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울부짖음 같았다. 어릴 때 교회에 갈 때마다 지나가야 했던 양계장에서 칼 아래에 놓인 닭의 비명, 혹은 먹을 것 좀 얻어먹으려고 사람들 사이를 기웃거리다가 애먼 발길질에 얻어맞던 개의 비명. 내가 내던 소리도 그 짐승들과 다를 바 없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언어를 잃은 것 같았고 비명만 질러대는데, 동시에 그런 내가 생경하다고 느꼈다. 말하자면, 한순간에 짐승같이 울부짖는 나와 그걸 호기심으로 관찰하는 나로 분리되었다. 공포에 질려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나를 지켜보던 할머니가 애원하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애가 뒤로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그때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기를 그만두었다. 그 후 내가 그 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어찌어찌 그 밤을 지나쳐 다음 날을 맞이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건 언어를 잃은 짐승의 소리를 내던 나와 그런 나를 관찰하던 나로 분리되었던 느낌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빈도와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순간을 평생 기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들었다.
이와 같은 강렬한 사건을 '블랙스완'이라 할 수 있다.
1697년 영국의 자연학자인 존 라삼이 흑조(Black Swan)를 발견하면서 사람들에게 주었던 충격. 그 이후 최근에 와서는 투자 전문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1987년 블랙먼데이, 2001년도에 발생한 911 테러,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설명하기 위해 '블랙스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블랙스완은 그 사건이 발생하기 전의 경험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극단적으로 예외적이어서 발생 가능성이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뜻한다.
나는 블랙스완을 이와 같은 사회적 사건이 아니라, 개인 내적인 사건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발생하면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하는 사건. 쉬운 예로, 트라우마적 사건을 얘기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삶에서 예기치 않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비극이 발생해, 그 이후로는 그 사건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하면서 온통 그 사람을 지배하는 사건.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트라우마적 사건이 아니라 하더라도 나를 변화시키는 사건은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일 년 전, 처음 블랙스완 개념을 적용해서 워크숍을 기획했을 때와는 다르게, 약간 느슨한 의미로 블랙스완을 내 글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블랙스완은 그 사건이 발생하기 전의 경험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극단적으로 예외적이어서 발생 가능성이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뜻한다.
영화 '블랙스완'으로 주연배우였던 나탈리 포트만은 83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뉴욕 발레단의 퀸이 되기 위해 순수한 백조와 욕망의 흑조를 오가며 완벽하게 연기하려던 극 중 인물인 니나는 자신의 그림자에게 점차 잠식당하며 자아가 분열되고 만다. 나탈리 포트만은 니나가 경험하는 내면의 갈등과 혼란스러움, 폭발을 매력적으로 그렸다. 이 영화에서 흑조는 융의 그림자 이론과도 맥을 같이 한다.
살아있는 모든 이에게 존재하는 그림자는, 내가 추구하는 사회적 페르소나와 다르게 '내가 외면한 나의 모습'이다. 내 안의 그림자를 억누르기만 한다면, 그림자의 힘은 더욱 강하게 나를 잠식한다. 우울이 될 수도 있고, 불안이 될 수도 있다. 강박이나 공황장애로 극심한 고통을 초래할 수도 있다. 융은 내면의 그림자 존재를 인정하는 것, 다독여주는 것이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 필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내 안의 그림자-흑조를 인정하는 과정으로도 블랙스완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이에게 존재하는 그림자는, 내가 추구하는 사회적 페르소나와 다르게 '내가 외면한 나의 모습'이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하는 강렬한 사건
내가 외면하고 싶은 내 그림자-어두운 욕망, 열등감, 질투 등의 추악한 감정 혹은, 사건
짐승처럼 울부짖었던 때는 중학생이었던 시절로 기억한다. 대학생이었던 오빠들이 집에 있지 않았던 그 순간, 일이 벌어졌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아버지에게는 별 영향이 없었던 그 사건은 이후 나에게 엄청난 부피와 크기를 가진 눈물의 무게로 다가왔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 짓밟히는 장면을 목격한 나는, 그게 나의 소중한 사람들 사이의 일이기 때문에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내가 짓밟히는 것 같은 아픔을 지속적으로 느꼈다. 그 일에 대해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제 내가 유일한 목격자가 되었다.
앞으로 내가 쓰게 될 글은 울부짖던 나와 그것을 바라보던 나의 시점을 오갈 것이다. 나에 대해서 관찰자의 시점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오만할 수도, 아니면, 지나치게 겸손할지도 모르지만, 심리학자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내 삶을 바라보는 이 이야기를 통해 많은 분들이 내 시선을 잠시 엿볼 수 있길 바란다. 말하자면, 심리학 에세이?
(엄밀한 의미에서 나는 현재 심리학계에서 연구활동을 지속하고 있지도 않은 데다가 박사 학위를 받은 것도 아니어서 '심리학자'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여기에서 심리학자는 심리학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 정도의 의미로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델뵈프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심리학자는 어둠 속의 문제에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믿으면, 자신의 약점까지도 고백해야 한다>.
-꿈의 해석, 프로이트 전집 4
이 글을 더 읽고 싶은 분은 시중에 출간된 [불안이 젖은 옷처럼 달라붙어 있을 때]를 찾아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