 바라는 겨울의 파랑같이, 코를 찌르는 추운 겨울 공기 속에 바라는 여름의 파랑같이.
나에게 행복은 계절의 파랑처럼 언제나 가까이 있지만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아주 늦은 저녁, 상사와 함께 퇴근 후 술을 한잔하고 지하철 막차에 올라탔다. 손잡이를 잡고 나란히 서 멍하니 바라보던 지하철의 창문에는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뜬금없이 물었다.


“너는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냐?” 어려운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답이 내 입에서 곧장 튀어나왔다.

“저는 ‘-1’도 ‘+1’도 아닌 ‘0’의 상태가 제 행복이라 생각해요.” 나에게 행복은 늘 그러했다.

때마침 휙휙 스쳐 가던 지하철 밖 풍경이 바뀌며 고요하고도 어두운 한강이 펼쳐졌다.


그때 이후로 나는 내가 툭 하고 내뱉은 행복의 정의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가끔 행복이 무엇인지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나는 늘 똑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누군가는 내 행복에 공감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 행복이 너무나도 슬프다고 했다. “‘0’이면 결국엔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냐”며 반문했다. 어쩌면 타인에게 나의 행복은 그런 존재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시절 나에게도, 한여름에 바라는 겨울의 파랑같이 행복은 가까워지기 어려운 것이었다.


내가 행복을 위해 무언가를 바랄 때는 늘 그것이 완성되지 못했다. 내 이상이 컸던 걸까, 욕심이 컸던 걸까. 결국은 충족되지 못한 마음이 마이너스로 돌아왔었다. 행복을 원할수록 더 불행해졌다.

늘 깨진 독처럼 채워 넣어도 하염없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나는 그 큰 구멍만 막으면 내 행복이 완성되는 줄로 알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쫓아 독의 구멍을 외면하고 일어서면 내 모든 게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고, 결국 그 구멍을 막고 앉아 있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이너스로 잃어버리지 않으려 버티는 게 나의 최소한의 행복이라 여겼다.


시간이 흘러 내가 혜성이 된 이후, 삶의 주체를 나 자신으로 바꾸며 많은 것이 변화했다. 예전의 나는 행복 그 자체에 집착했고, 그것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 쳤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행복’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춰 살아가고 있다. 이 변화를 통해 무언가를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행복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운동 후 물기 있는 살갗에 닿는 차가운 밤공기, 약간의 소음이 있는 카페에서 나는 고소한 커피 향과 함께 읽는 책, 발길 닿는 대로 떠난 여행에서 만난 새로운 풍경, 우연히 들른 독립 서점에서 누군가가 써 붙여 놓은 깨알 같은 쪽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부담 없이 즐기는 그 적막하지만 시끄러운 시간.


이 사소하지만 무거운 것들이 내게는 행복이다. 잃는 것이 없는 행복을 더 이상 ‘0’이라 부를 수 없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았으니 결국 ‘0’이 아니던가.’ 그렇게 나는 예전에 툭 내뱉었던 행복의 정의에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여본다.


여전히 나에게 행복은 파랑이다.

살갗이 따가워 오는 여름에는 청량하고 시원한 파랑을 즐기고, 손끝이 아려오는 겨울에는 건조하지만 차가운 그 파랑을 품는다. 멀리 있는 것을 보지 않고 내 곁의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한다. 꾸밈없는 내 매일 속에서 누군가는 단조롭고 지루한 삶이라 놀려댈 수 있겠지만, 나의 사소한 매일은 파랑으로 가득 차 있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

“너는 살아가는 게 행복하니?”

나는 꾸며진 대답 대신 파랗게 미소 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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