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장 해수욕장에서 찰랑찰랑 들이치는 파도에 발 끝을 살짝 담가 보았다.
용기를 내어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걸어갔더니, 이내 곧 파도가 물러나며 발가락 사이사이의 모래들을 함께 쓸어갔다.
하지만 그 파도는 내가 뒤 돌아 빠져나오려고 할수록 작은 모래 알갱이들과 함께 점점 내 발목을 끌어내렸다.
어릴 적부터 내향적이던 나의 성향은, 대학 생활을 하면서 외향형으로의 변화를 겪었다. 늘 동경하던 외향적인 모습을 위한 나름의 노력을 한 결과였다. 학교의 많은 활동에 직접 나서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지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노력한다고 해서 쉽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여러 이해관계 속 충돌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경험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여러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았고, 그럴수록 매번 타인의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졌다. 어쩌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CCTV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작은 스타트업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회사의 대표는 직원들이 자신의 뒷말을 하지 않을까 늘 의심했고, 우리 모두를 감시했다. 복층 공간에 있던 나는 그에게 마우스 클릭 소리가 조금이라도 들리지 않으면, 졸거나 업무를 하지 않고 놀고 있는 것이냐며 핀잔을 들었다. 그 작은 공간은 감옥 같았다. 사람과 공간에 통제받는다는 느낌이 나를 조용히 움켜쥐었다.
부산이 고향인 나는 일 년에 한, 두 번씩 고속버스를 타고 집으로 내려갔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버스를 탔지만, 나는 평소와 달랐다. 조용히 옥죄어오는 불안함, 달리는 버스 바깥으로 벗어날 수 없는 그 갑갑함이 나를 점점 짓눌렀다. 버스 안의 공간이 점점 좁아지며 나에게 다가오는 듯했다. 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가는 풍경이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고, 내 숨은 점점 가빠졌다. 작은 바늘구멍으로 숨을 쉬는 듯이 갑갑한 마음에 숨을 헐떡였다. 온몸을 뒤덮은 식은땀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나는 작은 발작을 일으켰다. 고속버스 좌석의 발을 놓는 틈새에 쪼그리고 앉아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옆 좌석 승객들의 우려 섞인 말은 귀에 웅웅 맴돌았다.
의사는 말했다. “어떤 통제되는 상황 속에 놓이게 되면 공황 장애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고속버스는 한 번 탑승하면 다음 휴게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내릴 수 없다. 장거리 자가용이나 비행기를 탑승하더라도 상황은 같다. 언제든 내가 통제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지하철이나 시내버스, 기차 등에서는 다행히도 괜찮았다. 하지만 장거리 이동은 불가능해졌다. 의사는 나의 자립심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통제된 상황에 처하면, 그 안에서 극심한 무력감을 느끼게 되고 이어서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고 했다. 밀물처럼 갑자기 들이닥친 감정의 파도는 나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첫 발작 이후, ‘그 상황이 또 오면 어쩌지.’ 하는 예기불안은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심할 때에는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도 쉽사리 탈 수 없었다. 내 감정은 매번 거칠고 파랗게 물결쳤다. 의사는 극복하려면 약을 먹고서라도 그 상황에 스스로 부딪혀서 불안감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심리적인 부분은 내가 한순간에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해서 단숨에 바뀌지 않았다. 나를 서서히 잠식시킨 감정의 파도는 쓸려가며 작은 모래알갱이들과 함께 조금씩 나를 앗아갔다. 불안함과 무력감이 나를 덮쳤다.
약을 먹으면 내가 발작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불안은 여전히 나와 함께한다. 백사장의 고운 모래 속에 박혀버린 발은 내가 물결을 헤치고 뭍으로 나가려 해도 자꾸만 더 깊숙이 나를 끌고 들어갔다. 의식하고 힘을 주면 줄수록 어쩌면 더욱 깊이. 그렇게 내가 공황장애와 함께한 시간은 이제 거진 10년에 가까워온다.
직접 맞서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몰려오는 두려움에 그 상황을 그저 피하고 싶어진다. 다른 편의 글들과는 달리, 파랑의 물결처럼 갑자기 들이닥친 이러한 힘든 감정을 나는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
나의 일부인 이것은, 매번 물결치는 바다로 자꾸만 나를 끌어당긴다.
아직도 매번 맞서기는 두렵고, 헤쳐가기에 나는 너무도 나약하다.
파도에 휩쓸리며 잠식되는 모래알들은 내 발을 자꾸만 붙잡지만,
오늘도 나는 뭍을 향해 용기를 내어 한 발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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