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일은 관심없겠지만....
Albin Berlin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최근 국내 주식시장의 흐름은 주로 BBIG 라 불리는 바이오, 배터리, 인터넷, 게임 종목들이 장을 주도하고, 반도체를 비롯한 테크 기업들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현상은 취업시장의 선호도로 확장되는 경향이 있는데, 주식시장에서 사랑받는다는 것은 기업들의 실적이 좋거나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것이므로, 가성비가 높은 일자리, 즉 같은 시간을 일해도 연봉이 높고 복지가 좋으며 커리어 성장까지 챙길 수 있는 곳을 찾는 취준 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배를 짓는 조선업도 주식시장과 취업시장에서 많은 관심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2000년대 중반, 전 세계 해운시장의 선박교체주기가 도래하면서, 배를 운영하며 돈을 벌던 선사들은 자기 배를 먼저 지어달라고 (약간 과장하자면) 돈을 싸 들고 와서 줄을 서기도 했다. 그 당시를 회상해 보면, 우수한 품질로 전 세계 시장을 휘어잡고 있던 국내 조선사들은 3년 치 이상의 일감 확보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세계 선박 수주잔량 순위 10개 기업 중 7~8개가 국내 기업일 정도였으니, 주식시장과 취업시장에서도 엄청난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사가 잘 되는 곳에는 상인들이 몰리는 법. 정부를 등에 업은 대형 중국 조선소들의 공격적인 저가 공세로 배 짓는 시장가격을 확 낮추는 바람에 국내 조선소들의 수익률은 하락할 수밖에 없었고, 설상가상 2009년 미국 발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큰돈이 들어가는 배를 짓는 시장이 위축되면서 무리한 확장을 했던 국내 기업들을 비롯한 조선 업체들은 뼈를 깎는 고통의 시기를 지내왔다. 환경규제 등의 호재를 만나 다소 부활의 조짐이 보이기는 하지만, 이미 기술격차를 많이 좁혀놓은 중국과의 경쟁으로 인해 예전과 같은 명성을 되찾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힘든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해운 시장 자체는 오히려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영국의 해운 전문 리서치 기관인 클락슨사에 따르면 배를 이용한 물류랑은 매년 10% 안팎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배를 이용한 물류 이동은 전체 국제물류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그중 철광석, 원유, 구리 등과 같은 원자재는 100% 배를 이용한다. 이런 흐름은 바다가 있고, 국가 간의 교역이 존재하는 한 쉽게 무너지기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를 짓는 산업은 앞으로도 지속 성장이 가능하고 많은 기회가 있는 분야라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다. 문제는 출혈 경쟁으로 인해 많은 수익을 남기지 못하고, AI와 자율 주행기술 등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여전히 전통적인 제조업으로 비치고 있으며, 노동집약적 특성으로 인해 안전하지 못한 산업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뒤집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배를 짓는 일, 조선(造船 지을 조 배 선)은 영어로도 shipbuilding이다. 배를 ‘만든다’라고 하지 않고 ‘짓는다’라고 동서양 모두 통일된 표현을 쓰는 것은, 배를 빌딩과 비슷하다고 보는 생각이 담겨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만들어지는’ 제품들과는 확실히 다른 복잡하고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약 3만여 개의 수많은 부품이 들어가는 자동차도 ‘짓는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장인의 한 땀 한 땀 엄청난 정성이 들어가는 스위스 시계조차도 ‘짓는다’는 표현은 과분하다. 용어에 담긴 것과 같은 그 특별한 무엇 때문에 다른 산업과는 달리 아무나 쉽게 이 산업에 뛰어들지 못한다. 전 세계 200여 개의 나라 중에 대형 선박 건조 시장은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이 시장을 거의 휩쓸다시피 하고 있다. 앞서 해운 시장이 성장하면 배를 짓는 산업 또한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중에서도 1등 조선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조선업의 인기가 식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를 알면 옛 명성을 돼 찾을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배짓는 회사가 수 천억 원에 달하는 규모의 대형 선박 여러 척을 수주했다는 소식에 주가가 뛰고, 유가가 떨어져서 조선소가 힘들어질 거라는 주식시장의 단순논리로만 조선산업을 바라보는 수준으로는 우리나라 조선업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수 천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배를 짓기 위해 들이는 노력들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이해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사람들이 부대끼는 산업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수많은 상황들과 맥락들이 그 산업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최근 배를 만드는 산업은 큰 수익을 남기지는 못하고 있지만, 어쨌든 정주영 회장님이 500원짜리 지폐로 차관을 받아와 울산 앞바다에 조선소를 세운 이후로 외화벌이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고용시장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조선 산업은 반드시 지켜내야 할 산업이다. 앞으로 이야기할 조선업의 특성 때문에 조선소가 위치한 도시 전체가 연관 산업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역의 조선소 한두 개만 무너져도 도시 전체 경제가 무너져 수년 동안 회생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는데, 군산과 창원이 안타깝게도 그런 예에 속한다. 역사적으로 배 짓는 산업은 꾸준히 성장해 왔다. 다만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기존의 강자들, 유럽은 일본에, 일본은 한국에 그 황금 어장을 넘겨줘야 했다. 많은 평론가들이 한국 역시 중국에 자리를 넘겨주는 역사를 되풀이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앞으로 이야기하겠지만, 그런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중국의 낮은 인건비 때문만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제대로 된 처방과 함께, 미래를 잘 설계하고 열심히 준비해 나가야만 이 조선업은 다시 한번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배를 만드는 산업을 잘 이해하고, 앞으로 지속 성장시켜나가기 위한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특별하고도 복잡한 배 짓는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