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이 종영했다. 13년 내내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지만 어쨌든 역대 최고 파급력을 지녔던 예능 프로그램이었다는 데에는 무도를 좋아하지 않았던 이들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현재까지도 완전폐지인가, 시즌제 돌입인가, 기존 맴버들의 거취는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결정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우리가 알던 무한도전은 끝났다.
무한도전을 무모한 도전 때부터 봐왔다. 정확히 언제 처음 봤고 어느 편을 처음 봤는가 같은 기억은 없다. 그냥 매번 하던 대로 주말 저녁에 TV를 틀었을 것이고 편하게 웃었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기억은 차승원이 게스트로 나와 연탄쇼 하는 걸 보고 박장대소했었고 중학생이었던 나는 무도의 원초적 웃음에 완전히 사로잡혔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무도는 본편은 못 봐도 재방송이나 다시 보기로 거의 한 회도 빠짐없이 챙겨봤다. 시기로 따지면 2005년부터 2014년 정도까지의 에피소드는 대부분 다 본 것 같다.
무도의 주 무기는 캐릭터쇼에 기반을 둔 자연스러운 웃음과 편안한 이미지였다. 초기 무도의 메인 컨셉이 '대한민국 평균 이하 남자들의 도전기' 이기도 했다. 스스로 평균 이하임을 자처하며 소와 줄다리기를 하고, 전철과 달리기를 하고, 목욕탕 물을 퍼나르고, 퀴즈쇼를 하다 어떤 맴버가 1등 사윗감일까 따위의 소소한 앙케이트로 웃음을 만들면서 차곡차곡 무도라는 브랜드를 만들어갔다. 야외에서 시작했다 스튜디오에서 자리를 잡은 무도는 다시 한 번 야외로 나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그 도전은 한국 예능계에 '리얼 버라이어티 붐'이라는 핵폭탄을 터트리고 대성공을 거둔다. 평균 이하를 자처하던 맴버들은 거물이 되었고 시도하는 모든 도전들은 도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성공이 보장되었다.
무도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곳을 원했다. 일반적인 예능 프로에선 시도조차 하기 힘든 각종 포멧들을 수 회에 걸쳐 연재하기 시작했고 이를 스스로 '장기 프로젝트'라 명하며 브랜드화 시켰다. 스포츠 댄스, 레슬링, 조정, 봅슬레이, 가요제 등등 수많은 장기 프로젝트들을 성공 시켰고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단순히 웃음을 넘어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느낄 수 있었던 긴 호흡의 감동 서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 영화의 '선웃음 후감동' 흥행 불패 공식이 예능으로 넘어온 순간이다. 영화에는 각본이 있지만 무도엔 각본이 없다(사실 있다). 연기를 하는 허구 인물의 서사와 친근한 이미지의 실존 인물의 서사는 몰입도 측면에서 그 격이 다르다. 함께 추억을 만드는 '착하지만 좀 모자란' 친구들의 여정은 시청자들의 충성도를 극대화 시켰고 사실상 위인이나 다름없는 '유느님'의 무도는 종교와도 같은 포지셔닝을 구축하게 된다.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에서 맨몸으로 수십 분 분량을 만들던 무도는 점점 판을 키워 갔다. 당대 최고 핫한 스타들을 게스트로 불러들이고 2년에 한 번씩 수만 명이 모이는 공연을 하며 소소한 주제의 앙케이트는 이제 수십만이 참여하는 대국민 투표가 됐다. 이때부터 무도는 단순히 웃음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그런데 이 목소리는 거물이 된 개그 캐릭터들, 무도 맴버들의 목소리가 아니다. 연출자 김태호 PD의 목소리다.
사실 이같이 예능에서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김태호의 시도는 무도 초창기 때부터 있었다. 다만 무도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된 이후부터 그 강도가 강해진 것뿐이다. 김태호가 어떤 성향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는가에 대해서는 따로 서술하지 않겠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무도를 본 적 없는 사람이거나 연출자 김태호 PD를 아예 모르는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원초적 웃음으로 신드롬을 만들어낸 예능이 정치색을 띠자 여기저기서 불평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숭배의 대상이 된 무도는 '혹평'이라는 이단을 용납하지 않는 불가침의 프로그램이다. 무도 옹호자들은 볼멘소리를 내는 '웃음 애호가'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내쫓아 버린다. '무도는 단순히 웃음만 쫓는 그런 예능이 아니야' (실제로 최근까지도 쉽게 볼 수 있는 반응이다) 라며. 웃음 그 이상을 원했던 연출가의 바람처럼 무도는 웃음을 포기하고 특정 성향의 목소리를, 그 성향의 지지자들을 택했고 쟁취했다. 김태호의 연출은 목적을 쟁취했으니 해피엔딩일까? 우리는 결론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무도는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했다.
무도 맴버들은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사람들이다. 그나마 박명수가 간혹 농담 반 소신 반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는 듯 보이나 이는 정치색을 드러낸다라기 보다 웃음을 위한 일종의 '드립'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태호는 정치적으로 침묵하길 원하는 이들을 데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느끼는 괴리감은 곧 배신감으로 이어졌다. 김태호의 목소리가 가지는 성향에 반대되는 성향을 가지는 시청자들이 더욱더 심하게 반발하게 됨은 당연한 결과다. 이런 이유 때문에 무도에 대한 개인의 감상평은 예능 프로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쉽게 정치 싸움으로 번진다. 정치 싸움은 정답이 없는 진흙탕 싸움이지만 우리는 누가 먼저 이 싸움을 걸어 왔는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게 연출자의 의도인데 어떻냐고? MBC는 정치적 중립을 위해 수차례 파업을 감행한 공영 방송국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란다.
성향에 대한 호불호를 제쳐 두고도 김태호의 '목소리 내기' 장기 프로젝트는 그 과정에서도 큰 문제점을 드러낸다. 옹호자들의 맹목적인 지지에 중독된 탓일까? 그는 작년 '국민의원' 특집에서도 자신의 목소리에 반대되는 세력의 참가를 용납하지 않았다. 이 선택이 비겁한 이유는 외형적으로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처럼 보수 진형 의원을 포함한 주요 5개 정당 의원들을 캐스팅했지만 실은 당만 보수 정당 일 뿐 (자유한국당에서 제명 당한 김현아 의원을 자유한국당 대표로 캐스팅했다) 알맹이는 자신의 정치 스탠스에 가까운 의원을 콕 집어 라인업을 짰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유한국당은 이를 문제 삼아 법원에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으나 선거 관련 방송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 김현아 의원은 당 대표가 아닌 전문가로서 출연했다는 점 등의 이유로 기각됐다. 이 기각 결정은 김현아 의원 개인의 방송 출연을 제한할 수 없고 무한도전 제작진의 프로그램 결정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결론이지 김태호 PD의 비겁함을 소멸 시켜주는 결정이 아니다.
무한도전 폐지가 결정되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태호 PD는 '솔직히 왜 이렇게 시청자들이 우리에게 엄격한지, 다른 예능과 같이 봐주지 않는지에 대해 서운한 적이 있었다'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맞는 말이다. 시청자들은 무도에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무도가 대성공을 거둔 이후부터 엄격해졌고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무도의 대성공 이후 모든 예능들에 그전엔 없던 이상한 잣대들을 예능에 들이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불편한 사람들, 소위 말하는 '불편충'의 세상이다. 이들이 '충'이라는 접미사를 달 정도로 위험한 이유는 이들은 자신의 개인적 불편함을 적극적으로 표출함을 넘어 그 불편함이 마치 모두가 느껴야 할 절대적 진리인 것처럼 강요하고 이들끼리 뭉쳐 이게 마치 사회적 합의가 끝난 절대다수의 결론인 것처럼 선동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들의 불편함엔 일관성도 없다.
굳이 무도에서의 예를 찾지 않아도 지금까지 수많은 예능, 드라마, 영화 등을 포함한 모든 미디어 프로그램에서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면 프로그램 게시판과 언론 댓글 창에 어떤 꼴이 나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게 진짜 절대다수의 여론이 아니라는 것은 무한도전의 폐지가 그 사실을 반증한다. 절대다수의 아우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프로그램이 여론의 혹평과 화제성 저하로 폐지를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무도의 '불편충' 관련 에피소드는 수 없이 많지만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바로 '홍철아 장가가자' 특집이다. 당시 노홍철은 무도 맴버 중 유일한 미혼자로 솔로 이미지를 활용한 특집을 진행 중이었으나 소개팅 상대의 외모를 따지고, 구체적인 나이 제한을 두는 (몇 살 이하였으면 좋겠다도 아닌 '자기와 나이 차이가 심하지 않게 몇 살 이상이었으면 좋겠다' 였다) 행동이 '여성을 상품화한다'라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 논란 덕분에 각종 포털 뉴스 댓글과 프로그램 게시판은 항의로 도배가 되었고 무도 제작진은 후 편 녹화분을 폐기, 유재석이 곤장을 맞는 퍼포먼스를 내보내며 사과 방송을 했다. 이 논란 자체만 놓고 봐도 이해가 안가지만 홈쇼핑 포맷을 이용해 무도 맴버들을 대놓고 상품화했던 '무한도전 품절남' 특집이 논란은커녕 호평을 얻고 넘어갔던 것을 보면 '불편충'들의 불편함에는 일관성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도는 예능의 재미를 반감시키며 일관성도 없고 목소리만 크지 절대다수도 아닌 이 '불편충'들을 끌어안고 가기로 한다. 곤장 말고도 수많은 사과 방송과 유재석의 습관과도 같은 사과 멘트들이 무도가 '불편충'들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로 인해 당연히 '웃음 애호가'들은 무도를 전부 떠나게 됐고 의리로 무도를 보던 시청자들도 이들의 끝을 모르는 불편함에 질려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한 위기의식은 지켜보는 시청자 뿐만 아니라 무도 제작진 내부에서도 분명 인지하고 있었다. 연초나 연말에 결산 형식으로 연 간 무한도전의 성과나 앞으로의 방향성 등을 논하는 특집들에서 '무도 위기설'로 수 없이 제기되었던 안건이기 때문이다. 정형돈이 '선택 2014' 특집에서 남긴 '요즘 무한도전은 너무 무겁다, 웃음에 대한 원초적 접근 보다 매 회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는 코멘트는 4년 뒤인 현재 무도 폐지 이후에 봐도 굉장히 통찰력 있는 의견이었다.
김태호 PD의 인터뷰를 되새겨 보자. '솔직히 왜 이렇게 시청자들이 우리에게 엄격한지, 다른 예능과 같이 봐주지 않는지에 대해 서운한 적이 있었다'. 무도에 요구되는 유난스러운 엄격함은 무도 제작진이 스스로 채운 족쇄다. 노홍철에 대한 말도 안 되는 논란 제기에 녹화분을 폐기하고 사과방송을 한 건 무도 제작진의 판단이었다. 초대형 콘서트인 슈퍼7의 티켓 유료 결정에 대한 항의 때문에 콘서트를 엎어버린 건 무도 제작진의 판단이었다. 각종 사회 참여, 역사의식 고취, 정치적 발언, 비인기 종목에 대한 관심 촉구 등 웃음과는 상관이 없는 공익성 짙은 다큐멘터리 특집들을 만든 것은 무도 제작진의 판단이었다. 이로 인한 대중의 호응과 관심으로 무한도전은 '재미가 없어도 의리로 보는 프로그램' 으로서의 이득을 톡톡히 봤다. 역대 그 어떤 예능도 프라임 시간대 (주말 저녁 시간대는 예능 프로가 차지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대이다)를 13년간 차지하면서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7주간 휴식을 취하는 특혜를 누린 역사가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린 예능인데 서운하다? 무도를 수년간 애정 있게 봐온 시청자로서 나야말로 서운하다.
영화나 드라마와 다르게 예능의 결말은 항상 몰락이다. 그 이유가 시청률 저조이건, 사건사고로 인한 논란이건, 화제성 저하로 인한 새 프로 개편이건 몰락의 결말을 맞는 건 모든 예능프로그램의 숙명이다. 무도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무도가 얼마나 재미있었나, 어떤 추억을 만들어주었나와 상관없이 무도도 몰락으로 인한 폐지를 피할 순 없었다. 하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전설의 예능답게 무도는 몰락하면서도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예능은 예능다워야 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