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이상해. 병원 가야 할 것 같아."
처음엔 피곤해서 눈에 경련이 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꺼풀에 힘을 주고 감아보려 해도 눈이 감기지 않았다. 그다음엔 목이었다. 목이 점점 뻣뻣해지는데, 눈이 그랬을 때와는 달리 아파오기 시작했다. 목 근육에 쥐가 난 건가 싶어서 목 근육을 풀기 위해 좌우로 움직이려 했지만, 내 뜻대로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심부름으로 슈퍼에 가던 길이었는데, 신호등 앞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처음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스트레칭하듯이 가볍게 움직여보라고 했지만, 나는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날카롭게 후비는 통증이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 말도 조금씩 어눌해지고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집 근처 동네병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목이 뒤로 꺾이면서 숨을 쉬지 못하고 복도에 쓰러졌다. 어머니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나는 다시 숨을 쉬게 되었지만, 목은 뒤로 한껏 꺾여 있었다. 산소호흡기를 쓰고 누워있었는데, 동네 의사는 근처 고대 구로병원 응급실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쯤엔 내 입은 좌우로 틀어지고 있었다. 눈은 뜬 채로 고개는 꺾어져 턱은 틀어져 있어 나는 입에서 흐르는 침도 어쩌지 못했다. 응급실 침대에 있었지만 목이 틀어져 있어 제대로 누워있을 수도 없었고, 의사 표현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목에서 팔, 손 일부에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단 30분 만에 나는 내 몸속에 갇히게 되었다.
CT나 엑스레이 상에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뇌에도 이상이 없었다.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증상은 또렷했다. 응급실에서의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나를 장애인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우연히 어머니와 나를 발견하고는 '어린애가 풍이 온 거 같다'라고 했다. 나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측은하면서도 재미있는 일을 발견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타인의 불행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나는 화가 나서 어머님의 손을 꽉 잡고 신경질적인 소리를 냈다. 입이 뒤틀려 말을 할 수 없어, 기이한 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어머, 얘가 왜 이러지?"
어머니는 난처해하며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무례한 아주머니에게 화를 전달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내 정신은 몸이 뒤틀리기 전과 마찬가지로 온전한데 의사표현 하나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 나는 내 몸속에 갇혀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달라진 시선에 더 고통스러웠다.
"똑똑하던 애가 순식간에 이렇게 됐네. 풍이면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할 텐데, 불쌍해서 어쩌냐."
혀를 차면서 이웃집 아주머니는 사라졌다.
1시 정도에 응급실에 들어가서 밤이 되어서 벗어났다. 강력한 안정제를 맞았는지, 난 어느 순간부터 약에 취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간간히 눈을 뜨곤 했는데,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고 있었고, 그다음엔 집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 내 몸은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나는 다음 날 교회에 갔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시작됐다. 그 공포는 내가 나에게서 분리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하나라고 생각해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쪼개지고 분리될 것 같았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 세상을 바라보는 내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수도 있었다. 낮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냈지만, 밤이 되면 자다가 그대로 또 숨을 못 쉬고 죽을까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땐 낮이어서 내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지만, 만약 밤이라면? 공포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는 날들이 늘어났다. 그러다가 지친 후에 찾아오는 엄청난 공허감. 언젠가 어디서 맞이할지 모르는 미지의 죽음이 두려웠다. 나는 조금씩 부서지고 있는데, 어머니는 외면하고 싶어 했고, 아버지는 관심이 없었다.
문틈으로 술 취한 아버지가 "나를 갖다 버렸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때 벌써 고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버리기엔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나는 집을 곧 벗어나고 말 거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자마자 모두의 반대 속에, 반대를 하든 말든 상관도 안 했지만, 나는 집을 벗어나 살았다. 그즈음에는 낮에도 숨을 못 쉴 정도의 불안발작이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한 번에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중도에 몇 번씩 내려야겠다. 그래도 끝까지 가지 않은 적은 없었다. 학교를 갈 때나 약속 장소에 가기 위해 나설 때는 발작이 일어나서 지체되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원래 소요되는 시간보다 이르게 나왔다.
그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집을 떠나 혼자 살기에도, 공부하기에도 벅찬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무엇보다 제 발로 계획적으로 가족을 벗어났음에도 버림받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람들과 만나지 않았고, 친구를 사귈 정도의 심적인 여유도 갖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간에 혼자였고, 혼자 있는 게 고통스럽게도 당연하게 여겼다. 가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날이 선 말을 한다거나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하며 울고 있는 친구에게서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왜 내 앞에서 울고 있는 건지 짜증이 날 뻔했다. 그런 나를 발견하고 한편으로는 놀랐다. 나는 이제 마음이 경직되면서 고장 나고 있었다. 슬픈 영화나 잔인한 연쇄살인마 영화를 보아도 아무렇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무감정, 흥미나 즐거움의 상실은 우울장애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그리고 나는 과도한 긴장과 불안감을 느끼는 불안장애까지 함께 해서 우울과 불안으로 이어지는 무한궤도에 빠져든 것 같았다. 변하고 싶다는 마음과 회복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이 동시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