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 빛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다
혜성은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빛으로 길을 낸다.
그리고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천체이다.
나는 22살 때 이후로 쭉 일기를 써오고 있다. 일기를 쓰게 된 이유는 내 일상을 기록하고 보관하고자 했던 게 가장 크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일기를 쓴 이후로 다시금 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마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일기를 읽어보려 언젠가 한 번 시도해 본 적은 있지만, 좋았던 기억보다 부정적인 기억이 더 크게 와닿아 기분을 망쳐 놓았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결말을 아는 소설책을 읽는 기분과 비슷했달까.
시간이 지나 20대의 끝자락을 앞두고, 문득 내 청춘을 한번 되돌아보고 싶어졌다. 다시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아 한쪽 구석에 밀어둔 일기장을 담아둔 박스가 생각났다. 주말 하루 짬을 내어 먼지 쌓인 싸구려 박스에서 일기를 꺼내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아등바등 참 열심히도 살았다.’라는 속마음이 스며 나오며 괜히 과거의 나에게 미안하고 씁쓸해졌다. 일기 속은 수많은 꿈과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며 적은 글들로 가득했지만, 상상하던 미래의 모습이 현시점의 내 모습과는 비교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역시나 기분을 망쳤다며 일기를 덮었다.
얼마 후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이런 말을 우스갯소리로 주고받았다. “야, 우린 매번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 같은데 결과는 왜 이 모양이냐!” 당시에는 짧은 웃음을 스치고 떠났지만, 그 말이 참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항상 미래를 위한 최고의 선택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때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하며 후회하게 된다. 가장 빛나 보이는 것을 골라도, 그것은 항상 내가 기대한 것만큼 빛나지 않았다.
그리고 실망감을 안고, 나는 늘 그 선택을 후회했었다.
후회는 쓸데없는 미련만 남길뿐 아니라, 내게 있는 빛마저 모두 앗아갔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도 그 새로움이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지도 몰라 막막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나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이라던 ‘이름’을 바꿔보기로 했다. ‘동물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이름을 남긴다.’라는 속담이 괜히 있겠는가. 주말에 침대에 누워 과거와 현재의 괴리감 속에서 내가 했던 고민들을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문득, 빛나는 것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빛나면 되는 것 아니겠냐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혜성’으로 해야겠다.
문득 말을 내뱉고 보니,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이름이었다. 혜성은 그저 보잘것없는 돌덩이에 지나지 않지만, 스스로 빛을 내며 어둠 속에서 길을 만들어낸다. 내가 흘러온 삶과 비슷하단 생각에 더욱 확신이 들었다. 명확한 목표 없이 수면 위를 떠돌던 그때 말이다. 의외로 부모님께서도 흔쾌히 승낙해 주셨고, ‘혜성’이라는 이름이 나와 더 맞는 것 같다며 지지해 주셨다. 덕분에 나는 혜성이 되었다.
혜성이 되어 내 마음가짐이 달라진 탓인지, 투박한 돌덩이로 돌아간 나는 조금 더 능동적으로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스스로 빛날 수 있는 곳으로 이직했다. 내 인생에 없던 단어인 ‘운동’도 시작했다. 그리고 늘 생각만 해오던 새로운 분야에 대한 학업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게 물론 매우 고되었지만, 내가 인생에서 반드시 해보고 싶었던 것들에 20대의 마지막을 내던졌다. 그로써 도전하는 삶이 얼마나 나를 빛나게 하는지 깨달았다.
그저 ‘미래’라는 단어로 미뤄두지 않고, ‘현재’라는 밤하늘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 또한 혜성의 꼬리처럼 길게 이어져 함께 빛났다. 혜성은 평소 어두운 천체이지만,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더 밝아진다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가장 뜨거운 순간에 내가 가장 나답게 빛났던 것처럼 말이다.
나를 아낌없이 내던졌던 그때 덕분일까.
30대가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돌덩이에 불과하지만, 과거보다 조금은 더 빛난 혜성이 된 것 같다고 말하고 싶다.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더 밝아질 수 있도록, 나는 아직도 빛나는 태양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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