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_눈물의 의미

by 하이디어

전쟁 가운데에서 혼자가 된 아이는 상처를 입은 채 도망 가다가 자신에게 총을 겨눈 군인들 앞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각성하게 된다. 그날이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날이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두려움만으로 단숨에 군인들을 일제히 죽였다. 공간 이동이나 사람을 들어 올리거나 때로는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사체스'라고 불린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아이, 시온은 사체스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능력을 가진, 보기 드문 사체스였다.


처벌을 받지 않는 대신에 보호 대상자가 된 시온은, '뷔다'라고 불리는 일종의 양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맡은 라즈로를 만나, 처음으로 평범한 삶을 살게 된다.


"나는 이것을 게임이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어차피 너와 나는 친 부자지간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게임인 거야. 한번 해볼래?"


첫 만남에서부터 악수를 거부하며 온몸으로 가시를 세우는 시온에게 라즈로는 억지로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함께 책도 읽고 밤에는 같은 집에서 자고. 아침에는 함께 아침밥을 먹고."


시온은 그렇게 라즈로와 함께 살게 된다. ('캬'라는 엄청나게 크고 순하면서 영리한 고양이도 함께 산다.)


어느 날, 학교에서 시온이 어떤 아이와 주먹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 아이의 엄마는 라즈로에게 와서 뷔다 역할을 계속하고 싶으면, 교육을 똑바로 시키라고 엄포를 놓고 간다. 집안 곳곳을 시온 이름을 부르며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라즈로에게 혼날까 봐 캬 뒤에 숨었다가 들킨 시온은 캬의 뒤에서 나오며 미소를 짓고 있는 라즈로에게 말한다.


"화 안 내요?"


"화 안 내. 아직 우린 그렇게까지 친한 부자지간이 아니잖아. 물론 폭력을 휘두른 건 나빠. 하지만 너도 그전에 전쟁 고아라고 놀림을 당했잖니.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선 양부모로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 괜찮겠니?"


라즈로는 시온에게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 시온을 다정하게 안아주며 볼에 입을 맞췄다. 시온은 소스라치게 놀라 물러선다.


"뭐 하는 거예요, 라즈로!"


"뭐라니…아버지 흉내를 내는 거야."


어린아이 같지 않게 시종일관 강하고 날이 선 모습이었던 시온은 자신도 모르게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눈물이 나와요."


"그건 아마 네가 실감했기 때문일 거야. 이런 경험은 네게는 처음이지만, 네가 쓰러뜨린 아이에게는 태어났을 때부터 당연한 일이야. 네게는 첫 뽀뽀였지만, 다른 아이들은 벌써 몇만 번이나 받았지. 그 차이가 '고아'라는 것을 비로소 알고 너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겨우… '쓸쓸함'을 느낀 거란다. 상당히 인간다운 감정이지."


그리고 라즈로는 말을 이어간다.


"분하니?"


시온은 울면서 말없이 라즈로를 바라본다.


"분하다면 앞으로 절대로 불행해져선 안 되는 거야. 절대로. 지금은 불행할지 몰라도 앞으로의 일을 알 수 없는 거야. 너는 다행히도 나라에서 재능을 인정해주었다. 네가 조금씩 그 불행에서 탈피해나가면 이번에는 그때마다 칭찬의 뽀뽀를 상으로 해줄게. '참 잘했다'고. 내게 있어서의 상은, 그때의 네 웃는 얼굴이야.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점점 친부자지간처럼 되는 거지. 어때, 즐겁지 않니?"


그리고 얼마 안 가, 시온은 라즈로가 캬와 함께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비보를 듣게 된다. 시온은 이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하지만, 다시금 절망하고 만다.


"또 혼자가 됐어."




mblogthumb1.phinf.naver.net.jpeg 나의 지구를 지켜줘, 라즈로와 캬


『나의 지구를 지켜줘』만화의 주인공 시온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대하는 시온에게 필요한 것은 볼 위에 닿는 간지러운 '뽀뽀'였다는 것이 드러나는 이 대목을 좋아한다. 처음 느끼는 따뜻함에 우는 시온, 그리고 라즈로가 시온에게 '분한다면 앞으로 절대로 불행해져선 안된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좋았다. 나의 분한 눈물에 라즈로가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시온이었다.


불안발작은 계속되었다. 지하철에서 숨을 못 쉴 때가 반복되었고, 그럴 때마다 비닐봉지를 꺼내서 입에 대거나 비닐봉지가 없으면 두 손을 모아서 숨을 쉬었다.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근육 경직과 함께 과호흡 증세가 있는 것 같아 받았던 처치였다. 그러나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빈도수가 증가하고 무엇보다 몇 년이나 그렇게 버텨보았는데도 나아지질 않았다. 밤이 되면 혼자서 공포에 떨면서 잠을 자지 못했다. 아침이 되어서야 살았다는 안도감과 밀려오는 피로감으로 조금 잠이 들기도 했는데, 오래가진 않았다.


온 하루를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압도된 뒤로, 냉정하게도 그 고통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며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병원을 찾게 되었다. 이미 여러 번, 정신과에서 치료받은 경험이 있었지만, 이전에 내가 병원에서 경험했던 건 모멸감이었다. 그래서 불안발작으로 낮에는 숨을 못 쉬고, 밤에는 공포와 비명으로 날을 새우면서도 병원을 찾지 않았던 것이다.


난 증상(symptom)이 아냐, 사람(person)이야.


다시 병원을 찾으면서 증상만 개선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인지적인 문제보다는 신경전달물질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기분이나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노력에는 학교 상담센터에서 받은 전문 상담도 포함이다.)


병원은 다행히 이전의 나쁜 기억을 되새기게 하지 않았다. 나에게 맞는 약을 찾는 기간이 약 3개월 정도였고, 그 후로 휴지기와 재발을 반복하면서 3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학부에서 공부하던 심리학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다니고 있었고, 병과는 별개로 특유의 차가운 태도는 노력해도 단숨에 사라지지 않았다. 고통은 고통의 주체가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한다. 나는 혼란스러운 내면을 들키지 않기 위해 혼자 있고 싶었고, 무엇이든 혼자 있을 때 잘했다. 왜 어떤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고통을 받으면서도 사랑을 갈구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지, 참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난 자발적 고아가 되었다는 생각에 더욱 그랬다.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이었는데, 막상 생각하고 보니, 간절해졌다. 다른 사람들이 아파할 때 함께 고통을 느낀다는 건 어떤 걸까 생각해보다가 정말 근사하다고 여겨졌다. 내가 실제로 겪고 있지 않지만 타인의 고통을 보고, 그대로 나에게 재현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전전두엽의 이상적인 기능, 가장 고 지능화된 능력이었다. 체험하지 않아도 타인의 경험으로 학습할 수 있다는 건 전두엽의 발달과 맥을 같이 한다. 그중에 생각보다 더 강력한 것은 감정이었다. 감정으로 인한 학습은 뇌새김 학습이나 마찬가지다. 우린 언어화될 수 없더라도 감정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는다. 공감은 타인에 대한 엄청난 정보 값을 단숨에 얻는 셈이다.


난 공감을 배우고 그럴듯하게 연기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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