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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경화 Mar 05. 2024

그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

쫌 웃긴 우리집

무료한 겨울 일요일이었다.


엄마가 말했다. 

"돈이 없어서 놀러 안 나가니? 용돈 줄까? 너도 남들처럼 놀러도 가고 그래야지."

엄마도 참 웃긴다. 월급을 몽땅 엄마에게 드리는데, 선심 쓰듯 용돈을 말한다. 실상은 내 돈인데. 

아빠가 안 계신 집안의 장녀는 남들처럼 하고 싶은 것을 하기에는 책임감이 너무 크다.  


작은 창문으로 겨울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지점에 발령받아 온 신입직원이었는데 혹시 연극을 보지 않겠냐고 했다.

망설임 없이 예스라고 했다. 엄마의 잔소리와 걱정 어린 눈에서 도망쳐야 했다.  



시청 앞에 있던, 

그 시절 춘천에서 가장 괜찮았던 공연장인 문화예술회관이었을 거다. 

'오장군의 발톱' 특이한 제목이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내용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연극이 끝나고 키 큰 플라타너스 나무 길을 맹숭맹숭 걸어 내려왔다. 

회사 골목에 있던 닭 한 마리 식당에서 백숙 반마리와 칼국수를 먹었다. 


그가 나를 집까지 바래다줬던가 조차도 기억이 희미하다. 

닭칼국수를 하시던 사장님은 지금은 소양댐 아래서 큰 닭갈비집을 기업처럼 운영하신다. 




"내가 위문편지를 읽을 때 당신은 초등학교 졸업이나 했나?" 하며 웃는 남자. 

여섯 살이나 많고, 고지식한 경상도 시골 사람이고, 대한민국의 장교였던 사람이랑 올 겨울이면 함께 산 세월이 서른세 해가 된다. 


세월은 용기와 결단력을 시험한다고 한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세상에 없던 용기를 장착하고 어쩌면 실속 없는 결단을 하며 쫌 웃기게 살 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때 그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내 삶이 좀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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