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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경화 Mar 04. 2024

아지랑이 같은 글

신작로를 달려온 버스를 내리면 학교로 향한 버드나무 길이 있었다.



길 입구에는 작은 문방구가 있었는데 문방구를 들리고 싶은 마음을 참고 우리 동네 아이들은 학교로 내달렸다. 넓은 운동장을 지나 교실로 들어서면 격자창문 너머로 살구꽃이 하얗게 피고 있었다. 



학교 뒤뜰엔 공작이랑 칠면조가 꼬리를 펴기도 하고 꾸루루루 울기도 했다. 우사에서는 젖소를 키웠는데, 젖을 짜서 급식으로 우유가 나오기도 했다. 


동네 별로 주번을 하곤 했는데, 주번일 때는 삼발이 리어카를 밀며 꽃밭이랑 배추밭을 쏘다녔다. 

학교 뒷산의 살구를 따서 살구잼 만들기 실습을 하기도 했고,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다가 바람에 날릴 때는 도랑에 가득한 살구꽃잎을 모아 눈처럼 뿌리기도 했다. 봄이면 팬지꽃을 심었고 여름이면 다알리아 꽃을 꺾어 선생님 책상에 놓기도 했었지... 아마도. 



4학년 때 시내 학교에서 선생님 한 분이 전근을 오셨다. 


선생님은 아이 몇을 데리고 시내의 백일장을 다니시곤 했다. 글이란 것을 방학일기 정도밖에 써보지 못한 시골 아이는 일이 매우 겁나지만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원고지 쓰는 법을 처음 배우기도 하고, 선생님이 주시는 책을 밤을 새우다시피 읽기도 했다. 급식실 옆에 도서관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내게 도서관 열쇠를 주셨다. 언제든 가서 책을 읽으라면서. 


수업이 끝나고 늦은 오후 책상 그림자가 누울 때까지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소공녀, 소공자, 홍당무, 하이디, 톰소여의 모험, 비밀의 화원....  들의 책장을 넘기던 감촉이 아직도 손끝에 남은 듯하다. 


오래전 다녔던 내 초등학교에 대한 기억은 하얗고 노랗고 초록하고 핑크색이다. 

그때가 그렇게 아름다웠다는 것을 다 커서야 알았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백일장을 가고 합창대회를 가던 그 어릴 적 기억이 자꾸 글을 쓰고 싶게 한다. 



나에게 글쓰기는 아지랑이 같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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