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먹왕 랄프2>는 전편이 존재하는 속편 영화다. 이 영화가 스토리상으로 전편과 밀접하게 이어지면서 진행되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전편의 스토리를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전편의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악역 생활에 염증을 느낀 랄프가 자신의 게임에서 이탈하게 됐고 바넬로피를 만나 프로그램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킹캔디라는 빌런을 무찔러 바넬로피와 슈가 레이싱 세계를 구해낸다는 스토리였다. 이 스토리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킹캔디라는 빌런의 존재인데 킹캔디는 본래 슈가 레이싱이 아닌 다른 게임에 속한 캐릭터로 자신의 게임이 아닌 다른 게임으로 이동해가면서 프로그램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악성코드, 오류 같은 존재다. 이쯤 되면 이상한 기시감이 생긴다. <주먹왕 랄프2>의 주인공 바넬로피는 전편 <주먹왕 랄프>의 빌런 킹캔디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속편 영화가 할 수 있는 가장 바보 같은 짓은 전편에서 중요하게 쌓아올린 가치는 계승하지 않고 껍데기만 계승하는 것이다. <주먹왕 랄프2>는 전편에서 치켜 세운 주어진 역할의 가치, 질서의 가치를 비웃듯 질서보다는 나의 행복, 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얼마나 값싼 환승이자 무책임한 속편인가.
"나 말고도 16명의 캐릭터가 있잖아". 인터넷 레이싱 게임에 빠진 바넬로피가 슈가 레이싱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하는 랄프에게 하는 대사다. 자타공인 슈가 레이싱 최고 인기 캐릭터인 바넬로피가 본인 때문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슈가 레이싱으로의 귀환에 대한 응답은 너무나 차갑고 무책임하다. 더 큰 문제는 바넬로피의 이런 무책임함을 성장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 영화의 태도다.
이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후반 랄프 바이러스와의 대화 장면이다. '진정한 우정은 친구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친구는 역설적이게도 친구이기 때문에 친구를 놓아줘야 한다'라는 그 자체로도 얕은 이 주제의식은 주인공 랄프의 입으로도 매우 가볍게 읊어진다. "친구를 보내주기 힘들 거야. 하지만 괜찮지? 그렇지?". 얕은 주제의식과 깃털처럼 가벼운 대사로 클라이맥스를 채운 영화는 좋은 영화라 보기 힘들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영화 최악의 장면은 이 장면이 아니다. 진짜 최악은 이 장면 바로 뒤에 이어지는 공주들의 랄프 구조 시퀀스다. 공주들의 구조 시퀀스가 최악인 이유는 이 시퀀스가 무책임한 바넬로피의 행동이 성장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등장한 공주 캐릭터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여성상에 기초한 수동적 여성 캐릭터들이다. '크고 힘 쎈 남자'에게 구원받던 수동적 여성들이 이번엔 반대로 자신들의 힘으로 '크고 힘 쎈 남자'를 위기에서 구해준다. 이는 분명 페미니즘 열풍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기존의 수동적 공주 캐릭터들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는 PC적 시대상에 대응한 연출이기도 하다. 여성이 남성을 구원한다는 서사에 불편함을 드러내는게 아니다. 사실 이 시퀀스의 액션 구성 자체는 기존 유명 캐릭터들의 특징들을 깔끔하게 조합한 귀여운 시퀀스다. 내가 불편한 건 이 귀여움으로 바넬로피의 무책임함을 비겁하게 덮고 있다는 점이다. 공주들은 바넬로피의 화신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처음에 이들은 서로 다른 인물들이었지만 '크고 힘 쎈 남자'가 자신들의 문제점을 해결해준다는 공통점을 찾은 순간, 공주들이 불편한 드레스에서 편한 셔츠로 환복 한 순간, 바넬로피가 자신의 꿈을 뮤지컬로 노래한 순간 이들은 동일시된다. 공주들이 드레스가 아닌 편한 셔츠를 입고 위기의 남성을 구하며 구조 순간엔 BGM이 깔린다. 이는 수동적 여성들의 성장이자 바넬로피의 독립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시퀀스다. 캐릭터의 무책임한 행동을 관객에게 설명하거나 설득하는게 아니라 귀엽고 눈이 즐거운 시퀀스로 현혹해 교묘하게 무마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예쁜게 최고' 라는 명제는 오늘의 시대상과 맞지 않는 것이 아니었나? 사실 최근 디즈니의 최대 문제점으로 대두되는 점이 과도한 PC 끼워 넣기다.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건 좋으나 최소한 자신이 뱉은 말의 앞뒤는 맞춰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그건 PC가 아니라 무책임한 싸구려 자위에 불과하니까.
<주먹왕 랄프2>는 우리의 세상이 인터넷에 둘러싸인 세상이라고 보고 있다. 한물간 노인이 동네에서 운영하는 오락실에도 인터넷이 침투할 정도니 이 시대는 가히 인터넷의 시대라 부르기 충분하다. 영화 중반, 무분별한 배너광고와 스팸으로 인한 불쾌함을 나타내는 장면, 랄프가 SNS 악플에 상처 받는 장면들이 나온다. 풍자라고 보기엔 너무 얕은 묘사에 불과하지만 인터넷 시대에 대한 이 영화의 태도는 엿볼 수 있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고 화려한 세상이지만 그늘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세상으로서의 인터넷. 인터넷 시대의 무책임함은 풍자하려고 하면서 자신의 영화도 무책임하게 만드는 디즈니가 정치적 올바름을 논하는 모순. 일단 좋은 말이니까 뱉고 보자는 무책임함이 인터넷 시대의 시대정신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